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시설, 안전관리 부실, 그리고 과도한 업무가 부른 참사

 육안으로 확인 가능했던 분진, 안전관리 제대로 하긴 한 건가?
‘하청의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놓여있던 하청업체 직원의 죽음

 

14일 오후 8시 50분. 전남 여수시 여수산업단지에서는 6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은 폭발사고가 있었다. 1~2초 간격으로 두 번에 걸쳐 들려온 굉음과 함께 엄청난 섬광이 여수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여수산단 내 대림산업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공장 사일로(silo·저장탑)의 내부 검사를 위해 맨홀을 설치할 목적으로 8m 높이인 저장탑 2층에서 보강판 용접 작업 중에 일어난 인재(人災)였다. 아직까지 사고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19일 오전 폭발사고 희생자 6명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 14일 폭발사고가 발생한 여수산단 모습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여수산단’

여수산업단지는 동양최대규모의 석유화학산업단지로 유해화학물질 취급량이 전국 취급량의 30%로 가장 많다. 산업단지 내에는 GS칼텍스와 엘지화학, 여천NCC, 호남석화 등 석유화학업체 60여개를 포함해 고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220여개 기업이 함께 입주해 있다. 화학산단의 특성상 작은 폭발사고가 연쇄폭발로 번질 수 있고 또 유해화학물질의 유출로 이어져 대형 환경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정된 부지에 많은 업체가 모여 있어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 각종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1989년에는 럭키화학 공장 폭발사고로 16명이 숨졌고(16명 사망·17명 부상), 2000년에는 호성케멕스 폭발사고로 7명이 사망하는(7명 사망·18명 부상)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밖에 크고 작은 폭발이나 화재, 가스누출 등 지금까지 200여건에 육박하는 각종 사고로 1천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뿐만 아니라 인체 및 수생태계에 중대한 위해를 줄 수 있는 특정수질유해물질을 공공수역인 광양만에 무단 배출된바 있어 환경적인 면에서도 여수 지역 주민들의 불안함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고가 날 때마다 노후 시설이나 안전 관리 부실 등이 원인으로 지목돼 오래전부터 ‘화약고’라는 악명으로 불리고 있다.

노후 시설, 안전관리 미흡이 빚어낸 ‘인재(人災)’

14일 폭발사고가 난 곳은 1989년 준공된 대림산업의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공장의 사일로(저장탑)다. 사일로는 가연성 가스가 상존하는 공간이지만 법적 검사 의무가 있는 설비가 아니고 사용 연한도 별도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년이 넘는 낡은 시설임에도 별다른 관리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 관계자는 “설비 연한이나 노후화를 논하려면 설비에 기계적인 마모나 부식 등이 있어야 하는 이 설비는 부식성 있는 물질을 취급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사일로는 합성 알루미늄으로 제작돼 있어 수백 년의 수명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30분의 휴식 후에도 작업을 재개할 때는 가스 검사를 하도록 한 업무 규정과 모순돼 위험 시설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사일로 주변에는 ‘분진 폭발’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안전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번 폭발사고 또한 사일로의 안전관리미흡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일로는 분말형태를 저장하는 탱크이기 때문에 퍼지(purge)과정에서 수압에 의한 클리닝 작업이 이뤄진 후 용접작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장증언에 의하면 클리닝 작업은 없었다. 이 때문에 분말상태의 찌꺼기가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림산업이 하청업체에 작업허가서를 줬다면 퍼지가 완료(퍼지 완료 기준: 체크포인트와 측정값을 확인해 ‘0’이 나온 것을 의미)된 것을 의미하는데 아직까지 대림산업 측은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더욱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한편 현장근로자들에 의하면 육안으로 분말가루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잔존가스 존재유무에 대해 논란이 식지 않는 이유는 1~2초 간격으로 연쇄폭발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현장근로자들에 의하면 30m 사일로 2층에서 불꽃이 튀면서 1차 폭발 후 1~2초 후에 강력한 2차 폭발이 일어나며 상부 호파가 날아갔다. 하지만 현장근로자들은 대림산업이 주장하는 분진에 의한 발화, 폭발은 호파가 날아갈 정도의 강력한 폭발력을 가질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또한 안전교육 유무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어 안전관리의 부실이 빚어낸 대형 참사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다단계 도급’ 과정이 부른 ‘무리한 업무’ 그리고 참사

대림산업은 유한기술에 도급을 줬다. 유한기술은 또 하도급회사에서 도급 인력들을 모집해 이번 사고현장에 투입했다. 1967년 조성된 여수신단은 시설 노후화에 따라 정비·보수 작업이 주로 이뤄진다. 이러한 작업들은 하도급업체들이 주로 맡아서 진행하는데, 여수산단에서는 대부분 소수의 대형 하도급업체가 대기업의 일감을 따낸 뒤 이를 재하도급하는 형태로 계약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단계 도급 과정에서 ‘돈이 되는 일’은 상위 단계 도급업체가, ‘위험한 일’은 하위 업체가 맡는 것이 관행처럼 이뤄져왔다는 것이 여수산단 근로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대림산업은 지난 12일부터 정비·보수작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사고일인 14일은 사실상 첫 작업 일이었고 근로자들은 첫날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장근무(근무시간 오전 8시~오후 5시)를 하다가 오후 8시 50분께 사고를 당했다. 이에 플랜트건설 노조는 “밤늦은 시간까지 공기단축을 위해 노동자들을 죽음이 예고된 현장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다음달 5일까지 예정된 보수작업에 대해서도 근로자들은 “공사기간이 짧아 작업이 어려우니 늦춰야 한다”는 의견을 윗선에 얘기했지만 묵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인건비 절약을 목적으로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고 이에 따라 과도한 업무가 생겨난 것에 대한 파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장근무를 하지 않았다면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란 때늦은 후회도 한동안 계속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급박한 상황에서 구급차량이 늦게 도착하고 응급조치 또한 하청업체 직원, 사고 당사자들에게만 맡겨졌다. 이는 대림산업의 응급대응계획이 상당히 허술하거나 이행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에 사고 시 대응 매뉴얼 존재유무와 현장조치가 늦어진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다.

▲ 폭발사고 희생자들의 합동 분양소

검찰, “업무상 과실 드러나면 엄정처벌 하겠다”

억울하게 죽어간 근로자들을 위해서라도 확실한 현장 검증과 원인 분석,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관리 보강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찰은 대림산업의 압수수색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고 공장 주변에 설치된 CCTV도 확보해 분석을 마친 상태다. 또한 사측의 업무상 과실이 드러나면 엄정처벌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폭발사고 희생자 17명에 대한 보상협상이 사건발생 5일 만에 타결됐다. 장례비, 위로금 등 보상금은 1인당 최저 5억3600만 원에서 최고 5억4600만 원으로 모두 29억 원 선이다. 합의금에는 산재보험, 근로자재해보상보험이 포함됐고 장례비는 별도 지원된다.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까지도 폭발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유족들이 명확한 사고원인의 규명을 촉구하는 만큼 경찰의 수사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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