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돈 탈탈 털어 살려놨는데…”

쌍용건설에 시련이 또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심각하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앞서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쳤던 직원들의 마음은 더욱 쓰라리다. 자체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신입 공개채용을 무산시키는 등 살리려고 애쓴 회사다. 행여 매각에 피해가 될까,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쌍용건설의 매각은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쌍용건설 노조는 캠코(한국자산관리)에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캠코는 “최선을 다했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쌍용건설을 둘러싼 소용돌이는 어떻게 번질까.

 

완전자본잠식, ‘상장폐지냐 워크아웃이냐’ 기로에
“손 뗀다”는 캠코에 “무책임한 행동” 비난 들끓어
“둥둥 떠다니다 사라질 판” 어쩌다 이 지경까지?

지난해 9월 말 기준 쌍용건설의 자산은 1조 4229억원이었다. 이중 부채는 1조 2949억원, 자본총계는 1280억원으로 부채비율만 1011%가 넘었다. 당시 쌍용건설의 자본금은 1280억원으로, 납입 자본금 1480억원보다 200억원 적었다. 즉 14%에 달하는 자본잠식 상태를 보인 것이다. 이때까지는 부분자본잠식에 그쳤을 뿐이었다.

완전자본잠식 상태
상장폐지 vs 워크아웃

그러나 지난 14일 쌍용건설은 지난해 쌍용건설의 자산은 1조 2124억원으로, 이중 부채는 1조 3578억원, 자본총계는 -1454억원이라고 공시했다.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미분양 해소 및 민간 PF 사업 정리에 따른 대손 발생이 그 이유였다. 이로써 쌍용건설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놓이게 됐다.

완전자본잠식은 누적손실이 납입자본금을 까먹어 자본총계가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거래소 규정 상 완전자본잠식은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이에 쌍용건설이 사업보고서 제출시한인 오는 4월 1일까지 자본잠식을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완전자본잠식이 해소될 때까지 주권매매거래정지 조치도 계속될 예정이다.

현 시점에서는 쌍용건설이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거론되고 있다. 쌍용건설의 대주주인 캠코가 “추가출자는 불가능하다”며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캠코는 규정 및 청산시한(2월 22일)을 이유로 들며 추가출자에 발을 뺐다.

사실상 제3자배정 유상증자도 어렵다. 홍콩의 사모펀드 VVL(V Ventures Limitied)와 말레이시아계 투자자인 사푸안 등이 쌍용건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상장폐지 시한 내 유상증자가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더욱이 VVL은 2700억원 증자 조건으로 채권단에 3500억원의 출자전환을 요구했다.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최선의 방법인 셈이다.

캠코 “난 책임없어, 그럼 안녕”
채권단 “우리보고 어떡하라고?”

채권단 출자전환은 기정사실화 된 분위기다. 앞서 채권단은 캠코의 추가출자가 없으면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캠코가 잔여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청산하면서, 채권단에 쌍용건설 지분을 채권금액에 비례해 나눠준다는 중재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기업의 주식이 채권단에게는 매력적이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채권단 입장으로서는 쌍용건설이 상장폐지 돼 기업가치가 낮아지는 것보다는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것이 채권회수가 용이해 결국 이 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캠코와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의 결정에 “쌍용건설이 국영건설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캠코가 쌍용건설 지분을 현물 반환할 경우 정부에서 쌍용건설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아야하기 때문이다.

캠코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짙어지고 있다. 캠코가 쌍용건설의 현 사태와 지나치게 거리를 두는듯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3일 캠코는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쌍용건설의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 700억원 매입지원 △경영 관리단 파견 △ABCP 연장지원 △해외사업 정상화를 위한 보증서 발급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또한 쌍용건설 매각지연 이유에 대해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으로 본다”며 “국내실정을 감안하지 못한 PF사업장의 대규모 대선발생 등 주요 프로젝트의 실패에 따른 영향이 컸다”는 분석을 내놨다. 대두되고 있는 ‘책임론’에 거리를 두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 지난 14일 쌍용건설 노조가 ‘쌍용건설 부실책임 캠코 규탄과 선정상화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 : 쌍용건설 노조 제공)

쌍용건설 노조 “캠코, 너의 잘못”

캠코의 주장에 대해 쌍용건설 노조는 즉각 반박했다. 쌍용건설 노조는 “지난 2002년 쌍용건설의 대주주가 된 캠코는 2004년 10월 클린컴퍼니로 워크아웃을 조기졸업 한 쌍용건설에 대해 지난 8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면서 “쌍용건설의 재부실화는 캠코의 무능과 무사안일의 결과”라고 일갈했다.

