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가치 IT업계 피말리는 정책으로 문화강국? 평생 꿈만 꿔라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중학생 2명이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인의 선거 벽보를 훼손해 경찰에 검거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학원 친구 사이인 이들은 ‘12시 이후로 게임 접속 금지’하는 일명 셧다운제에 불만을 품어 부산 금정구 부곡초등학교 담에 부착된 선거 벽보의 박 당선인의 사진을 훼손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평소 온라인 게임을 즐긴 A군 등은 박 후보가 당선되면 여성부가 존속되고 셧다운제도 계속될 것이란 단순한 반감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셧다운’의 진화된 형태 격인 ‘게임규제안’ 발의되자 게임업체 전반에 더 큰 후폭풍이 불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천재 청소년의 곡소리 “아 맞다…셧다운 당하는데”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가 셧다운제 때문에 경기를 포기했다. 지난해 10월 스타테일 소속 프로게이머 이승현군(정각중 3학년)이 프랑스의 ‘아이언스퀴드2’ 국제대회선발전 도중 채팅창에 “아 맞다…셧다운” 이라는 글을 남기고 경기에 패한 것. 이 짧은 멘트는 대한민국 게임 역사상 가장 웃픈(‘웃기고 슬픈’이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 발언으로 손꼽히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이승현군이 언급한 셧다운제는 여성가족부가 시행한 제도로, 16세 미만 게임 이용자의 접속을 자정 이후 차단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따라서 이승현군은 프랑스 현지시간에 맞춰 게임 대회에 참가했지만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다가오자 셧다운제 때문에 경기를 기권해야만 했다.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약 1만 명의 외국 시청자들은 이승현군의 기권선언에 당황했고 이를 중계하던 해설진도 “what happen? what law?”(무슨 일이지? 무슨 법?)라며 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외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이승현군의 기권과 셧다운제에 대한 소식이 급속도로 퍼지며 이에 대해 찬반논란이 일었다. 당시 게임을 생중계하던 프랑스 방송사의 게시판에는 “게임을 하기에 너무 어리다니, 저렇게 잘 하는데 나이가 중요해?”, “법으로 아이에게 ‘게임 좀 그만해’라고 소리치는 것은 우스꽝스러워”, “우리의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부모의 몫이야” 등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법으로 간섭한다는 것에 대해 대체적으로 비극적이라는 글들이 게재됐다.

이승현군이 소속한 스타테일 총감독은 “정부의 규제안이 한 순간에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됐다”며 “이러한 일은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일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한창 기량을 발휘할 선수가 의도하지 않은 제약을 받는 것이 마땅한지 의문이 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게다가 셧다운제를 강화해 적용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게임’대신 ‘책’으로 돌아갈지는 더욱 미지수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야단쳐도 금지된 것에 대한 욕구는 더욱 불타는 법,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어떤 방법으로도 게임을 하기 마련이고 이것은 오히려 ‘성매매 근절’에 대한 역효과와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지하문화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셧다운제는 정작 게임 중독으로 문제를 겪는 청소년들에게는 무의미한 제도로 게임을 못 하게 막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일고 있다.

실제로 셧다운제 시행 후 1년이 지났지만 청소년 중 심야시간 게임 이용자 비율은 변화가 없을뿐더러 청소년 게임 이용시간은 오히려 늘었다는 엉뚱한 통계도 나왔다.

중학생의 학부모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청소년 게임 이용 빈도는 지난해 월 19.48회에서 올해 23.63회로 늘었고 주당 온라인게인 이용시간도 255분으로 1년 전 234분보다 10% 정도 늘은 것으로 조사됐다. 절반이 넘는 학부모(51.7%)가 셧다운제 시행 후 자녀의 게임 이용시간에 큰 변화가 없다고 답해 그 실효성에 대한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병헌 의원(민주통합당)이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인터넷게임 건전 이용제도(셧다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셧다운제로 인해 심야시간에 게임을 안 하게 됐다고 응답한 학생은 0.3%에 불과했다.


