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97년 기아차 사태 삼성 음모론은 억지"

이른바 이상호 ‘X-파일’로 불리는 안기부 도청 보도 이후 파장은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삼성이 기아사태에 무관하지 않다며 ‘삼성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한 언론은 삼성이 정·관계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친 삼성의 기아차 인수 과욕이 기아사태에 불을 지핀 것에서 나아가, 살얼음판을 걷던 한국 경제의 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외환위기 사태를 부른 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이라며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삼성은 “사실과 다르다”며 “오히려 (기아사태)당시 삼성생명은 기아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 100억원을 추가도 대출해 준 바 있다”며 기아사태와의 연계성을 차단했다. 또한 녹취록 요약본 중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에게 삼성의 기아차 인수 지원의사를 밝히며 “당 정책위에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사람이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가 아니라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였다는 의혹과 관련 민주당 측은 “기아차 인수지원 보도는 사실무근이며 김 전 대통령께서는 법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연계성을 일축했다. 이처럼 과연 삼성의 과욕이 과연 기아사태를 불러왔는가, 한 언론은 △강경식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의 親삼성정책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갑작스런 자금회수 △당시 여야 대선후보에 대한 로비 등으로 요약하고 있다. ◆ 기아차, 부실기업의 말로인가? 삼성이 부실로 내밀었나?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도청문건에서 기아차가 자금난을 겪던 지난 97년 4월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만나 강경식 신임 경제부총리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한 것이 논란의 발단됐다. 이 문건에는 홍 사장이 “부총리에게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이 실장은 3개에서 5개(3000만~5000만원) 정도를 주라고 지시한 것으로 되어있다. 강 부총리는 94년 자동차산업의 중복 과잉투자를 우려한 관련 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삼성차 공장의 부산 유치에 앞장서 ‘친삼성맨’으로 꼽히고 있는 인물로, 이 실장도 홍 사장과의 대화에서 “그 사람(강 부총리)은 내가 밀었다”며, 삼성과 강 부총리와의 연계성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이후 기아차에 빌려준 대출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고, 석달 뒤인 7월 15일 기아는 사실상 부도를 맞았다. 연초에 터진 한보 부도 이후 외국투자자들이 자금 회수에 들어간 마당에 기아사태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자금회수 규모는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 나중에는 하루 5000억원 규모로 늘어나 결국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마저 기아에 대한 더 이상의 지원을 포기하고 부도유예협약을 적용하게 된 것이다. 특히 기아에 대한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가 삼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차지하기 위해 계열금융사를 동원해 자금회수에 나섰다는 것. 김선홍 전 기아차 회장도 1999년 국회 청문회에서 “4월부터 3개월간 삼성캐피탈 등 제2금융권에서 약 5500억원의 자금을 회수했다”며 “삼성이 뒤에서 조종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삼성, 여야대선후보 로비 의혹? 당시 재계 순위 8위인 기아의 빚은 10조원을 웃돌았고, 이로 인한 부실 채권은 금융권 전체를 부실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그해 7월 말부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기 시작했다. 삼성은 당시 경제관료 뿐 아니라 여야 대선 후보에도 기아차 인수 로비의 손을 뻗쳤다. 안기부 도청 녹취록을 보면, 그해 9월 초 홍 사장은 “(기아차 인수와 관련해) 삼성이 갖고 있는 복안을 당당하게 밝혀 공론화시키면 당내 정책위에 검토시켜 도와주겠다”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이야기를 이 실장에게 전한 것으로 나온다. 앞서 홍 사장은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만나 “기아차 문제에 힘을 보태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이 실장한테 전한다. 앞서 기아차 인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정부와의 공조를 강조한 삼성의 내부 보고서가 폭로되고, 강 부총리가 기아차의 제3자 인수 방침을 시사하면서 삼성과 정부 경제팀의 유착 의혹이 커져가는 시점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로부터 한달 뒤인 10월 정부는 ‘자구노력을 통한 회생’ 방침을 뒤집고 기아의 법정관리 방침을 결정했고, 기아 경영진과 노동계는 “3자 인수를 통해 기아를 삼성에 넘기려는 음모”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때까지만해도 정·관계와 언론을 통한 삼성의 전방위 로비는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아차 해법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기아사태는 장기화하고 국가신인도가 추락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11월 초에는 이미 외화 유출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결국 같은 달 21일 대외신인도 하락과 외환보유고 고갈, 이에 따른 유동성 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고 말았다. ◆ 삼성, “사실무근, 기아에 추가로 대출까지 해줬다” 삼성은 기아사태 책임론 제기에 대해 음모라고 주장했다. X파일을 둘러싸고 당사자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여론을 삼성측에 맞추기 위해 삼성을 상대로 한 무책임한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것. 삼성은 이런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삼성은 해명자료를 통해 “기아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1997년 10월 금융계열사의 대출규모는 1865억원으로 1996년말 2022억원보다 157억원 감소했지만 이는 삼성카드가 수요자 금융(자동차 할부)으로 개인들이 대출한 257억원을 상환함에 따라 회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삼성은 오히려 기아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 100억원을 추가대출했다”고 덧붙였다. 대우그룹에 관련해서도 삼성 관계자는 “삼성증권 등 대우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는 대우부도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오히려 자금을 더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대우의 몰락은 채권단이 결정한 것일 뿐 삼성이 어떤 역할을 한 것은 없을 뿐 아니라 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1990년대 후반 대기업의 붕괴는 한국의 외환위기 전후 차입경영을 버티지 못한 데 1차적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삼성이 금융계열사를 동원,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었다. 기아차나 대우그룹의 몰락과정을 둘러싼 삼성의 개입론은 끊임없이 떠돌았지만 이제는 검찰의 수사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그 실체가 얼마나 드러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X파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녹취록 내용의 진위를 살펴보겠다는 입장이고 김우중 전 회장을 조사중인 대검 중수부도 대우그룹의 몰락과정을 자금조달 측면에서도 짚어볼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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