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차 신고에 은폐의혹 일어…삼성은 “아닙니다” 해명

삼성전자(대표 권오현)가 불산가스 누출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도 모자라 이를 덮으려고 한 정황까지 발견되자 삼성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가중되는 모양새다.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한지 25시간, 사망한 협력업체 직원이 통증을 호소한지 7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신고를 했기 때문. 이에 삼성은 “은폐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신고까지 상당한 시차가 발생해 은폐 의혹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1시31분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11라인에서 불화수소희석액(이하 불산)이 누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협력업체 STI 서비스 직원 5명이 현장에 긴급 출동했고, 오후 11시부터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숨기려 했나?

11시부터 시작된 이들의 보수작업은 28일 새벽 4시46분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이후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2시간이 지난 오전 7시경 보수작업을 진행한 STI 직원 박모씨가 목과 가슴의 통증을 호소한 것이다. 이후 협력업체 직원들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박씨는 오후 1시55분경 사망했다.

경찰은 삼성의 불산가스 누출사고를 해당병원의 신고로 인해 오후 2시경 인지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성은 박씨가 사망하고 40분이 지난 뒤에야 신고에 나섰다. 실무자들은 경찰조사에서 경황이 없어서 신고하지 못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삼성의 가스누출 신고시점이 박씨의 사망 이후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은 신고시점은 다음과 같다. 삼성은 보수작업을 진행했던 협력업체 직원이 사망하고 난 뒤인 오후 2시42분 경기도청에 신고했다. 또한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시각은 오후 3시, 환경부에는 오후 5시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하거나 사람의 건강이나 환경에 위해가 발생할 때 해당 지방관서 등에 신고를 해야 한다. 삼성도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이에 삼성이 불산가스가 누출되고 오랜 시간동안 침묵하다가 사망자가 나오자 신고를 결정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삼성의 초동대처에 대해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삼성은 불산가스가 누출되고 약 10시간이 지난 뒤에야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불산 누출부분은 비닐봉지로 감싼 것으로 전해졌다. 불산이 기체 상태로 눈과 호흡기에 들어가면 심할 경우 폐렴이나 급사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매우 안일한 사고수습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화성사업장 DS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 이승백 상무의 브리핑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50명의 직원들은 근무했고 이들에게 대피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시설 또한 중단 없이 가동됐다. 수십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 위험에 노출돼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은폐의혹

삼성의 은폐의혹에 여론이 더욱 민감한 것은 이전에도 삼성이 은폐의혹을 받은 전적이 있기 때문. 지난 2007년 반도체라인 소속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삼성의 산재사고 은폐의혹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황씨 유족에 따르면, 당시 삼성은 산재처리 요구에 회사와 상관없는 질병이라며 사표를 쓰도록 요구했고, 치료비도 사표를 써야 주겠다고 말했다. 삼성 측에서 “10억원을 드릴테니, 아무소리 말고 가만히 계세요”라고 하는 등 산재신청을 막기 위해 끈질기게 회유했다는 것이 황씨 유족의 주장이다.

삼성 백혈병 피해자 지원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에서 유독물질로 백혈병 등에 걸려 숨진 직원은 6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삼성은 백혈병이 산재가 아니라고 줄곧 부인해왔다. 여기에 황씨 유족 등 피해가족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삼성의 산재 은폐의혹이 힘을 받아온 것이다.

최근 반올림이 반도체 공장 피해자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삼성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삼성과 백혈병 피해유가족들은 협상을 앞두고 있다. 6년간의 싸움 끝에 삼성이 백혈병 발생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

그러나 삼성이 반올림에 대화요청을 한 시기가 국정감사를 하루 전이었다는 점, 그동안 삼성이 백혈병 발발과 작업환경의 연관성을 강력히 부인해왔다는 점을 들어 삼성이 산재인정에 나설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심심한 위로의 뜻을…”

한편, 불산가스 누출사건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여론이 일자 삼성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삼성은 “통상적인 유지보수 작업이었고, 이번 사고로 누출된 불화수소희석액은 2~3L로 극히 소량이었다”면서 “탱크 안에서 사고가 일어나 자체적으로 조치했을 뿐 은폐나 늑장대응을 한 것은 아니다. 사망자가 발생함으로써 당국에 신고의무가 발생해 경기도청에 신고했다”고 은폐의혹을 부인했다.

또한 삼성은 “최초 1이상 징후 발생 직후 노트 조임 등 1차 조치를 하고, 밸브교체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한 지 판단하기 위해 30분 단위로 점검했다. 오후 11시38분 누출수준이 증가해 밸브교체를 결정했고, 4시58분경 수리를 완료했다”고 강조한 뒤 “유출시 폐수처리장으로 자동 이송되는 구조이므로 사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전동수 사장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전 사장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해드린다”며 “관계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항구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드린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삼성의 해명에도 사고은폐에 대한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각계각층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삼성을 향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삼성전자는 노동자 백혈병 발병에는 모르쇠 하고, 불산 누출사고는 쉬쉬했다. 돈은 많아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검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후진적 기업 문화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도 “삼성전자의 초일류 은폐문화와 안전 불감증이 경악스럽다.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삼성이 백혈병에서 보여준 은폐문화를 볼 때 삼성전자가 신고를 했을는지 의문”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한국노총은 성명서를 통해 “불산 가스누출이 발생한 즉시 관계당국에 신고하고, 올바르고 신속한 대책을 마련했다면 노동자가 사망하고 부상을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사고는 기업의 안전보건 조치 미이행으로 인한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

박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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