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앞두고 유관순 열사의 키 논란이 불거졌다.

25일 천안향토사연구가 임명순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유 열사 수형기록표의 ‘6촌(寸)’을 ‘0촌(寸)’으로 보아야 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충청지역독립운동가학술대회에서 유 열사의 키는 수형기록 표장 기록된 5천 6촌(169.68cm)이 아니라 5척 0촌(151.5cm)으로 이는 1930년대 조선인 여자 평균이 150.26cm에 들어맞으며 이러한 오류는 수형기록표를 작성한 일본인 간수의 ‘0’을 ‘6’처럼 쓴 독특한 필체 때문에 생겼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 있다.

임씨는 26일 독립기념과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주최하는 월례연구발표회에서 ‘유관순 열사 신장(身長)에 대한 재검토’란 주제발표에서 이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씨는 1992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9권에 수록된 서대문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 6천명의 수형기록표는 모두 키를 ‘척(尺)촌(寸)분(分)’으로 표기했다며 이 가운데 ‘0’자 표기 수형기록표 33개, ‘6’가 표기 수형기록표 14개, ‘5척(尺) 6촌(寸) 0분(分)’으로 표기된 수형기록표 10개를 찾아 비교했다.

비교 결과 ‘0’자와 ‘6’자의 표기는 확연하게 달랐다고 주장했다.

또 임씨는 유 열사의 오빠 유우석(1899~1968)과 남동생 유인석(1904~1977)의 사진을 통해 이들 형제 모두 장신임을 볼 때 유 열사도 키가 컸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 국내 주요 신문에 유 열사 가족사진에서 유우석과 유인석은 60~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변 인물보다 월등하게 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임씨는 “유 열사 수형기록표의 ‘6촌(寸)’ 글자를 ‘0촌(寸)’으로 봐야 할 명확한 근거는 없으며 기록표의 ‘6’자는 기록자의 독특한 필체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며 “유 열사의 키는 분명히 ‘5척 6촌 0분’인 169.68cm”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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