MB와 여성부는 한목소리 “이게 다 게임 탓이야”

셧다운제의 실효성이 바닥으로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게임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게임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치부하고 있는 분위기다. 학교폭력, 살인?패륜 등 사회문제만 생기면 그 원인으로 어김없이 지목받는 게임은 이제 ‘마약’과도 견줄 만한 사회악으로 자리 잡았고 게임업계는 전례 없던 빙하기를 겪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청소년들의 사회적 문제가 터질 때 마다 제대로 된 원인 진단이나 대안을 강구하기는커녕 그 책임을 게임에 돌리기에 급급하다”며 “게임 부작용 문제에 대해 관련 정책이 없는 상황도 아닌데 너무 과도한 규제가 한꺼번에 추진돼 업계의 피를 말리고 있다”고 분개했다.

지난 8일 ‘친박’으로 알려진 새누리당의 손인춘 의원을 필두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 의원들은 좀 더 강력한 규제 법안인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셧다운제의 적용시간을 기존의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였던 것을 밤 10시부터 7시로 늘이겠다는 내용을 필두로, 아울러 ‘게임중독 유발지수’를 만들어 중독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게임의 개발과 배급을 제한하고 게임중독 예방?치료를 위해 업체의 연간 매출액의 1%를 직접 징수하는 법안이 추가되어 있다.

얼핏 듣기에도 강도가 높은 이 규제안에 게임업계가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게임과 폭력성의 명확한 상관관계가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연간 순이익이 아닌 매출액의 1%를 부담금으로 징수해 간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비난이 거세다.

김성곤 한국게임산업협회 사무국장은 “부담금은 산업의 유해성을 입증해야 하지만 게임은 그 폐해성과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해 부담금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는 산업의 자율화를 위해 최근 부담금을 줄이고 있는 정부의 추세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과하는 기금의 액수 또한 타 산업에 비해 과도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경마, 파친코 등 대표적인 도박산업에 부과하는 기금도 전체 매출의 0.3%가량인데 게임 산업에 매출의 1%를 부과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0일 CBS 라디오에 출연,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 등 17인이 발의한 게임규제법안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게임 산업을 술에 비유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 등 술 많이 먹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술이 유통되고 있다”며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금주령을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고 지나친 규제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며 게임 규제의 타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뿔난 게임업계의 쓴소리 “올해 G-STAR는 보이콧”

지난해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쇼 G-STAR를 통해 수출 계약을 체결한 금액은 총 1억894억달러(약 1188억원)에 달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새누리당 후보자 신분이던 시절, 국제게임전시회(G-STAR)를 직접 방문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게임 산업의 육성 가능성을 확인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바쁜 부산 유세 일정 중 틈을 내 현장을 찾은 박 당선인은 게임 산업 지원 정책과 관련해 “한국이 앞으로 문화 콘텐츠나 게임 산업, 소프트웨어 쪽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며 “미래 한국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많이 지원하려고 구상중이다”고 청신호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는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이 같은 기대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지난 9일 이른바 ‘친박계’로 분류되는 국회의원 17명이 발의한 ‘게임 규제안’이 공개된 이후 게임업계의 반발이 심상찮은 것.

가장먼저 지난해 G-STAR의 메인 스폰서를 맡았던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는 올해열릴 G-STAR에 불참키로 ‘보이콧’을 선언했다. 남궁훈 위메이드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위메이드는 이번 법안의 향후 진행과 상관없이 법안 상정 자체에 항의하는 의미로 올해 부산 G-STAR는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며 게임업계의 동참을 호소했다.

남 대표는 지난 G-STAR 개최로 상당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얻은 수혜지역인 해운대 지역구 의원까지 해당 규제안 상정에 참여한 참담한 상황을 지적하며 “올해 G-STAR 행사에 참가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G-STAR 2013 원천 진행을 재검토하자고 업계에 공개적으로 제안하며 업계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 불합리한 규제에 항의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G-STAR가 열리는 해운대 지역구 의원인 서병수 의원(부산 해운대구 기장군갑, 새누리당)과 유기준 의원(부산 서구, 새누리당)이 동참법안을 발의했다는 것에 게임업계는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애니팡’ 개발사인 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궁 대표의 글을 공유한 후 “저도 지지합니다”라는 글을 남겼고, 신상철 와이디온라인 대표와 정욱 넵튠 대표(전 한게임 대표) 역시 지지한다는 댓글을 남기는 등 다수의 업체들이 위메이드와 함께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국내 게임업계 N사의 관계자는 “내가 수십년동안 몸담은 산업이 도박, 마약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 한탄스럽다”며 게임 하나를 상용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개발자들이 쏟아 붓는 땀과 노력을 안다면 정부가 이렇게 적대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개탄했다.

