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역사의식, 윤리의식…청소년은 무방비 상태

▲ 일간베스트 저장소 메인화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에 이어 ‘홍어무침’으로 비하
“운지, 운지” 고인은 이미 유머 재료일 뿐, 죄책감 없어
일베 사이트 5분만 둘러봐도, 혐오 단어·사진 발견할 수 있어

 

요즘 인터넷에서 최고의 관심과 최악의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다. 최근에는 울랄라세션의 리더인 임윤택씨의 죽음에 관한 비하성 게시물로 화제가 됐다. 일명 ‘고인드립’이라고 지칭되며 ‘죽음’을 장난거리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일베충(벌레 蟲)’으로까지 불리며 유해사이트 지정 촉구가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일베 사용자의 대부분이 10~20대의 연령층으로 분포돼 있어 광주폭동, 호남비하, 여성비하 등의 잘못된 역사의식과 윤리적인 시선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5·18 광주폭동? 위안부가 원정녀?” 도 넘는 ‘일베’

불과 100년 안팎의 역사에 대해 벌써 잊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잘못된 역사의식이 인터넷에 이미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매도하고 일본 위안부 할머니를 일본으로 원정을 간 ‘원정녀’라는 저속한 언어로 대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를 넘는 언사 행위에 저절로 혀를 쯧쯧 차게 되는 이곳이 바로 ‘일베’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폭동이라는 표현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홍어무침’이라는 표현을 통해 전라도 거주민 전체를 비난하기도 한다. 여기서 ‘홍어’는 광주 및 호남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말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전사자의 시신 썩는 냄새를 쿠테타군 관계자가 홍어 삭힌 냄새에 비유한데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다. 이와 관련해 누리꾼들을 당황하게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광주를 비하하는 말들을 일베 회원의 일부인 광주의 학생들도 서슴없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까운 사람이 겪었을 잊지 못할 과거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일베 사이트의 게시물에 있는 추천버튼은 ‘일베로’, 반대버튼은 ‘민주화’로 돼있어 사이트 전체의 분위기가 특정 지방 비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걸러지지 않은 말들을 유행어마냥 쉽게 내뱉고 초점 없이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논란이 수면위로 점점 떠오르고 있다. 또한 무방비 상태에 놓인 청소년의 역사의식에 대해서도 교육적인 면에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고인드립, 여성비하’ 일베에선 이미 일상화

앞서 언급한 故 임윤택씨에 대한 비하발언은 이미 도를 넘어 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심할 정도의 표현도 이미 일상화돼 있다. 한 일베 회원은 “남편이 떠났습니다”라는 제목으로 故 임윤택씨와 그의 부인 이혜림씨의 결혼사진을 게재하고 “10억을 받았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다른 게시물에는 “니가 신입이냐”는 제목으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노래 한 곡 뽑아봐라”는 글로 채워졌다. 죽음을 경시하는 태도와 특정 인물에 대한 지속적인 폄하는 분명 논란의 대상이다.
‘운지’라는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자, 보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의 회원들이 부엉이 바위에서 자살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모 제약사 드링크 광고 중 폭포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고 이 장면을 합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패러디를 생성했다. 또 여기에서 기인해 “노운지”, “운지하다”는 등의 단어가 생겨나게 됐다. 이렇게 생겨난 ‘운지’라는 단어는 유래한 이유나 뜻도 모른 채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다.
이에 대해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족 등에 대한 악성 댓글, 이미지, 게임 등이 유통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분노와 우려를 금치 못한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회원들의 신고 등을 통해 해당 사이트 운영자에게 공문이나 유선 등으로 콘텐츠 삭제를 비롯해 신중한 관리 운영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인이 유머의 재료가 돼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것만큼, 여성에 대한 비하발언도 자주 눈에 띤다. 일베 회원들 중 일부는 한국 여성을 ‘김치녀’로 지칭하며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욕설이 담긴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는 것. 김치녀는 명품과 차종을 밝히고 공평하지 않은 비용부담 등에 해당하는 여자를 일컬으며 개념 없는 의미가 동일시 사용되고 있다. 자신의 여자 친구 등 지인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김치녀’라고 말하며 인증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여성을 일방적으로 ‘물질의 노예’, ‘속물’ 등으로 규정해 자신의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 다는 평가도 있다.
빠른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신조어 또한 급속도로 생산되고 있는 지금. 좋지 않은 의미의 언어가 일상에서 무심하게 통용되는 것은 여전히 파문을 일으킴에 틀림없다. 잘못된 윤리의식에 대한 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벤져스 놀이’ 성행…혐오성 게시물 수두룩해

