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시설미술학원 지원, 사교육 조장”

미술학원 “평등 지원하라” 잿밥싸움 전락 “유아 공교육이 죽었다” 지난 1월 13일 오후 1시 서울역 광장. 유치원교사 50여 명이 상복을 입고 연단에 올라, '근조(謹弔) 공교육' 영정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는 ‘유아교육 발전을 위한 유아교육대표자연대(의장 이기숙 이화여대 교수)'이 개최한 ’유아교육 공교육촉구 범국민대회’ 행사의 일부다. 이 대회에는 유아교육자, 교원단체 및 학부모단체 관계자 등 2만여 명이 참석했다. 유아교육계가 이러한 초대형 집회와 시위를 벌인 것은 정부가 유아교육 공교육화의 첫시발점인 만5세아 무상교육비를 사설미술학원에도 지원하려 하는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반면 비슷한 시각,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는 전국유아미술학원연합회가 ‘저소득층 자녀 유아교육비 평등지원 촉구집회’를 열고, 지원대상범위 확대를 요구했다. 유아 공교육 실현을 위한 가장 큰 관건이 예산문제인 현실에서, 정부가 처음 야심적으로 내놓은 저소득층 만5세아 무상교육비 지원확대 방안이, 어설픈 미술학원 지원방침으로 지원금을 둘러싼 잿밥 쟁탈전으로 전락되면서, 시작도 하기 전에 비틀거리고 있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의한 학교 공교육 유아교육 공교육촉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교육부가 유아교육 공교육화의 근간인 만5세아 무상교육비 지원을 사교육기관인 미술학원에 지급하려 하고 있다”며 “이는 기초교육인 유아교육의 근간을 흔들고, 유아교육 공교육화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의한 학교이고 미술학원은 교습을 하는 사설학원이므로, 정부가 미술학원에 무상교육비를 지원하는 것은 이들의 불법적인 유치원 교육과정 운영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국가가 앞장서 장려금을 지원하는 것이며, 참여정부의 사교육 경감대책에 정면 배치되고 유아교육법 제정취지에도 반하는 만큼, 즉각 철회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유아교육의 질을 담보하고 발전을 도모할 유아교육진흥원 설치, 취업모의 바램인 종일반 교사배치마저 여성부의 반대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유치원 교육비 경감을 위한 사립유치원 운영비, 인건비 지원 의무조항도 아무 구속력이 없는 시행령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기숙 의장은 대회사에서 “어떠한 학원도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가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근거해 가르치는 유치원을 대체할 수 없다”고 못박고, “교육부의 미술학원 지원은 유아교육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유치원의 시설과 자격기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기준을 학원에 적용하는 것은 유아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상황을 유아교육 공교육화의 비상시국으로 선언하고, 유아교육의 조속한 공교육화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유아교육 공교육화 제대로 실현하라, 공교육 무너뜨리는 미술학원지원 절대 반대, 불법 유아교육과정 운영하는 미술학원 엄중 단속, 참여정부는 ‘학원지원정부’인가 각성하라, 유아교육진흥원 및 종일반교사 배치기준 방해하는 여성부 각성하라, 학부모 유아교육비 경감을 위한 대책 즉각 마련 등, 6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교육부 “유치원 전환유도 위해 한시적 지원” 이 같은 시위가 벌어진 가장 큰 쟁점은 미술학원에 대한 저소득층 유아교육비 지원문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28일 유아교육 공교육화를 위해, 만 5세아 무상교육비 및 저소득층 유아교육비 지원 대상을 2008년까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계층까지 확대하고, 저소득층 유아에 대한 국․공립 유치원 우선 배정, 유치원 신․증설, 농어촌지역 통학차량 운행 지원 및 유아교육비 지원단가 상향조정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만 5세아 무상교육대상은 현재 4만4천명에서 8만1천명으로 확대되고, 지원금도 올해 243억 원에서 내년에는 642억 원으로 증가하며, 만3~4세아는 3만2천명에게 163억 원이 지원된다. 특히 유치원 측과 유아미술학원간에 논란을 빚었던 미술학원 지원과 관련, 저소득층 유아가 다니는 미술학원에는 올해부터 2007년 2월28일까지 2년 간 한시적으로, 유치원과 같은 방식으로 저소득층 유아교육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단 유치원에 준하는 시설기준, 교사자격, 교육프로그램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관할 교육청에서 행정지도할 예정이다. 저소득층 유아가 다니는 미술학원이 유아교육비 지원을 받으려면, 오는 2007년 3월부터 유치원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시설요건을 갖추고, 시․도 유아교육위원회 심의를 거쳐 교육감으로부터 유아 교육위탁기관으로 지정 받아야 한다. 2007년 이후 지원은 유치원만 가능하다. 