명불허전 여성부 ‘셧다운’에 문화산업 ‘녹다운’
도박보다 해롭다고? 열심히 개발한 대가 ‘부담금’
‘공대나온’ 박근혜, IT산업 미래 막는 컴맹 아니길

 

산업명
수출액(백만원)
2011
2012
2분기
상반기
3분기
4분기
합계
1분기
2분기
출 판
112,705
158,403
83,624
115,269
357,296
65,035
77,691
만 화
5,010
9,598
3,268
5,252
18,118
4,796
4,725
음 악
43,405
75,438
59,322
69,257
204,017
48,522
55,379
게 임
623,040
1,226,166
637,297
763,622
2,627,085
662,587
621,587
영 화
8,699
13,338
9,237
9,632
32,207
15,692
14,489
애니메이션
38,458
72,643
38,315
39,526
150,484
35,221
34,356
방송영상
독립제작사
5,632
10,996
5,537
3,835
20,368
2,254
2,328
캐릭터
102,755
193,208
105,732
125,658
424,598
111,652
131,756
지식정보
115,635
230,481
116,327
119,695
466,503
105,258
102,379
콘텐츠솔루션
40,921
78,360
42,328
43,528
164,216
41,667
42,583
합 계
1,096,260
2,068,631
1,100,987
1,295,274
4,464,892
1,092,684
1,087,273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 수출 ‘게임 1위’에도 불구, 고부가가치 IT업계 피말리는 정책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홍상표)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는 2012년 1분기의 국내 콘텐츠 산업 전반 및 콘텐츠업체의 생산, 소비, 매출, 수출, 고용, 투자, 상장사 재무 구조 변화 추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2012년 1분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액은 308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20억 원(42.4%) 증가하였으며, 특히 게임 관련 상장사 수출액은 2012년 2분기(약 2천 34억 원) 및 상반기(약 4천 273억 원)에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8%, 25.8% 증가해 콘텐츠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음이 극명히 드러났다.

게임 산업은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K-pop 아이돌, 한류, 영화, 드라마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수출액을 자랑했다. 2012년도 1분기 게임 산업 하나가 벌어온 금액은 총 62억 원으로 출판(7억7691만원), 만화(4725만원), 음악(5억5379만원), 영화(1억489만원), 애니메이션(3억4356만원), 방송영상(2328만원), 캐릭터(13억1756만원), 지식정보(10억2379만원), 콘텐츠솔루션(4억2583원)을 다 합친 금액을 웃도는 수치다.

K공대 관계자는 “과도한 규제는 수출 효자산업을 다른 나라에게 넘겨주는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다”며 정부의 게임 죽이기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어 “게임 하나를 상용화 단계까지 완성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렌더링 기술, 대용량 서버 관리기술 등 타 분야에 비해 한세대 앞선 고난이도의 기술이 총동원 된다”며 “그런 까닭에 게임 산업의 수준이 그 나라의 IT수준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며 게임 산업을 통해 정착시킨 기술과 노하우가 타 분야로 이전되는 선순환을 이끌어 낸다”고 덧붙였다.

게임이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지난 2011년 국내 게임시장 규모가 8조원을 돌파하며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 국내 게임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게임 규제가 본격화된 올해 초부터 네오위즈게임즈, 앤씨소프트, 넥슨 등 국내 빅5 게임사들의 상반기 실적이 정체되거나 일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며 한파가 불어 닥치고 있다. 천문학적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국내 게임사들이 정부규제로 해외 시장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성장 동력을 잃는 것은 제살을 깎아 먹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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