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마리 안 보이는 이동흡 해법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쳤으나 청문결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돼 자진사퇴설 압박이 거세지자 국회 표결도 있기 전에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경우 제기된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자진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즉각적인 사퇴를 거듭 촉구했고, 참여연대는 ‘횡령 혐의’로 이 후보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눈에 가시가 돼버린 이 후보자. 향후 그의 거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실마리 안 보이는 이동흡 해법…朴心은 ‘국회 표결이 원칙’ 제시한 듯
민주 “사퇴하거나 지명철회 해야”…참여연대, ‘횡령혐의’로 검찰 고발

 

후보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명예회복을 내세워 버티기를 공식화하고 나섰다.

이동흡 “자진사퇴 않겠다”

이 후보자는 지난 6일 “국회 표결도 있기 전에 사퇴할 경우 제기된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자진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진행된 청문회에서 사실과 다른 의혹이 양산되면서 ‘괴물 이동흡’이 만들어졌다”며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왔는데 인격살인을 당한 상태인 만큼 지금으로서는 명예회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이번 청문회 원칙은 무죄추정이 아니라 유죄단정이었다”며 “혐의를 덮어씌우고 단시간에 당사자에게 해명하라고 압박하면 억울한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고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재임기간 6년간 받았던 3억원 전액을 사회에 환원할 용의가 있다”며 “(특정업무경비를) 개인적으로 횡령한 사실은 없지만 (개인통장에 넣고 쓴 것은) 잘못된 관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따랐으니 거듭 사과드린다”면서도 “관행의 문제를 한 개인이 다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가. 딸들이 출근길에 (취재 경쟁하던 언론에 의해) 상해를 당하고 가족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가 통장을 투명하게 공개해 기획재정부가 최근 특정업무경비 지침을 개선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헌재소장 공백사태 장기화의 우려에 대해서는 “하도 괴롭고 착잡해 사퇴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사퇴 운운하는 것은 공인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청문회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으니 국회가 법에 정해진 (표결) 절차를 밟아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문회 제도개선과 관련해서는 “도덕성 검증뿐 아니라 해당 직무에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자질 검증의 장으로 개선되길 바란다”며 “(청문회를 치를 공직자들은) 관례라고 용인되던 부분도 작심하고 문제 삼으면 비난받을 수 있으니 한 번 더 되돌아보고 논란의 소지를 없애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내가 소수의견을 많이 내다보니 (법원내부에) 안티세력도 생겼다고 들었다. 국민기본권과 국가공권력 중에서 내가 공권력 편을 든다고 비난했다”며 “그러나 법관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자세로 하면 부화뇌동이다”라고 덧붙였다.

朴당선인, ‘국회 표결이 원칙’ 해법 제시

이 후보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인사청문회 실시 후 국회 표결’을 청문회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이 후보자 문제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새누리당 국회의원ㆍ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청문회가 개인의 인격을 과도하게 상처내지 않고 실질적인 능력과 소신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통해 표결이 이뤄지는 민주국회, 상생의 국회가 되도록 여야가 노력해달라”고도 강조했다.

박 당선인 입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한 이 후보자 문제를 직접 거론하기 어려운 만큼 청문회의 일반적 원칙 표명이라는 형식을 통해 국회 표결을 해법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후보자의 자진사퇴 거부로 되돌아온 국회 표결 처리와 관련해 새누리당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치자는 것은 청문회를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새누리당의) 일관된 주장”이라고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윤관석 원내대변인은 “이동흡 후보자의 능력이 부족하고 부적절한 처신이 만천하에 공개됐다”며 “조속한 즉각 사퇴만이 해결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박근혜 당선인의 최근 인사청문회에 대한 문제제기 등에 기대어 버티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이 후보자의 즉각 사퇴와 지명철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박 당선인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검에 이동흡 후보자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참여연대는 “이 후보자가 특정업무경비 3억 2천만원을 개인계좌에 입금한 것이 확인됐다”면서 “이 돈을 신용카드 대금 결제와 개인 경조사비에 썼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 후보자가 특정업무경비 사용 내역에 대해 어떠한 증빙자료도 제출하지 않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횡령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선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할 가능성이 매우 낮고, 인수위의 새 정부 총리와 청와대 내각 부처 인선과 맞물려 인사청문회와 표결 처리해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어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보니 이 후보자 거취 문제는 현안에서 밀려날 공산이 크다.

촉박한 정치 일정상 이 후보자가 계속해서 버티기로 일관할 경우 박근혜 정부 출범의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지적과 함께 또다시 헌재 소장의 공백 사태와 파행을 초래했다는 책임과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 성향의 판결 종결자

대구 출신에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전형적인 ‘TK’(대구ㆍ경북) 인사로 분류되는 이동흡(61ㆍ사법연수원 5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정통 법관 출신으로 4기 재판관 가운데서도 가장 보수적 색채가 짙다. 이 재판관 스스로도 “보수적 가치관은 헌법재판관의 덕목”이라고 공ㆍ사석에서 소신을 여러 차례 밝혔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28년간 법원에 재직한 이 후보자는 지난 2006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이래 지난해 9월까지 6년간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했다.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한 이 후보자는 특히 공정거래와 지적재산권·조세분야에 관심을 보여 이 분야 전문가로 법원 내·외부의 인정을 받았다.

2003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 계열사 간에 부당내부거래를 이유로 100여억원의 과징금을 물린 사건을 담당해 과징금 대부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려 주목받았다. 2005년 서울고법 특별부 시절에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고(故) 신효순ㆍ심미선양의 가족이 검찰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미군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헌법재판관 재임 중의 대표적인 결정으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낸 것이 꼽힌다. 당시 재판관 8명 중 6명이 한정위헌 의견을 냈으나 이 후보자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선거운동에 준할 정도의 영향력 있는 표현행위가 가능해질 경우 후보자 간 조직동원력, 경제력에 따른 불균형이 발생할 소지도 충분하다”며 반대의견을 고수했다.

‘미네르바 사건’으로 불리는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합헌 입장의 소수의견을 내는 등 보수 성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 후보자는 법원 재직 당시에는 판사 중에서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에 가장 많이 제청한 법관으로 알려져 있다. 또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을 파기하는 판결을 많이 선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법원장 시절에는 각종 제도 개선을 위해 열정적으로 업무를 추진해 ‘일하는 법원장’의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보자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 법조인이었던 렌퀴스트가 ‘보수적인 입장에서 원칙을 잘 지키면서도 중요한 사건에서는 보수ㆍ진보의 입장을 떠나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린 점을 존경한다’고 주위에 자주 말해왔다.

이 후보자가 헌재소장으로 취임하면 최초의 헌법재판관 출신 소장이 된다. 이에 앞서 참여정부 시절 전효숙 재판관이 재판관 출신 첫 소장으로 지명됐으나 중도 낙마한 바 있다. 

대구(62세) ▲서울대 법대 ▲사시 15회 ▲부산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구지법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사법연수원 교수

이행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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