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복제·중국 밀수출 등 ‘업자’가 판쳐

며칠 전 한 식당. 아들의 돌잔치를 끝낸 김모씨(41·여)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 전에 구입한 최신형으로 60만~70만원에 달하는 고가였던 터라 김씨의 마음은 타들어갔고 얼른 전화를 걸었다. 어느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택시기사라고 밝힌 이모씨(47)는 택시에서 휴대전화를 주웠다고 말했다. 곧 김씨의 집앞으로 찾아와 전화기를 돌려주면서 그는 사례를 요구했다. 3만원을 건넸으나 그는 너무 적다며 15만원을 요구했다. 김씨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휴대전화에 달려 있던 순금 액세서리까지 없어진 상태였다. 실랑이 끝에 김씨는 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택시기사가 아니며 휴대전화는 주운 것이 아니라 돌잔치 식당에서 훔쳤다는 것이다. 실업상태였던 이씨가 사례비를 받기 위해 휴대전화를 훔친 것이다. 이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단 휴대전화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이가 휴대전화를 분실하지만, 그중 되찾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접수된 휴대전화 단말기 분실신고는 모두 450만 여건에 이른다. 이는 2003년에 비해 100만 여건이 늘어난 규모다. 대부분 약간의 시간을 두고 휴대폰을 찾다가 결국 분실 신고와 새 휴대폰을 마련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시키는데 이러한 것들로만은 안심할 수 없어 보이는데...거두절미하고 휴대폰 관리 잘 해야될 듯 싶다. ■ 5만원이면 ‘복제’도 가능 이렇게 많은 분실 휴대전화는 어떻게 이용될까. 물론 분실 휴대전화의 일부는 주인의 품으로 돌아간다. 선량한 이를 만나는 경우다. 그러나 나머지는 주운 사람의 마음대로 처리되고 만다. 우선 주운 사람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분실신고를 하면 타인이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구멍이 있다. 바로 불법복제다. 불법복제는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습득한 단말기에 들어 있는 정보를 자신의 단말기에 복제하는 방식이다. 이는 ‘도청’이라는 범죄로 분류된다. 복제 비용도 300여만원에 달한다는 소문이다. 거꾸로 자신의 휴대폰 단말기 정보를 습득한 휴대폰에 복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이동통신사는 복제한 휴대전화 단말기를 원래 사용하던 단말기로 인식한다. 결국 복제한 휴대전화를 습득자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불법복제가 훨씬 쉬웠던 아날로그 시절에 등장한 수법이다. 당시 가입비가 200만원 정도에 달했기에 정상적인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자가 가입비보다 가격이 싼 단말기를 구입, 불법복제해서 사용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이는 카폰이 차안에 고정돼 있던 시절 카폰에도 적용됐다. 최근의 불법복제는 케이블과 관련 프로그램만 있으면 10분이면 되기 때문에 비용도 비싸지 않다. 5만원이면 충분히 복제가 가능하다. 게다가 ‘업자’를 찾기도 쉽다.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수많은 관련 웹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한곳으로 들어가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데 ‘업자’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휴대전화를 복제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서울 지역에 있는 업자를 소개해줬다. 웹사이트의 게시글에서도 쉽게 업자를 찾을 수 있었다.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다이얼을 돌리니 바로 연결이 됐다. 이 업자는 서울 강남의 지하철역으로 와서 전화를 걸면 나가겠다며 반드시 현재 사용하는 단말기도 함께 가져오라고 했다. 가격은 4만~5만원이었다. 사실 불법복제 휴대전화 단말기를 사용하면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이전에 사용하던 단말기가 인터넷을 할 수 없고 16화음을 채용한 구형이라면 복제한 단말기가 제아무리 최신형이라도 거기에 딸린 부가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과거 단말기의 정보를 복제단말기에 옮기면 이동통신회사가 복제단말기를 원래 단말기로 인식하는 탓이다. 게다가 정상적인 A/S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불법복제한 사실이 들통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 복제전화 인터넷 A/S센터 등장 사람 머리란 참 대단하다. 복제전화 ‘틈새시장’을 노린 인터넷 A/S센터가 등장했다. 인터넷에서는 쉽게 휴대전화 A/S서비스 사이트를 찾아볼 수 있는데, 대부분 정상 A/S센터보다 40~50% 할인된 가격으로 수리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한다. 일부 업체는 “A/S센터에 못가는 휴대전화 단말기도 수리합니다”라는 문구를 싣고 있다. 