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불법도청 내용 알고도 숨겨

김대중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1999년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지원과 관련한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내용을 모두 파악했으면서도 이를 고의로 은폐한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또 당시 삼성은 불법도청 테이프 내용에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현 주미대사)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현 부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늙은이’로 부른 것에 대해 사과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옛 여권의 한 관계자가 언론을 통해 전했다. 이는 DJ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삼성의 불법자금과 로비 등 범죄사실을 파악하고도 DJ가 관련된 사실 때문에 덮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파문이 번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99년 박인회(58.구속)씨가 삼성 관련 녹음 테이프와 녹취록을 들고 삼성 쪽과 박지원 전 장관을 만나러 다니면서 당시 여권의 핵심 실세들이 97년대선 때 삼성이 불법자금을 뿌린 사실을 알게됐다”며 “천용택 전 국정원장과 박 전 장관은 그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또 “도청 내용상 삼성의 자금 제공은 주로 이회창 후보 쪽이었지만 DJ와 관련된 대목도 있어 이를 서둘러 덮어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안기부 불법도청팀인 ‘미림팀’이 홍 대사와 이학수 부회장의 대화를 녹음한 내용을 보면, 삼성은 97년 당시 이회창 후보 쪽에 몇 차례에 걸쳐 수억원~수십억원씩을 건넸고, 구체적인 액수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DJ 쪽에도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관계자는 “삼성 쪽이 DJ를 ‘늙은이’ 등으로 비하해 부른 것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신문이 입수한 녹취록(97년 10월7일치)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홍 대사에게 전달하면서 “늙은 사람은 누구를 통하느냐,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으셨다”며 DJ를 ‘늙은 사람’으로 지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 대사가 이 부회장과 대화를 하면서 “반면에 우리가 지난번 늙은이한테 한 것은 일체 얘기가 안 나오잖아요”라고 언급한 대목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박 전 장관은 “박인회씨가 인사청탁을 하면서 테이프와 녹취록을 건네줘 천 원장에게 이를 전달했다”면서 “당시에는 DJ나 우리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천 전 원장도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퇴직한 직원한테서 도청 테이프를 회수해 폐기했다는 보고만 들었다”며 “내용은 전혀 모른다”고 전한 바 있다. ◆DJ와 노대통령, X파일에 전전긍긍 당초 불법도청에 쏠렸던 여론의 관심이 X파일의 내용으로 전도되면서 DJ와 노무현 대통령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YS시절 불법도청이 이루어 졌다는 점에서 볼 때, DJ와 노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 집중적으로 들어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특히 DJ의 경우, 이미 드러난 X파일에서 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수 있도록 힘을 썼던 사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고, 더불어 아직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X파일에서 보다 상세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DJ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만일 DJ의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가 드러난다면,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현재로서는 그를 법정 구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역대 3번째로 대통령이 구속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확률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도 X파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DJ정권을 이어받았다는 점에 있어서도 노 대통령의 X파일 관련 여부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에 공개된 도청테이프에 따르면 DJ는 97년 대통령 후보시절 당시 “(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수 있도록)당 정책위에 검토시키겠다”면서 삼성에 당 차원의 도움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녹취록에는 DJ의 발언이 마치 이회창 후보의 발언인양 1페이지가 통째로 누락되는 등 DJ정부 들어 DJ에게 불리한 내용의 도청자료들이 대거 삭제됐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DJ의 발언이 이 후보의 발언으로 오인된 내용 중에는 이밖에도 “시중에서 삼성이 큰돈을 준다고 하는데 왜 돈이 없느냐”며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가 하면 “삼성에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난번 한국방송.동아일보 공동토론회 때도 삼성을 비난하지 않았다”고 삼성을 옹호하기도 했다. YS정권에서는 특히 대선 후보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도청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번에 밝혀진 DJ관련 내용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적으로 도청자료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드러난 DJ의 불법행각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료들에는 삼성으로부터 기아차 인수 지원에 대한 대가성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 불법대선자금 모금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1일 국정원으로부터 중간보고를 받은 국회 법사위원들도 ‘도청자료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했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자료들이 있더라”고 말해 국민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DJ정권 혈통을 공유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은 무엇보다 ‘DJ X파일’의 불똥이 참여정부로 튀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X파일 특검’을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도 DJ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수사를 자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법사위 소속의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한 인터넷매체를 통해 DJ의 불법정치자금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DJ의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가 포착되면 공소시효는 재임기간 5년을 빼고 계산해야 한다고 전했다. 주 의원에 따르면 만약 97년 12월경 불법정치자금 수수행위가 발생했다면 이듬해 2월 대통령취임 때까지 3개월 정도의 기간과 2003년 2월 퇴임부터 지금까지 2년5개월을 합친 2년8개월이 지난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불법정치자금 수수행위의 공소시효인 3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4개월 안에 DJ의 불법정치자금 수수행위가 드러난다면 처벌이 가능해 진다. 때문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3번째로 역대 대통령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재계' 인사들 겉으론 태연하지만 사실을 떨고 있어 미림팀의 도청 테이프 274개와 녹취록 13권을 검찰이 확보하자 정계 인사들은 무더운 여름, 때 아닌 긴장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물론 검찰은 도청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지만, 야4당이 주장하는 ‘특별검사제’가 도입될 경우 공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건모 전 국정원 감찰실장이 말한 것처럼 이들 테이프와 문건이 공개될 경우 YS.DJ시절 주요 거물급 인사들을 한순간에 침몰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YS정권부터 DJ정권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권력실세들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특히 주목된다. 여당은 도청 자료들의 공개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권에서는 특검을 통해서라도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어 검찰로서는 공개 여부를 두고 노심초사 해왔다. 이번 불법도청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사건의 핵심인물로 떠오르면서 그를 둘러싼 검찰 수사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철씨는 오정소 전 안기부 대공정책실장 등 안기부 내 경복고.고려대 인맥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직 공개되지 않은 X파일에는 특히 정관계 로비 여부를 비롯해 사생활 등 각양각색의 도청물이 들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DJ와 관련해서는 도청자료의 내용을 떠나 이미 박지원 전 장관을 비롯해 천용택 전 국정원장 등이 깊숙이 연관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YS에서 DJ에 이르기까지 정계 각 실세들과 대선 후보들에 대한 정경유착을 비롯, 불법대선자금 등 결정적인 단서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재계에서는 ‘우리는 연관 없다’며 아무 일 없다는 분위기지만, 그간 알려진 바로는 S그룹, H그룹 등 굵직굵직한 재계 인사들 모두가 도청자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이미 유출된 도청자료에서 드러난 삼성그룹이 불법대선자금을 전달한 사건 등의 경위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들어 있을 확률도 높다. 이밖에도 정.재계를 포함해 언론계, 법조계, 학계 등 유력인사들 사이의 접촉, 대화내용 등도 대거 들어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어 이들의 여자관계 등 개인 사생활과 연관된 다소 민망한(?) 내용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언론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한편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불법도청된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할 수 없게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공개가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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