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재난에 주민 불안감 가중

 
30분간 내린 ‘흑비’…마을 새까맣게 뒤덮어
주변 산업공단 불법 샌딩작업 원인으로 지목
작년부터 같은 현상 발견된 것으로 드러나
지역주민 수차례 민원에도 정부는 ‘묵묵부답’


주민들 날벼락

전라남도의 정청지역 여수의 한 마을이 검게 변했다. 지난 11일 밤 여수시 율촌면에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율촌면 주민 강모(50)씨는 “하늘에서 검정 비가 내리는 모습은 공포스러웠다”며 “처음에는 황사가 섞인 비로 생각했지만 색깔의 농도가 달랐다”고 말했다.

강모씨는 “건물 외관 곳곳에 낀 이물질은 말라버린 상태라 닦이지도 않아 청소할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여수시에 따르면 지난 11일 저녁 8시경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일대에 30여 분 동안 흑비가 내렸다.
강수량은 1mm로 적었지만 흑비를 맞은 차량 및 건물, 농작물까지 검은색으로 뒤덮일 정도로 농도는 짙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시민들이 SNS을 통해 흑비가 내리는 상황을 전했고, 해당 소식은 온라인상에 빠르게 번지며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흑비로 인한 피해는 율촌면 조화리 면소재지 반경 1킬로미터 이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옥수수와 깻잎, 미나리 등 농작물의 잎이 시커멓게 변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주민들은 황망해 하고 있다.

여수시와 경찰에 따르면 빗물에 검은 색 미세 모래와 쇳가루 분진이 섞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흑비가 내린 마을은 화력발전소, 조선소 등이 입주한 율촌 제1산업단지와 불과 1~3km 거리에 있어 산단 내 업체에서 발생한 분진이 빗물에 섞여 내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여수에서 평년 수준(풍속 4m/s 이하)의 약한 동풍이 불었던 점도 분진이 산단 오른편에 위치한 마을로 날아갔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수시는 순천시, 광양시와 합동으로 인근의 분진 배출 발생 가능성이 있는 공장을 비롯해 율촌 산단 등지를 조사할 예정이다.

여수시 관계자는 “차량에 붙은 검은 가루를 자석으로 실험한 결과 붙는 현상도 발견됐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과 별도로 시료를 채취해 전문 검사 기관에 성분 분석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전조현상 방치

지난해 가을부터 흑비가 내렸다는 율촌면 주민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주민들의 민원에도 불구,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율촌면 주민들은 만약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이런 흑비가 내렸으면 정부가 이렇게 묵묵부답으로 대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준태 율촌면 주민자치위원은 “4개월 전부터 주민들 사이에 비만 오면 처마밑에 검은색 쇳가루 덩어리가 생기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주변 율촌공단의 불법 샌딩작업을 원인으로 의심해 정부에 민원을 수차례 넣었음에도 단 한번도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래를 뿌려 철골구조물의 녹을 제거하는 ‘센딩작업’에서 발생한 쇳가루 분진이 흑비의 원인이라는 게 여수산단에서 근무하는 경험이 있는 김 위원의 설명이다. 이어 그는 “율촌산단 조선업체 등에서 분진방지시설도 하지 않고 센딩작업을 무리하게 한다는 현장 근무자들의 제보를 수차례 받았다”고 주장했다.

전남 지역에 있는 목포 대불국가산업단지 주변에서도 쇳가루와 페인트 날림 현상 등이 수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이상 강우의 원인은 대기오염에 따른 것으로 주변 지역까지 오염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여수 사건을 계기로 인근 지역은 물론, 산업단지 전반에 대한 환경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정부는 1970년대부터 수도권 과밀화를 막고 지방 발전을 위해 기업의 지방이전을 실시해 왔다. 하지만 ‘발전’이라는 명제하에 제대로 된 운영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이전사업에만 몰두해 왔다. 부작용에 대한 국민들의 빗발치는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여수흑비’와 같은 중대한 환경재난이 일어났다. 상시적 환경 재앙으로 지역주민의 불안감이 가중되도록 정부는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철저한 원인규명과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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