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부실·방만경영행태 문제 심각

공기업 경영에 도덕성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최근 감사원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을 부당하게 걷어다는 것과 정부 가이드라인의 몇 배가 되는 급여를 인상하고 엉터리 보고서를 올리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임직원 자녀에게 특혜를 주어 채용하기도 하고 회사는 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면서도 임원 임금은 그야말로 ‘퍼주기식’의 행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 공기업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부가 지분을 출자해 만든 회사로 정부의 지분은 곧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며, 따라서 공기업의 이익이 국가에 환원돼 재정으로 활용된다. 이는 공기업이 버는 돈은 국가의 수입이며 이는 곧 국민의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기업의 책무에도 물구하고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리책임이 있는 정부도 관리를 부실하게 해 결국 공기업의 부실. 방만경영을 방치했다는 비난은 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일번 기회에 공기업의 지배구조와 관리체계 등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지난 2003년 도입된 공기업 사장 공모제가 수술대에 오른다. 그러나 벌써부터 개선방향을 둘러싸고 이견이 속출하고 있다. 투명성을 높인다는 당초 취지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것. 지난달 28일 발표한 39개 공기업 및 자회사 등의 대상으로 실시한 감사원의 ‘공기업 경영혁신 추진실태’ 감사결과 발표를 종합해 보면 가스공사는 설비 준공이 늦어져 감가상각비가 예상보다 줄었는데도 이를 조정하지 않은 채 원가를 과다산정해 2001∼2003년 천연가스 도매요금을 ㎥당 4원씩, 총 1042억원을 과다징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기요금의 경우는 한전이 자회사들로부터 전력을 구입하면서 자회사의 이윤을 포함시킨 가격을 원가로 계산해 결국 2002년 ㎾h당 0.25원, 2003년 ㎾h당 1.36원 더 많이 국민들로부터 거둬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이 2년간 과다징수한 돈은 약 47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한전은 더 거둬들인 전기요금을 2004년 요금인하 방식으로 되돌려주었으나 아직까지 제도가 개선되지 않아 재발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통행료도 기본요금 산정주기를 최대한 짧게 잡아야 하는데도 5년 단위로 설정, 도로공사가 기본요금을 더 많이 거둬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이런 공기업의 경영도 상당히 방만한 것으로 조사됐다. 석유공사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임금을 2002년 24%(정부기준 6%), 2003년 12.4%(5%) 인상했고,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임직원 인건비가 평균 5천6백만원을 기록, 정부투자기관 평균치인 4천4백만보다 1천2백만원이나 많은 것으로 드러나 전반적인 구조적 결함과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 ◆ 공기업 관리 왜 안되나? 이러한 공기업의 부실·방만경영행태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것은 허술한 관리체계가 한 몫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공기업은 일원화된 법률체계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한데도 조폐공사 등 13개 기관은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6개 기관은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 인천공항공사 등 3개 기관은 민영화법에 따라 각각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덩치가 가장 큰 한국수력원자력 등 63개 자회사는 상법 적용을 받고 있다. 결국 일원화되지 못한 법률체계로 당연히 정부의 관리·감독이 부실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당수 공기업이 불요불급한 예산을 집행하거나 인건비를 과다 인상하는 등의 감독이 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경영진을 견제해야할 이사회는 사실상 거수기 역할만 수행해 내부통제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공기업 인건비 낭비 심각 감사원의 조사결과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지침보다 임금을 많이 올린 공기업은 총 13곳이나 됐다. 석유공사는 지난 2002년 정부의 가이드라인(6%)보다 18% 포인트나 높은 24%의 임금을 인상했으며 이 과정에서 경영진은 이사회에 정부 지침대로 6%만 인상한 것으로 허위 보고했다.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사회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는 것이다. 자체감사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내부시스템도 허술해 도로공사 등 13개 공기업이 집단적인 감사위원회 대신 ‘1인 감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공사는 조직 및 인사관리상의 허점도 드러났다. 고속도로 영업소 202개소의 통행료 업무를 외부용역업체에 위탁하고도 도로공사는 각 영업소에 공사직원을 4∼5명씩 배치, 연간 211억원의 인건비를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한 주택관리공단과 한국조폐공사는 각각 상시인력 644명과 106명을 정원 외 인력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회사가 수의계약을 통해 자회사를 부당지원한 사례도 적발되는 사례도 발견됐다. 한국전력은 출자회사인 한전 KDN이 광케이블 및 배전자동화시설 공사를 직접 수행하지도 않고 제3의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데도 수의계약 방식으로 한전 KDN에 공사를 계속 발주해 4년간 168억원의 비용을 추가 부담한 것. 이밖에 한국남동발전 등 6개 발전회사는 소액주주가 전혀 없어 소액주주 대표소송 등 보험사고 발생위험이 거의 없는데도 임원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해 2002년부터지난해까지 총 16억원의 예산을 낭비했다. ◆ 공기업의 손실 결국 국민 경제로 이어져.. 이러한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결국 국민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 가스공사는 원가를 과다산정해 소비자들로부터 천연가스 도매요금을 2001년부터 3년간 총 1042억원을 과다징수 했으며 한국전력은 2002년부터 2년간 약 4700억원을 과다하게 징수했다.