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인(38)의 첫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창비)은 매우 낯선 방식으로 말을 걸어온다. 도발적이고 외설적이다. 도발의 섬뜩함은 외설로 살짝 가려지고, 외설의 질척임은 도발로 무마된다. ‘핥고’ ‘뱉어내고’ ‘빨고’ ‘만지고’ ‘사정하고’ 같은 단어들이 시 속에 버티고 있다. 그러나 난감하지 않다. 이 말들은 흥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이 단어들이 겨냥하는 목표물은 아랫도리보다 더 멀리 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관리자와 생산자, 성년과 미성년의 관계를 설명하는 소도구로 확장된다. ‘…소녀가 소녀에게 말했어요 이젠 너도 살찐 소가 되었구나, 축하해//소녀가 먼저 여인숙으로 들어가고/엉덩이 살을 한근만 팔라고 조르던 그 정육점 남자가 조용조용 뒤따라왔어요//그 정육점 남자의 저울 위로 올라가 맛있는 부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모르겠어요/내장은 안 팝니까,//아저씨 살살해요 안 아프게 살점만 떼어가세요/다만 살 한 점을 팔아치운 소녀는, 몸이 가벼워졌어요 가죽을 벗었으니까요….’(‘소녀의 거울’) 최하림 시인은 “전략적으로 ‘모색’된 것이고, ‘취재’된 것이고, ‘실험’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모색’과 ‘취재’라니. 시인은 스스로 보고 자란 인천 학익동의 ㅎ방직공장 소녀 직공들을 이번 시집에 담았다. 뼈까지 발라내 속살을 낱낱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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