지난 호에서 스트레스를 피하거나 해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상대로 싸우기보다 오히려 내편으로 만들어서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스트레스란 만병의 근원이요, 만인의 적인데 내편으로 만들라하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인가 싶지만 사실이다. 스트레스는 궂은 일 뿐만 아니라 좋은 일로도 생긴다. 혼인을 앞둔 신부는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복권에 당첨되면 믿기지 않는 꿈같은 사실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플라시보효과라는 것이 있다.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증상과는 관계없는 평범한 소화제나 영양제 등을 먹이면 신통하게도 아픈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새로 개발되는 약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임상 실험할 때는 약을 먹는 그룹과 안 먹는 그룹을 비교해서 두 그룹간의 차이를 보고 효과여부를 알게 되는데, 실제로는 여기에 가짜 약을 먹는 그룹까지 포함해서 세 그룹간의 증상변화를 알아보고 약의 효과를 판단한다.
 
보통 이런 실험에서 보면 가짜 약은 진짜 약보다는 효과가 덜하지만 안 먹는 것보다는 효과가 좋게 나온다. 약을 먹으면 치료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뇌하수체 호르몬을 자극하고 내분비기관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시보효과는 약에 대한 기대감이나 신뢰감이 클수록, 다시 말하면 믿음이 클수록 몸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스트레스가 클수록 플라시보효과는 좋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도 잘만 이용하면 건강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디젤기관차가 나오기 전에는 석탄으로 보일러의 물을 끓이는 증기기관차가 있었다. 증기기관차는 석탄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커먼 석탄연기가 나와 기관차는 온통 시커먼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중에서 단 한군데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보일러에서 나오는 증기에 밀려 실린더를 드나들면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피스톤이었다. 둥글고 길다란 쇠막대처럼 생긴 피스톤은 항상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아무리 그을음이 많아도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피스톤에는 때가 낄 틈이 없이 없었던 것이다. 그걸 보면서 사람도 바쁘게 살면 심신에 때가 끼지 않고, 항상 반짝거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제 친구의 초대를 받고 그가 사는 아파트에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60세가 넘은 사람들이 사는 그곳은 참 살기 편하게 되어있었다. 관리비에는 집안 청소와 세탁을 해주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고, 구내식당에는 동서양의 음식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서 하루 세끼 중 한 끼도 해먹지 않아도 된다. 체육관, 사우나, 극장에 노래방까지 있었다. 복도에서 만나는 부부들의 얼굴에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갖는 행복이 미소로 번진다. 천국이 있다면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힘써 일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특권처럼 즐기고 있었다.
 
친구에게 부럽다는 마음을 말로 표현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그의 한숨 섞인 하소연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너무 할 일이 없으니까 하루 종일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는 우리 생활에 양념이 되고 활력소가 된다. 스트레스가 없다면? 정말 심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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