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삼계(靑松三戒)

‘청송(靑松)’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명되는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부친 고형곤 박사님의 아호다. ‘삼계(三戒)’는 박사님께서 아들 고건에게 공직자로서 지켜야할 세가지 교훈을 주문했다. 이것을 타인들이 삼계라 이름을 붙여 ‘청송삼계(靑松三戒)’라 불러 교훈으로 격상코자 만든 말이다. 동양인의 자녀교육에 대한 최대 덕목은 아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여겨질 것이다. 또한 삼국통일의 주역인 태조 왕건은 그의 친부 왕륭(王隆)이 경세가로서 그의 아들이 대망(大望)을 실현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맹자나 태조 왕건 같은 큰 인물의 배후에는 철학과 경륜을 겸비한 스승으로서의 대모가 계셨고 그 가르침을 지상의 명으로 알고 정진하였기에 만인의 존경과 신망을 받는 불멸의 역사적 인물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오늘날 암울한 우리의 주변에 희망의 빛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인물이 있어 관심을 갖게 한다. 차기 대권후보에 인기와 지지 여론조사에서 계속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부친 청송 고형곤 박사께서는 1906년 옥구 임피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제하에는 동아일보 기자로 붓으로서 항일운동에 나섰으며 연희전문과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철학 강의로 후학들의 깨우침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셨다. 비극적인 6.25 전쟁 중엔 향리인 전북대학교에서 총장으로 봉직하였고 5.16 군사혁명 후에는 민정이양에 맞추어 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군산·옥구에서 당선하여 정계에 진출했다. 해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이끄는 야당인 민정당의 초선의원으로서 사무총장에 임명되어 야당탄압이 극에 달했던 어려운 시기에 당 살림을 전부 관장하여 무난한 당무처리를 했었다. 박사님의 고매한 인격과 철학자로서의 자세는 보통사람과는 너무 달랐다. 6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상대후보는 공화당 김용택 경제학 박사였다. 선거당일 투표가 끝나고 육상의 투표함은 전부 개표장에 운반 되었으나 도서지역의 투표함 15개중 13개가 심한 풍랑으로 운반이 불가능했었다. 우선 운반된 투표함부터 개표가 시작되어 집계한 결과 민정당 고형곤 후보가 공화당 김용택 후보보다 약간의 차를 리드하고 있었다. 나머지 미 개함된 도서 13개 투표함의 표수는 약 1,000여 표 이상으로 기억된다. 풍랑이 갠 다음날 투표함이 도착하여 개표한 결과 고형곤 후보가 김용택 후보에 303표의 차이로 신승하였다. 당시 고 후보자를 위원장으로 모시고 본인은 부위원장으로서 섬 지역에서 투표함을 바꾸어 치지나 않을까 혹 다른 방법으로 부정이 저질러지지 않을까 백방으로 감시에 나섰으나 그 결과는 부정투표 시비나 별다른 불상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고 후보자께서는 후일에 두고두고 김용택 박사나 되니까 부정을 안 저질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깨끗한 패자의 자세에 경의를 표하시기도 했다. 근래 우리 정계에서는 볼 수 없는 fine play이다. 7대 국회에 와서는 계보정치, 줄대기 정치, 패거리 정치 등에 환멸을 느끼시고 정계를 은퇴하여 미진했던 철학의 연구에만 전념했고 많은 시간을 내장산 소암자에 기거하시며 동양의 선(禪) 사상과 서양철학 하이텍커의 실존사상과의 상이점에 깊이 몰두했다. 그 당시 박사님의 춘추 80대의 고령이시다. 연구중 쉬시는 시간 운동 삼아 내장산 경내를 하얀 긴 수염과 장죽을 짚으시고 산책하시는 모습은 그야말로 천상의 선인이 하계(下界)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끔 하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세기(1906. 4. 16~2004. 6. 25)를 사시며 천수를 다하신 인간 승리자이시기도한 박사님은 학술원 종신회원이기도 하다. 아들이신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아버지이자 스승으로서의 3가지 계율을 주문하셨다. 첫째 “돈을 멀리하라” 공직을 이용해서 매관매직이나 이권 개입을 말라는 것이다. 둘째 “줄서지 말라”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윗사람에게 아부하지 말며 계파를 형성치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술은 마시되 자랑을 말라”는 것은 취중 공직자의 자세가 흐트러질까 하는 노파심에서 일 것이다. 고 전 대행께서는 선친의 별세 후에 사부곡 같은 심정으로 부친의 계훈 두 가지는 지켰는데 마지막 한 가지 “술 마시고 자랑 말라”는 계훈만은 못 지켰다는 부친에 대한 회고담이 모 월간지에 소개된 것을 보았다. 또한 친부 생존시 호칭을 꼭 가친 어른이라 하셨다. 행정의 달인이며 청백리의 귀감이기도 한 고 전 대행께서는 상정하부독(上淨下不獨)의 표본이요. 재임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였고 국민의 검증을 거치신 분이다. 이와 같은 인물의 연생은 우연이 아니요 필연인 것은 좋은 토양과 훌륭한 뿌리가 있으므로 가능 했었다고 본다. 바로 이것이 청송삼계의 덕이요 우리 모든 공직자나 정치인들의 BIBLE이 되었으면 한다. 박사님 서거하신지 이제 1주년이 된다. 고 전 대행께선 더 큰 업적을 남기시면 청송삼계의 역사적 평가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칼럼 : 양희철/고건사랑 군산우민회 대표, 전 신민당 군산·옥구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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