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특례법의 명암으로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

지난 24일 한국은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가입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사전작업으로 지난 해 8월부터 입양특례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입양아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된 이 법이 오히려 영아 유기를 택하는 미혼모들의 증가로 이어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제대로 된 입양 문화를 만들겠다는 입법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에 입양특례법을 둘러싼 문제점을 짚어봤다.

 
▲ 지난10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제8회 입양의 날 기념식에 마련된 입양 아동 사진전에서 한 입양 가족이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국외입양아동 인권보호헤이그협약 가입
입양특례법 그늘국내외 입양 23% 줄어
미혼모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국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줄곧 세계 1위 아기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누렸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동은 줄었으나, 중국·에디오피아·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해외 입양아 중 일부는 프랑스 중소기업 정책을 이끌고 있는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중소기업 혁신 디지털경제부 장관(40)처럼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2의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에 국내입양을 우선 추진하고, 입양아의 친생부모에 대한 알 권리를 존중하는 국제기준 추세에 부응하여 지난 24일 우리 정부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가입했다.
 
미혼모 아이 출생신고 의무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은 입양에 있어 태어난 나라에서 가장 먼저 보호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해외입양이 이뤄질 때 양국 정부는 양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입양아 국적 취득을 보장한다. 입양 전반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 조약에 가입하기 앞서 법적, 제도적 기반 조성을 위해 지난해 8월에 입양특례법을 개정했다. 입양특례법은 미혼모의 아이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고, 입양의 가정법원 허가제와 입양 숙려제를 도입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아이들이 국내외로 입양된 경우는 모두 1880건으로 집계됐다. 국내 입양이 1548건에서 1125건으로 27%나 감소했고, 해외 입양도 961건에서 755건으로 18% 줄었다.
이 같은 입양 감소 추세는 지난해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단순히 입양을 촉진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입양아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반성에 기인한 것으로, 엄격한 입양절차 마련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입양하려는 양부모뿐만 아니라 부득이하게 양육을 포기하는 미혼부모에게도 복잡한 서류와 절차가 필요하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정법원의 허가에 필요한 입양아의 출생신고서.
 
입양특례법 시행 후 영아유기 증가
 
기존에는 입양을 보내려면 신고만 하면 됐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미혼모가 출생신고 등록을 의무화하기 때문에 등록을 거부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김홍중 집행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에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지배적이고, 국가복지 인프라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그런 속에서 가족관계 증명법으로 호적등재가 의무화되다 보니까 영아 유기로 이어지고, 음성매매나 개인적 거래 등이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내 입양이 이뤄진 1548건 가운데 1452(93.8%)이 미혼모가 낳은 아이였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에 대한 좋지 못한 편견은 부인할 수 없다.
김 집행위원장은 미혼모를 위한 사회간접자본 시설 역시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미혼모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를 자녀로 올리는 출생신고를 하고, 그 이후에야 입양을 위한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미혼모의 현실과 국민정서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처사라고 주장했다.
현재 개정법의 가장 큰 문제는 영아 유기 조장설이다. 미혼모들 입장에서 부득이 하게 입양을 보내기로 결심을 하는데 출생신고를 해야 하니, 영아를 유기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개정 입양특례법은 입양 절차와 조건을 까다롭게 규정함에 따라 버려진 아이들 대부분이 새로운 부모에게 입양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버려지는 아이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으나 당국은 현재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유기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화된 입양기준, 입양률 떨어져
 
지난 2009년 서울 관악구의 주사랑 공동체는 미혼모 등의 영아 유기를 막자는 현실적 요구에 맞춰 베이비 박스를 운영했다. 안전한 곳에 아이들 두고 가라는 취지의 베이비 박스에는 2010년에 4, 201127명이었는데 2012년엔 45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 출생신고가 의무화된 개정 입양특례법이 시행되면서 급증해 약 9개월 만에 127명의 아이들이 버려졌다. 일각에선 특례법과 상관없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시행이후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입양특례법의 강화된 입양기준은 입양된 아이들이 부도덕한 양부모에게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입양된 아동이 성장 후, 본인의 친부모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의도와 관계없이 영아 유기와 입양률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이후 접수된 한국입양신청 146건 가운데 62건만 처리됐고 84건은 여전히 진행 중으로 입양심사가 지연되는 동안 입양 대기 아동들은 입양기관의 일시 보호소에서 자라고 있다.
그렇다면 논의는 가능한 한 많은 아이들을 입양 보낼 것인지, 다소 적은 아동에게 안전한 환경의 가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을지가 쟁점이 돼야 할 듯 하다.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는 원칙적으로 원래 가정에서 보호하도록 하되 태어난 가정에서 보호할 수 없을 때는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가정을 찾고 마지막 수단으로 국제입양을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미혼모와 한부모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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