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970년대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학우들에게 돌렸다가 실형을 받고 복역했던 서울대 농대 출신 3명에게 35년 만에 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1일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는 1978년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병호(58)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 4학년이던 이씨 등은 1978년 5월25일 '독재자 물러가라', '유신헌법 폐지하라' 등의 구호가 담긴 유인물 1400매를 만들어 농대 대강당에서 낭독하고 뿌렸다.
그 후 학생 100여명과 함께 교정을 돌며 시위를 벌이다 기숙사 옥상으로 올라가 이를 제지하러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돌을 던져 4명을 다치게 해 긴급조치 9호와 공무집행방해·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바로 그해 법원은 이들에게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들은 올해 4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났으므로 이를 위반했다고 해서 처벌할 수 없고 공무집행방해와 상해 혐의도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선고 배경을 전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맞서 헌법적 가치 수호를 위해 저항하다 신체의 자유를 침해받고 범법자로 낙인 찍혀 명예마저 훼손됐다"며 "이 판결로 명예가 조금이라도 회복되길 바란다"고 존경과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한편, 서울고법에서는 지난 3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살이를 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 등 15명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