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한국경제, 돌파구는 없는가?

이른바 G2(미국·중국)악재가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우리 금융시장은 주식, 환율, 채권이 함께 떨어지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를 보이면서 설상가상의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이런 상황이 언제 까지 계속될 지를 두고 우려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버냉키 쇼크와 중국발 악재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전망했다.

 

▲ 양적 완화의 단계적 축소 방침을 밝힌 ‘버냉키 쇼크’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보다 23.82 포인트 내린 1,799.01 포인트로 마감된 24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뉴시스


G2악재 세계경제 강타, 금융시장 요동쳐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경제위축 우려 커
美 출구전략, 수출중심 한국경제에 긍정적

 

버냉키 쇼크, 한국경제 영향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방침’을 밝히자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른바 ‘버냉키 쇼크’라고 불리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우리 경제에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고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양적완화 정책을 전개해왔다. 이에 따라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중에 푼 돈은 3조 달러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천500조 원에 달한다. 이 막대한 돈은 미국 주가를 높이고 달러가치를 떨어뜨려 미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였다.

최근 미국은 경제가 호전되자 과거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을 정상 수준으로 돌리기 위해  ‘양적완화 축소’라는 출구전략을 발표한 것이다.
양적완화 축소는 미국 내 금리 상승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는 신규 시장으로 나간 달러 자금을 다시 미국으로 되돌리는 작용을 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공급한 달러 유동성은 약 2조3000억 달러에 달한다.

그동안 미국의 양적완화로 인해 풀린 돈은 아시아 신흥국에 흘러들어 주가를 끌어올렸다. 최근 발간된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인도, 아세안 4개국, 중남미 4개국 등 신흥국 10개국에 투자 순유입 된 자금은 최근 4년 간 600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 양적완화가 축소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에 속하는 신흥국에 대한 투자를 거둬들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신흥시장 국가에 그동안 유입됐던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과도하게 상승했던 자산가격의 거품이 꺼지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1994년 연준이 장기간 저금리 기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리인상을 한 유사한 일이 있었다. 미국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풀었다가 94년 연준 의장이 금리를 끌어 올려 돈을 회수하자 멕시코 외환시장이 무너지고 남미 전체가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런 위기감을 반영하듯 버냉키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방침이후 전 세계 각국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치솟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후폭풍이 강타했다.

한국도 외국인의 매도세를 버티지 못하고 코스피 지수는 1800선이 무너졌다. 코스닥 시장도 연일 하락세을 보이고 있으며 환율도 가파르게 상승중이다.

양적완화 축소가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면서 세계적 경제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내 실물경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더불어 수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경기가 위축되면 하반기 한국의 상품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당분간 외국 자본 유출을 비롯한 이 같은 충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발 악재, 파장은?

버냉키 쇼크가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국발(發) 악재도 몰아쳤다. 국내 시장의 관심은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을 떠나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 중국발 악재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그림자 금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이나 크런치(China Crunch, 중국 돈가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림자금융’ 이란 중국정부의 예대율 규제를 피하기 위해 비은행 금융회사가 고리로 빌려주는 금융상품을 말한다. 중국의 은행들은 일반적인 나라들과 달리 정부 소유이며 정부가 예금금리를 정해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이자를 주기도 한다. 더구나 중국은행들은 대부분 정부 소유의 대기업에게 대출을 하고 있어 대출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예금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찾게 되고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은 비은행권을 찾게 된 것.

중국정부는 이 자금이 지방 부동산 등으로 흘러들어 경제의 버블을 만든다고 보고 시중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행의 신용경색이 일어나 중국경제에 타격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금융전문가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러한 그림자 금융은 2013년 현재 29조위안(약 5000조원)으로 중국 2011년 국내총생산(GDP)의 66%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중국의 대내외 전문가들은 그림자 금융이 미국의 과거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와 같은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우리 경제에 유입된 차이나 머니도 빠져나갈 수 있다
국내에 들어온 ‘차이나 머니’ 규모는 4년 반만에 44배 증가한 21조원 규모다.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 후폭풍에 중국발 신용경색 우려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자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상장기업들의 부도위험 지표(CDS 프리미엄)도 연중 최고로 치솟았다. CDS 프리미엄은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나 국가가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하는 파생상품인 CDS에 붙는 가산 금리다. CDS 프리미엄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해당 기업이나 국가의 부도위험이 커졌음을 뜻한다.

금융투자업계와 파생상품 전문기업인 슈퍼디리버티브즈(SuperDerivatives)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삼성전자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73.57bp(1bp=0.01%포인트)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1월 1일 37.50bp보다 배(倍) 가량 높은 수치다.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금융투자업계는 상장사들의 실적을 점점 내려잡는 추세다. 10대 그룹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이달 들어 74조원 감소했고, 대부분 펀드의 최근 1개월 수익률은 마이너스다.
 

박유나 동부증권 연구원은 “미국 양적완화 종료 문제로 신흥국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자금이 다 빠져나가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도 연일 신고점을 나타내는 등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국가·기업 부도위험 지표가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해석도 제기

세계 1ㆍ2위 경제국인 미국ㆍ중국발 불안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긍정적인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단기적인 충격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에 약이 될 것이란 의견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미국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양적완화를 중단한다는 것은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미국 소비경기가 나아지면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인 전기전자(IT)·자동차 수출이 늘어나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미국의 출구전략에 대한 우리나라 대응력은 여타 신흥국에 비해 우수하다는 평가다.
경상수지가 안정적 흑자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2008년 위기 이후 외환시장 안정화 장치를 도입해 유출입에 대응했기 때문에 내성이 크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며 외환보유액(3281억달러), 무역수지 흑자(16개월 지속), 예대율(95.4%) 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고 분석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미국의 경기 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수출 등 우리 경제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글로벌 유동성 축소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금이 유출돼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된다는 점은 우려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도 “글로벌 금리 상승 국면에서는 경기에 민감한 특성이 있는 한국 경제의 매력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경기 회복이 강해질수록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연구원은 하반기 수출경기 회복에 원·달러 환율도 상승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번 양적완화 축소가 한국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아시아 외환위기나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일단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지만, 후폭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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