수리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인지 인터넷 장터에서는 분실 휴대전화 단말기가 싼값에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부가기능은 포기하더라도 싼값에 최신 단말기를 갖고 싶은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다. 불법복제가 성행하는 탓에 적발건수도 늘어났다. 정보통신부 산하 중앙전파관리소가 적발한 휴대전화 불법복제건수는 지난해 858대에서 올해 5월말 현재 1877대로 늘어났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네배 이상이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불법복제가 늘어나자 정부는 지난 3월 불법복제 방지대책을 내놨다. 새로 제조되는 단말기에 아예 인증시스템을 설치한 것이다. 단말기 암호와 이동통신사에서 생성한 암호가 맞지 않으면 통화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불법복제를 통한 단말기 사용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업자들도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한 것 같다. 업자들은 올해 생산된 최신형 휴대전화 단말기는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분실 휴대전화 단말기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중국에 넘기는 것이다. 중국이 국내와 마찬가지로 CDMA 800㎒대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는 밀수출업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사용할 수 없는 휴대전화를 구매한다는 내용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2월에는 급전이 필요한 이에게 최신 휴대전화를 할부로 구입하게 한 뒤 절반 가격에 사들여 밀수출하다가 꼬리를 잡힌 경우도 있다. 이렇게 밀수출된 단말기는 중국에서 공개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베이징과 톈진, 상하이 등 주요도시에서는 한국 최신형 휴대전화 단말기를 판매하거나 은행 저축 등을 담보로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전단지나 신문광고가 나도는 실정이다. 최근 최신형 단말기가 인증시스템을 부착해 국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바로 중국으로 밀수출되기도 한다. 통화 이외의 용도라면 불법복제 방지 시스템이 장착된 최신형 휴대전화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른바 ‘부품용 단말기’인데 이는 정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분실신고 때문에 휴대전화로 사용할 수는 없어도 액정이나 케이스 등 부품은 사용할 수 있다. ■ 스스로 조심하는 게 ‘최선’ 이렇게 주운 휴대전화를 ‘처리’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는 이들은 단말기에 GPS라도 달아서 위치를 추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는 비용문제가 있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이런 방법은 업계나 소비자 모두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현재 도입한 체제에 대해서도 너무 과민한 반응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 아무리 방어체계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해킹당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휴대전화 분실의 해법은 결국 개인에게 달려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머니에 50만원 이상을 넣고 다닐 때에는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주의하지 않느냐”며 “50만원 이상인 휴대전화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본인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실휴대전화를 신고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예전에는 절차가 복잡했지만 최근에는 간단하다. 게다가 옳은 일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 근처 우체국에 가지고 가면 우체국은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산하 ‘휴대폰찾기콜센터’에 보낸다. 콜센터는 이동통신사의 도움을 얻어 연락처를 파악, 주인에게 돌려준다. 분실휴대전화를 신고한 습득자는 5000원~2만원짜리 상품권을 받는다. 1999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콜센터는 지난해까지 43만3535대를 분실휴대전화로 접수받아 이중 40만1489대를 분실자에게 돌려줬다. 최근에는 콜센터가 널리 알려져서인지 하루 700~800여대에 달하는 분실휴대전화가 접수되고 있다. 휴대전화를 습득한 이들이 모두 단말기를 우체국에 보낸다면 억울하게 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같은 경제상황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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