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홍대 24시 카페는 그야말로 좀비들의 쉼터

 
‘예술’특구라더니 이제는 ‘술’특구
쫓겨나는 지역 특색 문화
넘쳐나는 획일적인 간판들
 
 
홍대라고 하면 자유롭고 개성이 강하며 어디서나 손쉽게 볼 수 없는 것들로만 잔뜩 꾸며진 거리가 떠오른다. 또한 그 거리가 주는 ‘어딘가 나사 빠진 분위기’는 숨 막힐 듯 조여오던 일상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일탈을 만끽하게 해준다. 거리 곳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기타를 어깨에 메고 마이크도 없이 90년대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나 한국의 ‘뱅크시’를 꿈꾸며 시멘트벽에 그라피티를 하는 청년들, 규격화된 패션 스타일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치 없이 내 마음대로 염색하고 옷을 입는 여성들까지. 그러나 홍대가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는 공짜와도 같은 문화였다면 지금은 돈을 주고 사야하는 문화로 변질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 지금은 사라진 '리치몬드 과자점'. 현재 이 자리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와 천원숍이 들어와 있다.
 
반죽은 우리가 했는데
떡은 너네가 먹는구나
 
지난 해 1월 31일 홍대 명물 중 한 곳인 ‘리치몬드 과자점’이 문을 닫았다. 이에 많은 이들이 ‘추억’이 사라졌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업 마지막 날에는 취재진과 손님들로 인해 가게 안은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30년의 역사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결국 ‘리치몬드 과자점’은 영업 종료를 했다. 그리고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24시 카페와 1,000원 숍이 들어섰다. 이에 누리꾼들은 “결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가게들이 들어오려고 리치몬드 과자점을 내쫓아냈나”, “거기에서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거리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가 두 곳이나 있는데”와 같은 반응들을 보였다.
 
홍대에게는 지난 한 해가 다산 다난한 해였다. 30년 명물인 ‘리치몬드 과자점’ 뿐만 아니라 유명 재즈 음반점도 영업을 종료했기 때문. 홍대의 터줏대감 가게들이 도미노처럼 폐쇄하는 이유에는 ‘임대료’문제가 있다. ‘리치몬드 과자점’ 대표는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쩔 수 없어요. 5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있었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높은 임대료를 주겠다며 건물주를 설득, 저희한테 나가라고 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내걸었던 보증금 100%, 월세 115% 인상조건을 지켜주고서 이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영업 종료의 속사정을 밝혔다. 
 
또한 “내가 30년 동안 자리 잡아 놓았고, 이 자리에서 제빵기술자를 400명 이상 배출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대기업들이 그냥 돈만 가져와서 건물주와 계약해서 들어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겁니다”하면서 아쉬움을 터트렸다.
 
이는 유명 음반점 ‘레코드 포럼’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레코드 포럼’은 홍대 문화의 상징 중 하나로 17년 째 운영되고 있는 작은 음반 가게다. 또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음반을 파는 곳이라 그 희소성으로 단골손님도 적잖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이 지역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주인의 배려로 한동안은 비교적 적은 임료로 버틸 수 있었으나 이제는 건물을 헐게 되었다는 주인의 통보로 가게를 폐업하게 됐다. 그 자리에는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이 들어설 예정이다.
 
홍대 상권이 블루칩으로 떠오르면서 그 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가게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오르는 임대료에 헐떡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자영업자 간 점포거래소 점포라인이 자사 DB에 매물로 등록된 서울 소재 점포 7,657개를 소재지(25개 구)별로 분류해 조사한 결과 마포구의 연평균 권리금은 강남구 (1억 1,922만원)보다 150만원 더 높은 1억 2,072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통계구축이 시작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홍대가 강남을 추월했다. 
 
