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백두산관광 무기 연기...`김윤규 구하기'

대북사업을 둘러싼 현대와 북한 당국간의 갈등이 복잡한 국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대의 대북사업이 흔들리는 것은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경협 전반에 영향을 끼치면서 정치·안보 분야에도 이상기류를 가져올까 걱정된다. 현정은 현대회장은 지난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백두산과 개성관광 사업을 성사시키면서 대북사업이 일대 전기를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 달 뒤 김 윤규 부회장이 돌연 퇴진하자 북한은 금강산 관광객 수를 대폭 줄일 것을 현대에 요구하더니 롯데에 개성관광사업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북한이 김부회장의 퇴진 발표 직후 롯데측에 개성관광을 제안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현대와 맺은 30년 독점사업 계약을 5년만에 깨고 대북사업을 다변화하려는 것이 이니냐고 분석하기도 한다. 현대와 북한 당국의 이러한 갈등은 표면적으로 현대가 김윤규 부회장의 개인 비리를 문제 삼아 퇴진시킨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급기야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은 “대북사업을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기로에 선 듯하다.”고 밝혔다.“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며 김 부회장의 퇴진을 돌이킬 수 없음을 강조했다. 최근 북측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1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한 북측인사는 현정은 회장이 12일 발표한‘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금강산관광 중단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 퇴진을 빌미로 금강산관광을 축소하면서 현대를 압박한 북측은 롯데관광에도 개성관광 사업 참여를 제의했다. 현대측에 개성관광 대가로 1인당 150달러를 요구한 북측은 롯데에는 이보다 많은 200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관광사업을 경쟁체제로 전환하면서 관광 대가를 올려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1차적으로 양측 모두 강수로 치고 나갔다. 현 회장은“대북사업이 기로에 서 있다.”는 표현까지 쓰며 대북사업 시작 후 최고의 강수를 뒀다. 북측 역시 현대를‘대북사업 파트너에서 배제할 수 있다’며 제3의 파트너까지 들이겠다는 엄포다. 양측이‘파트너 관계를 끊을 수 있다’며 대치(對峙)국면에 들어선 것은 현대와 북한 아태(亞太·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간 사업협력이 본격화한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앞으로 나올 양측의 카드는 무엇일까? ◆현정은 회장 카드는?, 현 회장은‘대북사업 전면 포기 가능성’을 정말로 염두에 둔 것 같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북사업이 남편 유지이며 많은 돈이 투자되기는 했지만, 그 돈은 이미 투자된 것”이라면서 “현 회장 자신이 직접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對)국민발표문의 작성 경위를 이해하면 현 회장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현 회장의 ‘국민 여러분께 올리는 글’ 역시 그룹 경영진들과 상의 없이 지난 주말 혼자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 회장은 실리적인 면에서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다. 관광 사업은 큰 돈벌이가 안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개성관광 대가로 북쪽에 1인당 150달러 이상을 지급한다면 남는 게 전혀 없다”면서 “현 회장은 관광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실시했던 개성시범관광만 해도 현대아산은 큰 적자를 봤다. 한 관계자는 “북측 요구를 수용, 큰돈을 건넨 것이 시범관광 적자의 요인이며 앞으로 계속 이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고 말했다. 현 회장이 김윤규 부회장의 리종혁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대북 커넥션을 전면적으로 공개하는 것도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실제로 김윤규 부회장이 대북사업 추진 과정에서 북한측 인사들과 은밀한 거래를 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으며, 현대그룹은 지난 7월 김윤규 부회장에 대한 내부 감사를 통해 이를 입증할 만한 상당한 자료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 회장은 그러나 현재로써는 북한의 반응을 보고 2차 대응 전략을 짤 계획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한이 더 이상 강경하게 나오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사태가 호전돼 양측간 협상이 시작될 경우 현 회장은 북측에 각종 사업의 불평등 계약조건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 북한측 카드의 득실, 다른 파트너 선택 북한이 취할 가장 유력한 첫 카드는 백두산 관광의 무기연기 조치.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만약 북한이 현 회장의 12일 글에 대해 반응을 한다면 ‘백두산 관광 무기한 연기’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생떼만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는 엄청나게 계산을 한다”면서 “백두산 관광 무기한 연기는 북쪽으로서는 잃을 게 전혀 없는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백두산 관광은 10월만 지나면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어차피 불가능하다. 이어 제3의 파트너를 끌어들이는 부분이다. 이는 현대와의 계약파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절연(絶緣) 선언이다. 북측은 실제 최근 개성관광 사업을 현대그룹이 아닌 다른 그룹에 넘길 수 있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흘렸다. 