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의 정체

스트레스는 참 많고도 많다.

시험볼 때, 속상할 때, 화날 때, 긴장할 때, 무서울 때, 조마조마할 때, 거짓말할 때, 낭떠러지에 설 때, 반대편 전철은 두 개씩이나 지나가는데 내가 기다리는 전철은 오지 않을 때, 도둑질할 때, 기다릴 때, 지각할 때, 추울 때, 더울 때, 소개팅에 나갈 때, 사랑할 때, 미워할 때, 자장면과 짬뽕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등등... 온갖 세상잡사가 모두 스트레스 투성이다.

스트레스 항목만 늘어놓아도 이 원고 365회분을 쓰고도 모자랄 것이다. 분명히 영어인데 외국인 보다 우리가 많이 쓴다.

영어에서 스트레스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의 일이니 아직 한 세기가 되지 않았다. 헝가리출신의 내분비학을 전공하는 젊은 의학도 한스 셀리(Hans Selye)가 열아홉살 때 처음으로 distress라는 단어의 일부를 따서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본래 ‘stress’라는 단어는 강조한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셀리는 생활에서 오는 압박과 긴장이 체내의 균형을 깨뜨려서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당시 소련의 위성국가로 공산주의를 신봉하던 헝가리를 떠나 캐나다로 건너가서 평생 스트레스만 연구하다가 세상을 떠난 의학자다.

내가 그의 스트레스에 대한 학설을 처음 접한 것은 60년대 초반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도시락은 쉬는 시간에 미리 먹어치우고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자리를 차지하려고 잽싸게 달려가곤 하던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의 스트레스설을 읽었다.

외부적인 어떤 상황이 사람의 뇌를 자극하면 뇌하수체가 영향을 받게 되는데, 뇌하수체는 인체의 모든 내분비계통(호르몬계)의 지휘사령부와 같은 곳이어서 필요한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지령을 내린다는 것이 당시 셀리가 주장하는 스트레스설의 요지였다.

특히 그가 스트레스를 강조하여 주장했던 부분은, 뇌하수체가 호르몬 중에서 부신을 자극하여 스테로이드(steroid)계통의 호르몬이 원활하게 나오도록 돕는다는 것이었다. 스테로이드는 신경통이나 관절통으로 고생하는 이들, 알레르기성 질환으로 시달리는 이들, 입맛이 없어 먹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이들, 염증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 등등에 두루두루 효과가 좋아서 만병통치약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의사들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조심해서 쓰는데, 오히려 속칭 겁 없는 돌파리들이 잘 쓰는 약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몸 안에서 분비되는(내분비)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없으므로 이 호르몬이 잘 생성되도록 한다면 질병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스트레스가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이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셀리가 주장한 스트레스(긴장)의 본 뜻은 고무줄을 잡아당겨서 팽팽하게 늘어진 상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런 상황에서는 조금만 자극을 주면 끊어질 것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신체적인 병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이 본래의 스트레스이론이고, 그래서 스트레스는 피하거나 해소해서 없애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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