홍대 상권은 한때 서울 최고의 상권으로 군림했던 신촌·이대 상권에 밀려 자금 사정이 어려운 예술가들이나 개인 창업자들이 소규모 작업실을 열거나 점포를 내는 등 마니아 문화의 메카였다. 이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서울 최고의 상권으로 급부상하게 되었으며 그에 합당하게 땅값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초기 홍대 상권을 닦아두고 키워왔던 개인업자들이 높은 임대료에 부담스러워하다 결국 가게를 닫게 되고 그 자리를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꿰차고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홍대에 거주하고 있는 한 모(32)씨는 “내가 여기 들어와서 살게 된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며 “아기자기하고 특색 있던 홍대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작년 영업 종료를 선언했던 음반점 ‘레코드 포럼’은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결국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계획을 바꾸기도 했다.
 
 
 
 
10년 동안 해오던 ‘클럽 데이’
왜 중단됐을까?
 
예술특구로 익히 알려진 홍대의 시작은 예술가들이었다. 특히 밴드 음악가를 중심으로 미술 작가, 문학 작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업실을 차리거나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데에서 비롯된 홍대 상권은 특유의 예술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길을 걷다보면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흔히 만날 수 있어, 특히 도시의 일상에서 지친 이들에게 휴식을 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상권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홍대’라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인디 밴드’를 떠올릴 만큼 홍대는 밴드 음악의 중심지다. ‘넬’, ‘델리스파이스’, ‘한희정’, ‘요조’ 등 유명한 뮤지션들을 배출해 낸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90년대부터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하여 홍대에 위치한 라이브 클럽들은 보통 1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대중가요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마니악한 음악들이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게 되면서 홍대에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기도 한 지점도 바로 이쯤부터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홍대 라이브 클럽을 찾지 않는다. 라이브 클럽 관계자는 “평일에 손님 한 두 분 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날은 한 명도 오지 않아 밴드들이 허탈하게 공연하고 집에 가는 날도 수두룩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어 “주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맞은 편 댄스 클럽은 평일 주말 상관없이 사람들이 줄 서서 들어가는 광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씁쓸하다”고 말했다.
 
2011년 1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이루어졌던 ‘클럽 데이’이가 중단됐다. 라이브 클럽과 댄스 클럽 구분없이 2만원이면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즐길 수 있는 패키지 상품으로 오랜 시간 유지되던 행사였다. 그러나 그 전부터 댄스 클럽들은 이미 따로 모여 ‘클럽 데이’와 비슷한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었다. 이에 라이브 클럽 관계자는 “10년 동안 해오던 일이었다. 그 사이 라이브 클럽이 많이 죽은데 반해 댄스 클럽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많아졌다. 근데 저 행사로 버는 수익을 장사가 잘 되건, 안 되건 상관없이 일정하게 분배하니까 아마 (댄스 클럽)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귀띔했다.
 
라이브 클럽이 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면서 점점 사라져가는 가운데 2011년 9월 홍대 라이브 클럽 중에서도 오래 된 ‘살롱 바다비’에 위기가 찾아왔다. 더 이상 임대료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된 것. 또한 ‘살롱 바다비’를 운영하는 주인장의 뇌수술가지 겹쳐 회생할 수 없었다. 이에 ‘결국 올 것이 왔다’와 같은 반응이 팽배한 가운데 누리꾼들 사이에서 바다비 살리기 캠페인인 ‘네버다이 바다비’를 개최했다. 그러자 홍대 인디에서 유명한 밴드들이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공연, 그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살롱 바다비’는 아직 영업 중이다. 
 
 
 
 
‘밤문화의, 밤문화를 위한, 밤문화에 의한’ 홍대
 
비약적인 상권발전과 더불어 댄스 클럽이 성행하면서 홍대의 밤거리는 낮보다 휘황찬란하다. 홍대생인 이 모(24)양은 “1학년 때와 비교하면 홍대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며 “원래 저 화장품 가게 자리에는 카페가 있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던 가게들이 문을 닫으면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카페나 화장품 가게가 생긴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불어 “술집도 신촌 못지않게 생겼다”고 말했다.
 
