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국제결혼 바람’, 그 후 한집 건너 외국인 신부

요즘 농촌에선 농촌 노총각에게 시집온 피부색이 다른 동남아 출신 주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연부락마다 한집 건너 외국인 주부가 있을 정도로 이들은 농촌 가정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언어와 문화, 관습 차이 등으로 ‘한국인 주부’로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들에게서 태어난 혼혈2세는 피부색 때문에 소외되는 등 우리 사회의 새로운 소수 약자로 전락할 우려마저 낳고 있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농촌지역 자치단체들은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다양한 지원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농촌에 늘어나는 외국인 주부 버섯 농사를 짓는 최모(48)씨는 올 초 베트남 처녀(26)를 아내로 맞았다. 그동안 만나는 한국 처녀마다 모두 ‘농사일이 싫다.’면서 등을 돌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겨우 가정을 꾸렸다. “배운 건 농사일밖에 없고 장가는 가야하는데 시집오겠다는 여자는 동남아 여자뿐이더군요.” 경상북도에서 최근 실시한 ‘농촌거주 외국인 주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부는 모두 1544명. 이 가운데 농촌지역 거주 여성은 1292명으로 83.7%를 차지,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여성 대부분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신 국가별로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 4개국이 93.6%를 차지했고 거주 기간은 2년 이하가 24.8%,3∼5년이 31%로 최근 5년 사이에 한국에 시집온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평균 연령은 31.8세로 20대(38.9%)와 30대(40.1%)가 79%를 차지했다. 특히 주택 및 농지보유 현황, 영농규모 등을 종합평가한 생활수준 조사에 ‘상’은 2.5%에 그쳤고 ‘중’은 54.8%,‘하’는 39.6%로 분류됐다. 경북도 관계자는 “국내에서 신붓감을 구하지 못한 40대 농촌 노총각들의 국제결혼이 최근 5년 사이 러시를 이루면서 농촌에 외국인 주부가 급증했다.”면서 “이들 가운데 10가정 중 4가정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앞으로 빈곤에 따른 가정해체 등 정착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 코시안 혼혈 2세도 크게 증가 경북 구미에 사는 최모(4·가명)군은 ‘발달성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아직 우리말에 서툰 엄마(40·필리핀) 때문이다. 엄마는 “농사일에 바쁘고 가르쳐주는 곳도 없어 인사 등 기초적인 말 이외에 아직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면서 “말뿐만 아니라 한국관습도 서툴러 앞으로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농촌에 외국인 주부가 급증하면서 혼혈 코시안(한국인 남성과 동남아 여성에서 태어난 2세)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경북도 내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코시안은 모두 1534명. 국제결혼 가정 가운데 자녀가 1명인 가정이 44.6%로 가장 많았고 2명 38.8%,3명 이상 16.6%로 조사됐다. 5명을 낳은 외국인 주부도 8명이나 됐고 외국인 주부 중 20∼30대 여성비율이 약 80%여서 앞으로 더 많은 코시안이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제결혼으로 코시안 자녀를 둔 농촌가정들은 요즘 아이들이 커가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바로 인종차별과 혼혈아에 대한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 때문. 필리핀 여성과 결혼해 6살 난 여자아이를 둔 박모(52·경북 청송군)씨는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나중에 아이가 피부색이 다르다며 멸시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낳지 말 것을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 혼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혼혈인으로 한국에서 사는 것은 치욕이다. 나는 나처럼 생긴 아이가 태어날까봐 결혼하기 전부터 불임수술을 해 버렸다.’ 40대 후반 배모씨는 한국인이란 자긍심을 잃은 지 오래다. 그에겐 그를, 그의 가정을 돌봐주는 정부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또래와 섞일 수 없었던 나는 이단자였다. 이유없는 손가락질을 받을 때 내 곁엔 그 흔한 온정도 없었다.’ 그는 ‘혼혈인’이라는 낙인엔 ‘역사가 버린 사람’이란 꼬리표가 달려있다고 덧붙혔다. 지난 99년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현재 네 살배기 아들을 둔 30대 파키스탄인 W씨.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와 가정을 꾸렸지만 자신의 희망이자 기쁨인 아들을 보면 걱정부터 앞선다. W씨 아들의 성은 김씨를 따르고 있다. 귀화하지 않은 W씨가 성을 물려줄 수 없는 현행법 때문이다. 사정을 모르는 동네사람들은 엄마성과 같은 아들을 두고 미혼모 자식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더욱이 아들이 유아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부인의 귀띔엔 할 말을 잃었다. ‘생활에 쫓기다 보니 아들에게 파키스탄 문화를 가르치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한국말 밖에 모르는 애가 생김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소외당하고 있으니...’ 네식구의 가장인 40대 초반 혼혈인 손모씨. 그는 일용직 노동으로 가계를 꾸려가고 있다.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큰 애 밑으로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아 고정적인 수입이 가능한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지만 그리 쉽지 않다. 