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발족한달, 부작용 속출

‘도덕적 해이’ 등 각종 논란 속에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은 접수 시작 전부터 사전 문의가 폭주하며 이미 흥행 조짐을 보였다. 본접수가 시작된 지 한달이 지난 지금, 신청자 11만 명이 몰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행복기금법’을 제정하겠다던 기존의 입장을 선회해 “기금법을 별도로 만들지 않겠다”고 밝힐 만큼 진행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행복기금의 흥행 그 뒷면에 있는 부작용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세금으로 빚은 ‘떡’을 돌렸지만 바닥에 나뒹구는 ‘부스러기’를 처리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를 낳았다.

 

 

朴, 빚 탕감 흥행에 ‘활짝’
 
빚더미에 앉은 서민의 자활을 돕는 ‘국민행복기금’이 발족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출범한달 만에 11만 명이 몰리며 흥행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등에 따르면 20일까지 행복기금 접수자는 1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22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가접수에만 9만4000명이 몰렸고 지난 1일부터 시작된 본접수에는 1만7000여명이 신청한 상태. 이런 추세라면 수혜자가 금융 당국이 당초 예상했던 32만명을 훌쩍 넘어서 최대 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절반 이상은 행복기금을 통해 빚을 탕감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행복기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중 하나로,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6개월 이상 1억 원 이하를 연체한 채무자의 빚을 최대 50% 탕감하고 나머지는 10년까지 상환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행복기금을 신청한 뒤 채무조정 약정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해택은 무효가 되고 원금, 연체 이자, 기타 법적 비용 일체를 신청자가 부담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호응이 높다고 판단해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 하반기에는 서민정책금융 상품의 연체자에게도 국민행복기금의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소금융ㆍ햇살론 등 대표적인 서민금융 상품을 통해 대출을 받아 연체한 이들에게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행복기금 출범 당시 금융당국은 미소금융과 햇살론 연체자에게까지 기금을 지원해주면 ‘이중지원’의 논란이 일 수 있다고 판단, 지원대상에 포함하지 않았었다.

금융당국은 “미소금융은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기에 연체 시 채권 추심이 심하지 않지만, 형평성 차원에서 행복기금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며 입장을 선회한 이유를 밝혔다.

신용등급 7~10등급과 기초수급자 등을 위한 사업인 미소금융은 MB 정부에서 출범했다. 전 정권의 정책이라는 부담감과 이사장 퇴사 등 악재가 맞물려 실적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정부의 수혈이 불가피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 20일부터는 연대보증자도 행복기금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총 채무액을 채무관계인 수로 나눈 뒤 상환 능력에 따라 30~50%를 감면받게 된다.

정부는 행복기금의 운영이 순조로워 행복기금법을 별도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행복기금 출범 한 달 동안 검토한 결과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어 법 제정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며 “국세청 등과 자료 공유나 협조 문제에 있어서도 조율이 잘 돼 현재의 기금 형태로 운영에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 연체율 증가로 ‘울상’

‘국민행복기금’은 출범 당시 기대감만큼 반발도 거셌다. 성실히 살아온 다수의 국민들이 32만 명의 빚을 덜어줄 것으로 예상된다며 ‘채무자행복기금’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정부가 나서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빈축도 샀다.

실제로 행복기금 출범이 보도된 지난 2월 이후 혜택을 받기위해 빚을 안 갚고 버티는 채무자들이 늘었다. 최대 50%까지 빚을 탕감해준다는 소식에 성실하게 채무를 이행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해 진 것.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은행의 대출채권 연체율이 1.26%를 기록했다. 가계신용대출의 연체율은 지난 1월(1.08%)보다 0.13% 포인트 증가한 1.21%를 기록해 전체 연체율 상승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 8월 이후 매달 감소세를 보이던 가계신용대출의 연체율 상승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채무자들의 기대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연체율 상승은 카드업계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행복기금 출범 후 주요 카드사 고객들의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업계에 비상이 걸린 상태.

20일 금융감독원과 카드업계에 따르면 신한카드는 올 1ㆍ4분기 연체율이 2.85%를 기록, 지난 2011년 말 2.27%, 2012년 말 2.64%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삼성카드는 올 1ㆍ4분기 연체율이 1.78%로, 2011년 말 2.66%에서 2012년 말 1.68%로 낮아졌다가 다시 상승했다. KB국민카드도 2011년 말 1.51%에서 2012년 말 1.26%로 낮아졌다가 올 1ㆍ4분기에는 2.10%로 연체율이 급증했다.

하나SK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 역시 2012년 말에 비해 올 1ㆍ4분기 연체율이 일제히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국민행복기금 시행으로 인해 채무 연체현상이 중장기적으로 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빚 탕감을 기대하는 심리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며 채무자들의 부채 상환 의지가 저하되고 있다”며 “일부 악성 채무자의 경우 ‘쓰고보자’는 심리로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을 연체한 뒤 국민행복기금의 대상이 아니라고 통보하면 ‘배째라’고 나오기도 한다”고 난색을 표했다.

금융당국은 기금의 부작용으로 꾸준히 지적됐던 채무 불이행자의 무임승차를 차단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채무자, 닭 쫓던 개 신세

국민행복기금 혜택대상인 ‘협약기관’의 불투명한 기준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모든 조건을 갖춘 채무자도 협약기관이 아닌 금융회사의 채무일 경우 혜택을 받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38)씨는 A재단에 지난 2010년 2월부터 4000여만 원을 연체해 국민행복기금 신청 조건(채무액 1억 이하, 채무기간 6개월 이상)을 만족시키는 채무자였다. 박씨는 국민행복기금 가접수 당시를 회상하며 “온 가족이 빚을 탕감 받을 기대감으로 기쁨에 잠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행복기금 운용 기관인 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는 해당 금융업체가 협약기관이 아니라고 통보했고 박씨의 실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해당업체 신청을 금융기관의 선택에 맞김으로써 금융기관에게 행복기금 대상자를 선정하는 열쇠를 쥐어줬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 관계자는 “일부 보증재단의 경우 매각할 수 있는 채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행령의 개정 없이는 협약기관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 채무자들은 “채무를 진 금융기관의 허락 없이는 빚 탕감을 받지 못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금 신청이 들어오면 캠코는 채무를 진 해당업체에게 대상자 확인과 채권 판매 의사 여부를 묻고, 서류에 가부를 표시하도록 돼 있다. 제외대상 채권일 시 해당업체는 이에 대한 이유를 명시하도록 돼 있지만 캠코측이 자세히 확인하지 않아 부당한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 결국 감면을 희망했던 채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셈이다.

일각에서도 국민행복기금과 협약을 맺은 금융기관 및 대부업체 216곳에 대해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복기금이 일부 금융 소외자에게 ‘헛된 희망’ 내지 ‘그림의 떡’으로 전락해 버려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 금융위 관계자 “기금을 집중 관리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몇몇 채무자의 말처럼 채권 판매 여부 등을 해당 금융기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국민행복기금의 흥행에 힘입어 정부가 수혜 대상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일부 채무자에겐 상대적 박탈감만 안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수혜 대상을 마구잡이로 늘려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재활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진정한 국민행복기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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