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신록의 계절’로 아름다운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있어 ‘가정의 달’이라 불린다. 그러나 올해 오월은 잔인했다. 5월 초부터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 롯데백화점 직원 자살, 남양유업 폭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등 대형 사건들이 한 주가 멀게 터져 나와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윤창중 성추행 사건’은 압권이다. 급히 귀국해 기자회견까지 한 윤 전 청와대 대변인은 이후 성추행 사건을 ‘문화의 차이’로 몰고 가려고 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성추행’은 분명한 범죄에 해당한다. 윤 전 청와대 대변인은 면죄부를 받으려고 ‘문화의 차이’에 의한 오해라고 주장했다. 특히 피해 여성의 허리를 툭 치면서 “앞으로 잘해”라는 말을 했다는 부분은 ‘블랙코미디’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어떠한 상사도 격려 차원에서 여성의 허리를 치는 경우는 없다. 등이나 어깨를 치면서 격려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엉덩이를 만졌다고 하면 ‘성추행’이 되니까 허리로 조금 올라온 것 같다는 의심마저 든다. 윤 전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피해 여성에게 ‘위로’가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를 했어야 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정서상 ‘이성을 허락 없이 만져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둘러싼 ‘문화적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강자가 약자의 생존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의 크기와 그런 착취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보장되는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윤 전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을 저지른 것은 자신의 행동이 부도덕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희생자가 자신의 악행을 ‘감히’ 드러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자의 생존권과 내부 고발자의 신변이 보호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방미 순방중 성추행을 저지르고 국내로 도피한 윤 전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회견 이후 잠적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여론의 비판도 잦아드는 모양새다.

여기에 북한 미사일, 국정원 정치개입 문건 공개, 일본 유력인사들의 망언 등 새로운 이슈가 나오면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 등의 대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분명 우리는 지금 분노하고 있지만, 분노는 쉽게 사그라질 것이다.

우리가 벌써 대한항공 사건과 남양유업 사태를 잊기 시작했 듯 말이다. 그러면 과거는 현재로, 현재는 미래로 되풀이 될 것이다. 행동과 결합되지 않는 분노가 사회를 바꾸는 일은 없다. 이런 부분에서 윤창중 성추행 사건의 조속하고 명쾌한 해결을 통해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 위 칼럼은 시사신문 630호(2013 5월 26일~6월 2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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