이어 노조는 “항상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고가 매각해야 한다는 논리만을 내세우며 지난 8년을 보냈고 이는 다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쌍용건설의 모든 이사회 임원들을 임명해 8년간 관리하고 경영평가를 해왔음에도 쌍용건설의 모든 부실을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다 노조는 ‘낙하산 인사’ 논란도 언급하며 캠코의 관리능력을 꼬집었다. 캠코 및 집권여당 출신이 쌍용건설의 요직을 차지한 것은 의문스럽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해 3월 김형준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쌍용건설의 상임감사로 임명된 데 대해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김 전 춘추관장이 부산 사하구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된 지 불과 3일 만에 쌍용건설의 상임감사로 내정되자 나온 의혹이었다.

비난의 화살은 캠코에

업계 안팎에서도 쌍용건설 대주주로서 캠코의 역할에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쌍용건설이 캠코로부터 시기적절한 자금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9월 쌍용건설은 만기를 맞은 ABCP를 자체 상환할 여력이 없었다. 대주주인 캠코는 채권단과 책임분담에 대해 각을 세웠고, 시한이 지난 뒤에야 2000억원 규모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쌍용건설의 신용도는 BB+로 내려갔다. 떨어진 신용등급은 해외사업 수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했고, 국내 시장에서는 선수금을 받지 못하는 등 쌍용건설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잇단 매각실패에 대한 책임을 캠코에 돌리는 시각도 많다. 노조의 말대로 캠코의 ‘고가 매각’ 논리가 매각실패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2002년 쌍용건설의 대주주가 된 캠코는 2008년 공적자금을 회수한 뒤부터 매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왔다. 동국제강, 독일계 그룹인 M+W, 이랜드그룹 등이 쌍용건설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캠코의 태생적 한계가 드러났다. 캠코는 공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목표를 만족시켜줄 주머니 두둑한 회사에게 쌍용건설의 지분을 넘기려했다. 그러나 장기화된 건설경기 침체는 캠코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지분매각을 어렵게 만들었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에 대한 목소리도 높았으나 캠코는 규정 상 이를 수용하기 어려웠다.

최근 캠코에서 고수하던 지분매각 방침을 버리고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선택했지만, 이미 쌍용건설의 주가는 곤두박질친 뒤였다. 이에 다른 건설사들이 증자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했던 것과 비교하면 캠코에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뒤늦게 허용한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일각에서는 “캠코가 경영권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불허해왔다”고 쓴 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캠코 관계자는 “원래는 매각이 원칙이다. 업황 등으로 매각이 계속 안돼 유상증자로 전환한 것”이라며 “계속 매각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2012년 8월 이랜드와의 매각이 최종 결렬된 이후 12월 방향선회를 한 것으로 늦은 결정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캠코가 최고가 매각을 주장해왔다고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보다는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유상증자를 더 빨리 떠올릴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묻자 “쌍용건설의 실질 소유주는 부실채권정리기금으로 결정은 그쪽에서 한다”면서 “고려는 했지만 기금 손실 우려로 초기부터 실행하기는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한편, 쌍용건설은 2004년 5년 8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7년간 꾸준히 흑자를 기록했다. 비록 지난해부터 적자가 발생했지만 시공능력순위 13위의 능력 있는 건설사다. 그간 김석준 회장과 임직원들은 쌍용건설을 살리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왔다.

김 회장은 스스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부터 해외사업 수주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제2의 해외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결과 최근 3년간 해외에서만 1843억원의 이익을 얻었다. 쌍용건설 직원들도 2003년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32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갖게 된 우선매수청구권이 매각에 걸림돌로 작용하자 이를 포기하기도 했다. 또 미분양 주택 감소 및 대규모 구조조정 등 다양한 자구노력을 통해 회사를 살리고자 힘썼다. 쓰러져가는 쌍용건설을 안타깝게 보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박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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