작년 11월, 일베를 알리는 계기를 톡톡히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일베 회원 본인이 키우는 강아지와의 수간 인증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이다. 성기 부분은 자체 검열로 모자이크 처리한 뒤 게재된 이 게시물은 20분 동안 올리고 지우겠다는 제목과 함께 반짝 게재됐었다.
이 게시물에는 ‘드디어 우리집 개찡이 마음을 열고 나를 받아줬어’, ‘평소엔 피했는데 오늘은 좋았음’ 등의 말이 함께 적혀있었다. 이 같은 혐오·음란물에 대해 누리꾼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며 “보고싶지 않다”, “더럽다”, “가지가지 한다”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글이 올라오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일베 회원들의 빠른 렙업을 위한 ‘일벤져스’ 놀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베는 게시물을 올려 찬성표인 ‘일베로’를 많이 받으면 경험치가 쌓여 레벨이 오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서 일벤져스 놀이란 적당히 벗은 사진을 인증하는 것으로 각종 혐오 게시물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벤져스 놀이라는 주제로 올라오는 게시물 대부분이 자신의 성기까지 노출하는 사진을 내걸고 있다. 다시 말해 자학에 가까운 ‘일벤져스’ 행위를 통해 레벨업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자신의 주요 신체 부위를 노출하기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혐오물에는 음란물 외에도 자리양보를 하지 않은 초등학생의 머리를 때리는 행위를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거나 이건희 회장 손녀딸을 납치 강간을 모의 한다던가 울산 두자매 살인 사건의 김홍일처럼 범행을 예고하고 시행하던가 하는 광기어린 모습을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장애아동 어린이집 봉사를 가서 멀쩡하게 생긴 애들 밥 떠먹여주다 보면 옷 같은데 흘린다. 그걸 닦아주면서 가슴을 만진다”면서 봉사활동을 하며 장애아동을 성추행했다는 내용, “며칠 후에 6살 조선족 여자아이를 XX할 계획이다. 질문 받는다”라는 글과 “고양이는 죽여야 제 맛”이라는 글들이 올라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유해정보심의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일베 게시물의 유해성을 신고한 내용 중 18건이 심의위 의결을 거쳐 ‘시정요구’로 처리됐다. 하지만 아직 모자르다는 분석이다. 유해정보 뿐 아니라 불법정보성 게시물도 문제시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심의위에서는 우선 개별적인 정보(게시물)를 보고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며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고 한다면 청소년 접근에 있어 수용 수준이 부적합하고 전체적으로 불법 정보들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일베 사이트 전체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선정하는 문제에 대해 “그런 내용들을 검토 중이고 고려하는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환경의 사이트로 여론이 모아지고 있는 만큼 방통위의 적절한 개입과 일베 운영자의 유해정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베를 거부하는 자, ‘신상털기’로 앙갚음?

얼마 전 유머사이트인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가 해킹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베의 한 회원이 해킹 후 결과물을 인증한 것에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차단된 IP를 해제함은 물론 오유 운영자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키기도 했다.
사건의 중심에는 두 사이트의 각기 다른 정치성향이 있었다. ‘전반적인 진보성향’으로 알려진 오유와 ‘맹목적인 보수성향’으로 알려진 일베가 서로 마찰을 일으킨 것이다. 이들 성향은 과거로부터 자주 부딪혀왔고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갈등을 빚게 됐다. 이에 따라 일베의 한 회원은 오유에 글 도배와 서버다운을 시키는 등 무차별적 공격을 감행했다. 오유 운영자는 일베 회원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의 아이디와 IP를 차단했고 이것에 반발한 일베 회원은 사이트 해킹을 감행했다. 차단된 계정을 해제하고 오유 운영자의 세부 신상 정보를 유출시킨 것이다. 이 사건으로 오유 운영자는 “보안강화 작업을 완료했다”며 “해킹범과 신상털이범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은 비단 오유만의 일은 아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오픈된 SNS에 올라오는 이들의 신상이 털리기도 했다. 특히 학교와 친구 등이 비교적 명확히 나타나는 페이스북은 일베의 사냥감으로 부상하기도 했었던 것. 또한 일베 게시물의 선정성을 지적한 기사를 링크해놓고 해당 기자의 ‘신상을 털자’며 집단 테러를 독려하는 게시물도 올라왔다. 실제 한 기자는 “일베의 유해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올렸더니 일베 아이디를 가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카카오톡 단체 채팅 그룹에 초대해 테러를 감행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사진 등을 함부로 올리면 일베에서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며 인증을 하지 말라는 우려의 말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무분별한 비난’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방종’

일베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이하 디씨)’에서 파생된 사이트다. 디씨에서 베스트 글을 퍼 나르던 곳으로 초기에는 유머글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욕구와 분노를 배설하는 곳으로 변질됐다.
물론 일베현상의 긍정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나이나 직업과 같은 모든 기성 권위가 무시된다는 점, 생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표현의 자유 등이 바로 그것. 하지만 지나치게 원색적인 비난과 인권 침해성 게시물 등은 항상 논란 돼왔다. 사회적 억압이 강할 때 자신의 욕망을 배출할 수 있는 ‘해우소’를 만들어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되는 법이다. 여기서 일베현상은 익명에 기댄 개인들의 원초적인 욕구와 강력히 결합돼 있고 차별적이고 비하적인 언어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현상이다.
최영일 문화평론가는 “일베의 유해성을 놓고 적대시하며 현상을 덮기보다는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익명에 기댄 네거티브는 전염성이 강하다”면서 “다수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집단이 등장해 일베현상을 담론의 장으로 끌고 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극우세력으로 알려진 일간베스트 저장소. 하지만 그들의 맹목적인 정치적 성향보다는 자유를 넘어 방종으로까지 흘러간 잘못된 인식에 문제점이 있다. 이제는 각종 불법 게시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방침과 나아가 일베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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