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5년이 넘도록 싸우고 있는가?

 


전세계 기타 점유율 30%차지하고 있는 콜트악기
1년 적자났다고 생산직 노동자 해고
줏대 없는 대법원, 같은 입으로 두 말하기까지


2007년 콜트악기는 생산직 160명 중 56명을 정리해고했다. 해고노동자들은 부당해고라며 복직을 요구,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측으로 인해 7년째 인천 부평구 갈산동 공장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난 5일 경찰의 강제집행으로 농성장은 철거됐다. 또한 건조물 침입 혐의 등으로 농성 중이던 해고노동자 13명 전원 불구속 입건됐다. 다음 날 6일에는 송영길 인천시장이 농성 현장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석방된 해고노동자들은 여전히 투쟁 중이며 14일 복직요구 집회를 열었다.

해고 할 수밖에 없고
해고당할 수밖에 없는 사정

콜트악기는 1973년 자본금 200만원으로 사업을 개시한 이래 대전, 인도네시아, 중국 등 6개 법인으로 확장하여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점유할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는 50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으며 1996년부터 10년간 순이익 누적액이 170억원에 달하는 국내 굴지의 기타 생산 업체가 됐다. 또 2006년 평가기관으로부터 AA0(우수), CF1(현금창출능력우수)의 평가를 받으며 재정적인 면에서도 안정적으로 평가됐다.

콜트악기 박영호 사장은 한국 부자순위 120위(2007년 기준)에 이름을 올렸으며 콜트악기의 연속흑자행진에 2005년 기존 미국인 주주가 지니고 있던 49% 지분을 박 사장이 90억에 인수해 단일주주 100%를 이루었다.

그러나 2006년 사측은 “8억 5,000만원의 당기 순손실을 봤다”며 2007년 1월 정리해고를 계획하고 생산직 160명 중 56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어 2008년 8월에는 인천 부평구 갈산동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 다롄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로 공장을 이전했다. 사업장을 옮기면서 남아 있던 공장노동자 113명도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에 해고노동자 A씨는 “매년 수십억원에서 200억까지 흑자를 내던 회사가 갑자기 적자 때문에 문을 닫게 됐다고 공고 한 장 달랑 붙여 해고를 통보했다”며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B씨 역시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다녔는데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해고당한 게 억울하다”며 “어디가서 새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대법원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네?”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해고노동자들은 부당해고라며 행정심판과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 제소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이에 콜트악기도 노동위원회의 처분을 최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은 판정을 취소하라고 했으나 항소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012년 2월  대법원도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부당해고가 맞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콜트악기는 정리해고노동자에 대해 다시 재해고를 통보했다. 공장이 폐업했으니 복직할 직장이 없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콜트악기는 용역을 동원해 농성장을 강제철거 시도하면서 해고노동자들과 폭력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에 해고노동자들은 공장폐업이 ‘위장폐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콜트악기는 노조가 생성되자 회사의 경영난을 이유로 정리해고와 공장폐쇄를 단행했다. 그 대신 대전에 콜텍(어쿠스틱 기타)이란 자회사를 만들었다. 콜텍 역시 노조가 생기자 콜텍 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이어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마련해 관리직과 기술직, 생산설비를 옮겨 놓은 후 ‘콜트’와 ‘콜텍’이라는 이름으로 기타를 생산했다.

해고노동자 측은 “회사가 경영난에 시달린다며 공장을 폐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버젓이 동일한 브랜드로 기타를 생산하고 있다는 게 수상하다”며 “부평공장 문을 닫은 것은 위장폐쇄가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한 다른 공장에서 신입 공채를 한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대법원은 콜트악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당시 “콜트악기의 공장폐쇄는 위장폐업이 아니라 불가피한 사정에 의한 것이므로 정리해고 요건을 갖췄다”며 “해고무효확인 청구를 각하하고 2008년 이후 임금 및 퇴직금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결을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서 1심 재판부의 “정리해고 수순을 위해 부평공장을 폐쇄한 것이므로 위장폐업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금속노조 방종운 콜트악기지회장은 “다른 소송이긴 하지만 하나의 동일 사안을 두고 대법원 재판부가 각기 다른 판결을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소송 모두 1심과 2심 판결도 각각 엇갈렸다. 이처럼 콜트악기 집단해고 사태를 두고 대법원의 엇갈린 최종 판결이 나오면서 끝날 것 같던 해고노동자들의 싸움도 계속됐다.

주인이 바뀐 땅에서 투쟁하기란?

콜트악기는 해고노동자들의 공장점거 노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2011년 2월 공장 부지를 다른 이에게 매각했다. 매입자는 이곳에 LPG 충전소를 세우겠다며 빈 공장에서 투쟁하던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노조가 개인에게 넘어간 부평공장에서 점거농성을 계속하면서 공장부지 소유주의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에 방 지회장은 “부평공장 현 부지 소유주가 콜트악기 사장과 모종의 계약을 했거나 다른 유대관계가 있다고 본다. 토지·건물매매 등 관련 계약서에는 여러 가지 의혹이 보인다. 건물철거 공사계약서에 ‘향후 토지주인과 논의’라는 문구가 있다. 앞으로 토지주가 누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반박했다.

또한 부평공장 매입자가 2007년 서울 강서구 충전소 허가과정에서 뇌물공여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매입자가 해고노동자를 상대로 건물명도 소송에서 이기면서 해고노동자의 투쟁은 더욱 어려워졌다. 노조의 사유지 점거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는 근거로 지난 1일 투쟁 2126일만에 해고노동자들은 인천지법 집행관과 용역 150여명에 의해 공장 밖으로 쫓겨났다. 이후 경찰 150여명이 출입을 봉쇄했다. 6일 재진입에 성공한 해고노동자들이 농성을 이어갔으나 이날 오전 8시께 콜트악기 공장에 경찰 20여명이 들이 닥치면서 삼일천하로 끝나게 됐다.

경찰은 공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방 지회장 등 농성하고 있던 해고노동자 13명을 모두 연행했다. 이들을 도우며 공장에서 미술작품 등을 만들며 농성에 동참한 전진경·성효숙 작가도 함께 연행됐다. 강제집행 과정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설치한 작품이 파손됐다는 주장이 나와 현재 물의를 빚고 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을 비롯한 예술가 6명은 콜트악기 부평공장 건물 안에 전시된 작품을 집단 파손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등으로 건물 소유주를 인천지검에 고소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공장 내부에 남아 있는 작품 보호를 위해 건물 철거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천지법에 냈다.

불구속 입건된 지 하루 뒤인 6일 해고노동자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이들은 이제 농성을 벌이던 공장으로 더는 돌아갈 수 없다. 대신 공장 주변에 머물며 촛불문화제 등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콜트악기의 집단해고와 관련해서 방 지회장은 “비단 콜트악기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사용자는 회사의 경영사정이 좋은데도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뒤 돌아갈 공장이 없으니 배째라는 식으로 버티고, 법원은 여기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또한 “싸움은 투쟁이 아니라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믿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버티는 것”이라며 “가정이 망가지고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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