요즘 20대들 사이에서는 ‘홍대 좀비’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새벽 3, 4시쯤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대부분 홍대 클럽이나 술집에서 밤새도록 춤추고 술 마신 후 첫차를 기다리는 이들이기도 하다.
 
한 언론 매체에 따르면 2012년 6월 22일 첫차를 탄 750여 명 중 700여명이 술 냄새를 풍기는 취객들이라는 사실이 조사됐다. 홍대입구역 관계자는 “첫차를 이용하는 승객의 90% 이상이 밤을 새우고 귀가하는 사람들이다”며 “서울 시내에서 만석으로 출발하는 첫차는 이곳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역은 첫차를 타는 사람들이 부지런한 사람들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깨주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유난히 홍대가 밤문화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댄스 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난 이후부터다. ‘불타는 금요일’의 준말인 ‘불금’을 보내기 위해 홍대 댄스 클럽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홍대 상권은 그야말로 ‘밤문화의, 밤문화를 위한, 밤문화에 의한’ 곳이 되었다. ‘예술’ 특구가 아니라 ‘술’특구인 셈이다.
 
밤문화가 성행하면서 홍대에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바로 키스방이다. 홍대 술집에서 일차로 술을 마신 뒤 클럽에서 춤을 추며 이성과 짝을 짓고 나서는 이들이 있는 한편 그러지 못한 이들이 찾게 되는 곳이 바로 퇴폐업소다. 주말이면 예약 손님이 아닌 이상 받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성업 중인 퇴폐업소는 높은 수위는 물론이며 유사 성행위까지 가능하다. 퇴폐업소 관계자는 “주말이랑 평일이랑 크게 차이는 없다. 금토에 예약이 많긴 하지만 그만큼 취소도 많다. 클럽에서 놀다가 허탕치고 오는 애들도 많다”고 밝혔다.
 
또한 카페의 24시 바람도 변화의 주축이다. 홍대에 위치한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들 10군데 중 7군데는 24시 영업이다. 새벽까지 술을 먹고 첫차를 기다리는 ‘홍대 좀비’들이 주로 찾는 곳이 바로 이 ‘24시 카페’다. 실제로 “새벽 3시가 넘어가면 사람들로 북적여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카페 직원이 전했다.
 
이와 같은 홍대의 변화에 한 전문가는 “홍익대 앞이 문화적 해방구로 떠오른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과감하고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특색 있는 간판과 노점상으로 들어찬 거리를 활보하고 주인 취향대로 독특하게 꾸진 카페와 옷 가게가 즐비하며, 밤이 되면 인디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거나 테크노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클럽의 불이 하나씩 켜지는 곳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홍익대 앞의 고유한 인디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비췄다. 또한 “음악을 하거나 문학을 하거나 영상을 하는 친구들끼리 특색 있는 공간을 꾸며서 알음알음 모여들고 푼푼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여지없이 보증금과 월세가 곱으로 올라서 떠야 한다. 그런 자리에는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거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붕어빵 콘셉트로 한철 반짝 장사를 하는 공간이 들어섰다가 나가기를 반복한다.”며 “굳이 홍대 앞이라 불러야 할 어떤 색깔의 명도도 같이 흐려진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홍대 앞은 더 이상 ‘예술’ 특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변색되었다. 애초에 홍대를 유명하게 만들어 주었던 개성 있던 거리는 사라지고 판에 찍힌 간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면서 이제는 밤문화의 메카로 떠올랐다. 이에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며 예전의 홍대는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해있던 음반점 ‘레코드 포럼’이 단골들의 부탁에 못 이겨 다른 곳으로 이전한 점과 ‘살롱 바다비’를 살리기 위한 홍대 뮤지션과 사람들의 노력은 아직 홍대가 완전히 ‘예술’특구로서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입증해주고 있다. 성기완(평론가·46)은 “홍익대 앞의 대중을 수용하고, 순전히 장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장사꾼을 인정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서 장사를 하는 문화장사꾼을 보호해야 한다”고 현재의 홍대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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