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 해 3월 전기요금을 1.5% 인하해 직전 2년동안 과다징수한 전기요금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긴 했으나 요금산정 체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있어 앞으로도 요금과다 징수현상이 계속 발생할 것으로 지적됐다. 공기업들이 민간기업에 대한 대금지급 조건을 자회사보다 불리하게 적용하거나 공사계약 체결시 신규업체의 진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순수 민간기업에 피해를 준사례도 적발됐다. 한국전력은 지난 2001년 4월부터 발전자회사에 대해서는 전력거래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해 오고 있으나 민간기업에 대한 물품대금은 60일 만기어음으로 지급, 민간기업들이 지금까지 131억원의 금융비용을 추가 부담한 것으로 집계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공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방만 경영을 방지하고 효율적인 공기업 관리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공기업 임원 ‘낙하산’ 인사 독무대? 정부가 방만 경영을 방지한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부축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어볼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최근 공기업 임원으로 대통령 비서실 퇴직자들도 공직자의 낙하산 대열에 어김없이 끼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29일 공모 결과 박재호 상임감사가 신임 이사장으로 내정됐다고 밝혔다. 부산 출신의 박씨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과 정무2비서관을 지냈다. 그는 퇴직 후 2004년 총선 때 부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 낙선한 뒤 같은 해 9월 공단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박씨는 차관급 출신을 비롯한 13명의 쟁쟁한 후보를 물리치고 이사장에 올라, ‘영남권 낙선자’의 힘을 드러냈다. 이에 앞서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조폐공사 사장으로 구제되면서 낙하산 인사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현 정권 출범 뒤 2003년 6월부터 2005년 4월까지 퇴직한 대통령 비서실 소속 공무원은 박씨를 비롯해 119명으로, 이 중 67.2%인 80명이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유관기관 임원, 장관 및 국회의원 보좌관, 협회 임원 등 ‘정치권 퇴직자의 뒷자리 봐주기’로 해석될 만한 재취업 사례는 50%가량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분석 결과 비서실 퇴직자는 공기업을 비롯한 정부유관기관(18명·22.5%)과 정치권(15명·18.8%)으로 가장 많이 이동했다. 다음은 중앙행정기관(11명), 전문직(8명), 민간기업(7명), 대학교수(6명), 청와대 내 보직 변경(5명), 각종 협회(4명)와 정부·대통령 자문위원회(4명), 연구소(2명) 순이었다. 유관기관으로 옮긴 18명 중 12명은 사장과 부사장, 사무총장, 감사 등 고위 임원을 차지했다. 정치권으로 들어간 15명 중 9명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국회사무처 5명, 정당 정책실장 1명을 포함한 15명 전원이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또 한국전기산업진흥회 부회장, 여신금융협회 이사, 부동산신탁업협회 부회장, 대한석유협회 팀장 등 이익단체로 4명이 이동했다. 한 협회 관계자는 “입법 동향 등 국회 관련 업무를 위해 모셨다”고 말했다. 교수나 전문직인 변호사와 회계사 출신은 대부분 퇴직과 동시에 본업으로 돌아갔다. 청주에서 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옷을 벗은 양길승 전 부속실장은 호남대 조교수 겸 조선대 겸임교수를,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도 서울대 교수로 복귀하면서 SK(주) 사외이사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 정부, 공기업 대책에도 논란 이같은 공기업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003년 도입된 공기업 사장 공모제를 현행 자천(自薦)제의 문제점을 타천(他薦), 청빙(請聘)제 등을 통해 보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개선방향을 둘러싸고 이견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명성을 높인다는 공모제의 당초 취지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대통령의 직접 임명안을 겨냥하고 있는 것. 청와대는 최근 공모제를 2차례까지 실시한 뒤에도 적임자가 없을 경우 공모제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현행 공모제를 보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대통령의 직접 임명은 악용될 소지가 있다. 낙하산 인사 등의 고질적 병폐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스공사 노조 관계자는 “공모제 전체를 뒤흔들기 전에 문제점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시스템 자체보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사장추천위원회가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각 공기업에 설치된 사장추천위원회의 구성과 역할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명지대 박천오 교수는 “공모를 통해 지원자를 받으면 각 기업의 사장추천위에서 심사를 벌여 적임자를 선별하게 되는데 지원자들조차 사장추천위의 역할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방만.부실한 공기업 경영에 대한 비판은 정부나 국정감사 때마다 수없이 지적되어 왔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공기업들의 턱없이 높은 임금인상과 포상금의 살포, 접대비로 성형수술을 하는 등 셀 수 없는 지적들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럼에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어 가뜩이나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국민들에게 시름만 더 안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 것이다. 앞으로 정부가 공기업의 방만,부실경영에 어떠한 수술용 칼을 들이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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