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방지법, 공공기관에만 국한되는 ‘반쪽’ 법안

지난 6월 29일, 내부고발자 보호 및 강화를 골자로 하는 부패방지법(이하 부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부방법은 여전히 ‘반쪽’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방법이 취급하는 ‘부패 행위’의 대상이 공공기관에만 국한되는 한계 때문이다. 이미 이번 7월부터 시행이 되고 있는, 개정된 부방법 시행령은 △부패 신고에 대한 보상금을 2억원에서 20억원으로 늘리고 △환수된 돈이 없더라도 공익 기여가 현저할 경우 내부고발자에게 포상금을 주며 △내부고발자에게 보복행위를 하거나 그의 신분을 누설한 사람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의 보호는 공직자와 관련된 부패 사실을 신고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자. 레미콘회사가 원가 절감을 위해 모래 비중을 크게 줄여 ‘부실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한 직원이 부실 공사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우려해 내부고발을 하려 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부패방지위원회(위원장 정성진·이하 부방위)는 ‘공직 사회의 부패가 아니기 때문에’ 아예 사건을 접수받지 않는다. 또 검찰 등 수사기관에 의뢰하면 곧장 고발자 신원이 노출되어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례로 금융감독원에 카드사 비리를 제보했다가 도리어 해고를 당한 김모씨의 사건이 일반에 알려지면서, 김씨 같은 민간기업 내부고발자를 법적으로 보호 못하는 부패방지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참여연대가 부패방지위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개정안을 입법청원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에도 민간기업 내부고발자 보호장치는 빠져 있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 참여연대, "부방위 강화하고, 공익제보자 보호ㆍ보상 확대해야" 최근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는 부방위의 권한을 강화해 부패 신고를 활성화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부패방지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했다. 참여연대의 부패방지법 개정안은 △부방위에 조사권을 부여해 신고된 사실의 확인을 가능하게 하고, △부방위뿐만 아니라 다른 수사기관 혹은 언론에 제보했을 경우에도 신분 보장을 받을 수 있게 하며, △부패행위 신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밀 누설에 대해 면책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부패행위 신고자에 대한 보상도 강화해 △신고자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의 한도를 두지 않고, 신고로 인해 절약된 국가 예산의 15% 범위 내의 보상금을 주는 정률제로 하며, △부패 신고 과정에서 드러난 신고자의 범죄 사실은 책임을 감면하도록 했다. 또 부패 신고자에게 보복 행위를 한 자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 "언론 등에 제보한 경우도 보호 가능해야" 이런 부패방지법 개정안이 입법될 경우 그 동안 공익제보자들이 겪었던 불이익이 일부 시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많은 공익제보자들은 부방위가 아닌 수사기관이나 언론에 제보를 해 조직의 부패가 확인된 후에도 부패방지법상 보호를 받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현행법에서는 부방위 신고할 경우에만 신고자의 신분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이런 점을 감안해 부방위 외에도 소속기관, 감독기관, 수사기관, 언론 등을 통해 부패 사실을 알리려고 한 경우 신고자가 불이익 조치를 받지 않도록 했다. 개정안은 또 조직의 부패 신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조직의 비밀을 외부로 유출하는 경우에 한해서 비밀 준수 의무를 배제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신고자가 부패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과정에서 조직의 비밀이 일부 유출돼 법적 책임을 지거나,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빌미가 돼 왔었다. 공익제보자에 대해서 보복 행위를 한 자에 대해서 형사 처벌을 하게끔 정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현행법에서는 신분 보장에 관한 부방위의 조치 요구를 불이행시 과태료 처벌을 하도록 돼 있어서, 보복 행위를 막는 데 실효성이 없었다. ■ "민간기업의 내부 고발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이번 부패방지법 개정안에는 민간기업의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대책이 빠져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이재근 간사는 "부패방지법은 공공기관 또는 국가 예산이 일부 또는 전액 출자된 기관의 부패 사실을 신고한 공무원ㆍ준공무원ㆍ민간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기업의 공익제보자는 보호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간사는 "최근 일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내부 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드는 경우가 있으나 아주 드문 일"이라며 "최근 식품위생, 의료, 환경, 국가 연구개발 등 공공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으로 '부패'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진행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간사는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민간기업의 공익제보자라도 공공의 이익에 큰 영향을 줬다고 판단될 경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이 경우 기준과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에 법규로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번에 정부가 통과시킨 부패방지법 개정안은 △부방위의 조사관이 없고, △보복 행위에 대한 규정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신고 과정에서 비밀 준수 의무 배제 등의 조치가 없는 상태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공익제보자들을 위해 필요한 법과 조직이 부방법과 부방위인데도 법의 한계 때문에 공익제보자들과 공익을 저해하는 모든 부패 행위를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왔던 것. “부방위 이름을 국가청렴위원회로 바꿀 게 아니라, 공직자부패방지위원회로 바꿔야 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어디까지가 ‘공공기관’과 ‘공직자’ 범위에 속하는지가 일선의 내부고발 현장에서 명확하게 규정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공익제보자 모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공직유관 단체에 대해 내부고발을 했지만, 부방위는 이 단체가 공공기관에 속하지 않는다며 접수조차 하지 않았으며, 공적 자금을 지원받아 사실상 정부 소유인 은행의 분식회계 또한 부방위는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정안에서 부방위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전혀 다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부방위 안팎의 실망감이 크다. 현재 부방위는 신고자에 한해서만 조사할 뿐, 피신고자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다. 이번 개정안에 ‘피신고인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항목이 삽입됐지만, 피신고인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성해용 부방위 상임위원은 “조사권이 없어 정확한 부패 혐의를 가려내지 못해 유관기관에 이첩만 하기 때문에 실제로 부패행위를 적발하고 시정하는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계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은 ‘공익제보자보호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 노동, 교육, 보건, 의료 등 민간 영역에서의 내부고발도 공익에 부합하는 경우 법이 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법안은 또한 공익과 밀접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 대해 내부고발을 의무화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김승민 한국투명성기구 정책위원은 “부방위는 공직비리 수사나 인사검증 기능 이관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조직 확대를 꾀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부패행위를 시정하고 방지하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달라”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