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실에서 환자를 진찰할 때 가끔 환자에게 나이를 물어본다. 누구나 다 아는 아주 쉬운 질문인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자기의 이름과 나이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기초적인 지식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들이 손자들과 말문을 트려면 “이름이 무엔고?”로 시작해서 “나이가 몇 살인고?”로 끝낸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세 살 난 아이도 아는 자기 나이가 가물가물할 때가 있다. 허기야 세월이 워낙 빨라 자기 나이를 외울 때쯤이면 또 한 살 먹게 되니, 나이를 외울 틈이 없기도 하다.

80대가 되면 나이를 소개할 때는 “무진 생”, “경오생”으로 대답하고, 60대가 되면 “48년생”, “51년생”등으로 자기 나이를 말한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쥐띠”, “토끼띠”로 대답해버린다. 나이는 해마다 변하는데 태어난 해는 평생 변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렇게 자기 나이도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기억력은 둔해졌다.

우리 모두 기억력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번 들은 것은 잊지 않고 쏙쏙 기억하는 총기 넘치는 시절이 있어서, 노래가사나 예쁜 배우 이름들을 줄줄이 꿰던 소년시절을 거쳐 왔다. 그러나 그 좋던 기억력이 다 어디로 갔는지 요즘은 엊저녁에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모를 때도 가끔 있다.

그런데 실상 건망증은 아내들에게 더욱 심각하다. 젊었을 적 우리의 아내들은 우리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었다. 양말, 손수건, 통장, 도장 등이 어느 장롱 몇 번째 서랍에 들어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척척 대령하곤 했다.

게다가 홧김에 혹은 당황 중에 생각 없이 불쑥 뱉은 말을 잊지 않고 두고두고 기억했다가 39년 5개월 동안 따지고 들 땐 쥐구멍이 없는 게 한탄스럽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동반 모임에 가려면 현관열쇠를 찾느라 우왕좌왕 하다가 약속시간에 늦는 것이 보통이다.

외출에서 돌아와 구두를 벗어 냉장고에 모셔두는 건 우습기나 하지만, 다리미질 하다가 전화벨 소리에 뜨거운 다리미를 귀에 갖다 댄다면 웃을 수도 없다. 아내들의 건망증이 심해지는 데는 무엇보다도 해산의 고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해산 한번 하고 나면 온 몸이 무너져 내린다는데 두뇌인 들 온전할 리가 없다.

또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가 아내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경향이 많아 아내들이 받는 심리적 부담이 커서 속을 많이 썩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참 신나게 얘기하다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말머리를 찾지 못해 애쓰는 모습은 애처로워서 사랑스럽다. 아내의 작아진 어깨가 가슴에서 포근하다.

이렇게 건망증으로 인해 아내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이니 망각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나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실상은 참 필요하고 고마운 기능이다. 남은 얘기는 다음호로 넘긴다.

오늘 건망증에 대한 얘기를 쓰는 것은 실은 어제까지 원고를 보내야한다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다가, 방금 생각나서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으니 머리가 하얘지고 건망증밖엔 생각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의사도 건망증은 피할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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