특히 지난달 말 평양에서 열린 2005년 평양오픈골프대회 참관차 평양을 방문한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에게 개성관광 사업을 제안했다. 북쪽은 평양에서 평화자동차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통일그룹을 비롯한 다른 기업들에도 비슷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다음 카드가 개성관광 일정 연기 수순이다. 북한은 달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개성공단과 관광 사업이 유일한 달러벌이 통로. 당일 여행의 경우, 금강산은 겨우 1인당 30달러지만 개성관광은 무려 150달러다. 개성관광을 최후의 패로 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은 여기에서 나온다. 금강산 관광 축소나 전면 중단은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관측이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대가로 하루 평균 6만달러 안팎을 받아왔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김윤규 부회장 때문에 달러를 포기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정 장관 "현 회장과 만나 정부 중재 논의했는데..."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14일 현대와 북한의 갈등으로 위기에 처한 금강산 관광사업과 관련 "정부로서 해야 할 몫이 있다" 며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더구나 정 장관은 지난 11일 현정은 회장과 만나 논의했는데 현 회장이 다음 날 인터넷에 입장을 올리는 바람에 정부의 입지가 줄어들었다고 그간의 사정까지 밝혔다. 이는 현 회장의 행동에 대해 상당히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 장관은 이날 오후 평양 고려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현대라는 기업이 민간 베이스로 추진하는 사업이지만, 금강산 관광은 정부의 희생과 지원이 있었고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사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런 언급은 금강산 관광이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 사이의 민간 사업이라며 개입하지 않겠다고 해온 정부가 기존 입장을 바꿀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정 장관은 이번 장관급 회담을 통해 북한과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평양에 오기 전인 지난 11일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과 만나 정부가 어떻게 중재할 수 있을 지 논의했다"며 "그러나 다음 날 현 회장이 인터넷에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는 바람에 정부의 조정·중재 여지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7월16일 현 회장과 김윤규 부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지 두달도 안돼 이런 상황에 처하게 돼 정부도 어처구니가 없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정 장관은 "8·15 때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왔을 때 이미 현대와 북측간의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대화를 주선한 적도 있다"며 "수습을 바랬는데 그 때 직접 대화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은 (현대나 북이나 모두) '루저'(패배자)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번 방북 직전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대아산 사업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면서 내용을 소개했다. 정 장관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남북화해와 경제 협력의 상징이고 국제적으로 관심이 큰 사업인데 국민들의 걱정과 국제적인 시각이 우려스럽다"며 "장관이 직접 적극 중재 노력을 해달라는 김 전 대통령의 당부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北-현대 갈등 국감에서 따질 것" 한나라당은 14일 현대 아산 김윤규 전 부회장 사퇴를 둘러싼 현대 그룹과 북한 당국의 갈등과 관련,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국감에서 집중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당 내부에선 김 전 부회장 경질을 놓고 북측이 금강산 관광객수를 제한하면서까지 강력 반발하고 나선 데 대해 김 전 부회장에 대한 `의리 지키기'라는 분석과 북한 당국의 대북사업 길들이기, 새로운 파트너를 모색해 더 많은 이권을 챙기려는 꼼수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특히 북한 당국의 `김윤규 구하기' 관측과 관련해선 김 전 부회장과 북한 지도부간의 밀약설도 제기됐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인 홍준표 의원은 "김 전 부회장은 오랫동안 대북사업을 주도하면서 북한 고위층에 인맥을 구축했으며, 북한의 태도는 자신들의 사업 파트너가 배척된 데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주장했다. 김문수 의원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대북사업 중대 기로'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 "현 회장이 원리원칙대로 대북사업을 펼치려다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비토를 당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대북사업에 있어서의 비정상적 거래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항간에 `김윤규와 북한 지도부의 밀약 의혹'이 흘러나오고 있는 등 현대 아산의 대북사업 이면에 대해 각종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면서 "현 회장이 얘기했던 정도경영이 무슨 뜻이며, 북측은 왜 그렇게 김윤규 체제를 고집했는가도 이 시점에서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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