사회전반의 구직난도 한 이유겠지만 혼혈인을 바라보는 고용주의 편견이 더 크게 작용한다. ‘열심히 하겠다. 일단 일을 해보면 알지 않느냐’라고 달라붙었지만 회사쪽에선 썩 내키지 않는 눈치를 보였다. ● 혼혈인 출생은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미지 개선되어야 한국사회의 혼혈인 출생은 한국전쟁과 미군주둔을 배경으로 시작됐다. 미군을 상대했던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인. 비극적인 역사를 함축한 이 한쌍의 조합에서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혼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을 키워왔다. 지난 60년대 이래로 형성된 이같은 인식의 틀은 지금까지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최근 3D업종 기피현상으로 동남아시아 노동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들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 혼혈아동 또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펄벅재단 한국지부에 따르면 토기 혼혈인 1만여명 중 한국사회의 폐쇄성에 적응하지 못해 지난 82년 미국 이민법 개정과 더불어 5천여명이 미국으로 이민, 현재는 5천여명의 혼혈인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사람이 일본,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권 출신 외국인들과 결혼한 쌍이 2천 700여건이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10년 정도 지나면 코시안 수는 1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고 혼혈아동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 낯설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혼혈인의 삶은 한마디로 고달픔이다. 학창시절부터 놀림감이 되는 바람에 일반학생에 비해 학업중도탈락률이 높다. 펄벅재단이 수년간 혼혈아동들의 학업중도탈락률을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미진학 및 중퇴자가 조사대상자 중 9.4%, 중학교 미진학 및 중퇴자가 17.5%로 나타났다. 사회에 진출해도 대우는 마찬가지. 펄벅재단 한국지부가 퇴근 기지촌 출신 혼혈인 6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혼혈성인 56%가 미취업에 가까웠고 33%는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10명 중 9명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셈. 이같은 경제적 궁핍을 반여이라도 하듯 주거형태는 조사대상자 중 69%가 월세였고 14%가 전세였다. 친척집에 얹혀 사는 가정도 2%나 됐다. ● 정부보조도 끊긴 지 오래 정부는 지난 수년간 펄벅재단을 통해 생계비 및 학비를 혼혈인들에게 보조해 왔다. 그러나 지난 99년 공동모금회법이 제정되면서 한 기관에 3년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내부규정에 묶여 얼마 전부터 펄벅재단에 대한 혼혈인 지원이 완전 끊긴 상태이다. 더욱이 한국이 OECD회원국이 되면서 미국 본부로부터 후원금 지급도 중단됐다. 또한 혼혈인 대부분이 최종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임에도 불구하고 혼혈인 문제에 대한 실태조사나 정책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펄벅재단측은 ‘근본적인 대책마련보다는 해외입양과 이주를 보내는데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한미행정협정(SOFA)에도 혼혈인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부양요구에 대한 각서’에서 독일여성과의 사이 혼혈아동을 둔 미군이 아동의 양육비를 지불토록 권고한 ‘미국-독일 SOFA’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미행정협정 개정에 적극 나서서 역사의 증인인 혼혈인 문제를 심도있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더 이상 국제결혼을 색안경 끼고 보지 마세요.” 경북 북부지역 국제결혼가족모임 회장인 권오복(43·경북 예천군 보문면)씨는 “농촌 총각 4명 중 1명은 외국인 아내를 두고 있을 정도로 우리 농촌에서는 국제결혼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앞으로 국제결혼 부부가 10만쌍 정도는 더 늘어나야 농촌 총각들의 결혼난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도 지난 2003년 9월 베트남 처녀(23)와 결혼했다. 권씨는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처음 베트남에 신부감을 구하러 갔을 때는 ‘이 방법밖에 없을까’라며 많이 망설였지만 2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현재 예천지역에만 국제결혼 부부가 90쌍이 넘는다. 권씨는 이들의 친목도모와 권익보호를 위해 지난 2월 국제결혼가족 모임을 만들었다.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아내들의 고향은 저마다 다르지만 만나면 늘 가족같은 분위기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서의 화두는 2세 교육문제다. 권씨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엄마가 우리나라 말과 문화에 서툴다 보니 교육문제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구늘리기 사업이 국가 정책사업으로 확대되고 그 핵심에 국제결혼이 있지만 결혼한 외국인 아내에 대한 한글교육과 문화적응 등은 관심밖이다.”면서 “한글학교 상설화와 면단위까지 유아교육시설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씨는 국제결혼 실패 원인으로 부부간 이해부족을 들었다.“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내의 한국 문화적응도 중요하지만 남자측의 많은 이해와 배려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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