교육부의 미술학원 지원의 변은 저소득층 유아가 주로 다니는 미술학원의 유치원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한시적 조치라는 것. 교육부 관계자는 “유치원 중심의 유아교육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일정 시설과 교사, 교육 프로그램 등을 갖추고 유치원으로 전환하려는 유아미술학원에 한해 2년 간만 지원하기로 했다”며 “유아교육비 지원이 해마다 늘어나기 때문에, 유아미술학원이 점차 유치원으로 바뀌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봉책에 대해 유치원과 보육시설 등 유아교육계와 미술학원 양측이 모두 강력히 반발,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유아교육법 독소조항, 사설학원지원법인가? 양측의 대립에 대해 교육계는 유아교육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학원법 적용을 받는 사설 미술학원에 교육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유아교육법 제정 취지와 유아교육 공교육화에 정면 배치된다”며 “국민의 혈세를 쓰면서 사교육 풍토를 스스로 조장, 확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교총은 성명에서 “전직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국회에서 미술학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던 것은 ‘잘못된 약속’이었다”며 “사설 미술학원에 대한 유아교육비 지원방침을 즉각 철회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 장외집회를 비롯한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성명서에서 “비록 유아 미술학원의 유치원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2년 간의 한시적 조치라고는 하지만, 이는 ‘유아교육 공교육화’의 대전제를 부정하고, 불필요하게 국고를 낭비하는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도박”이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전교조는 “미술학원 지원방안은 한 마디로 국민들이 만들어 준 유아교육법을 일거에 만신창이로 만드는 독소조항”이라며 “만약 그대로 시행될 경우, 유아교육법의 최대 수혜자는 200만 유아와 그 부모가 아니라 사설학원들이 될 것이며, 결국 정부가 유아교육법을 사설학원지원법으로 변질시키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전국 유아미술학원 측은 거꾸로 정부의 평등한 지원확대를 요구하는 입장이다. 이승춘 전국유아미술학원연합회장은 “전국의 188만 유아들 중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기 어려운 75만여 명의 유아들이 방치되고 있다”며 “전직 윤덕홍 부총리가 약속했던 대로 미술학원 지원을 이행하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2년동안 한시적으로 지원하고 그 후에는 유치원으로 전환하는 곳에 한해 지원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정부의 기준에 부합되는 학원은 전체 미술학원의 2%도 되지 않는다. 유치원 기준을 갖추는 데, 2년이 아닌 5년의 기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아 공교육 의지 있다면, 예산확보방안부터 교육전문가들은 국가가 유아미술학원을 지원할 경우 사교육 경감이라는 범정부적 기본정책에 반하고, 취학 전 1년 완전무상교육 실현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학원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다른 사설학원(피아노, 무용, 태권도 등)이 형평성을 주장하며 지원을 요구하게 될 경우, 대응이 힘들어진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아교육이 공교육화 되어야 하는 당위성은 너무나 많다. 당장 현재의 출산률 저하는 유아보육 및 교육의 부실과 사교육비 부담에서 연유하는 바 크다. 유아공교육의 첫 단추인 유아교육법이 1월 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유아교육법 제정취지는 유아교육의 공교육체제 마련, 초․중등교육과 동등한 위상 확보, 유아교육 공교육화에 따른 재정확보근거 마련 등이 핵심이다. 초․중등교육처럼 학부모들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공․사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느냐에 관계없이, 평등한 유아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적 지원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 교사들도 공립유치원에 근무하느냐 사립유치원에 다니느냐에 관계없이, 동등한 대우와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아교육법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7년 동안 줄기차게 투쟁한 끝에 얻어진 것이다. 교육부는 방관자, 아니 방해세력이었다. 그러던 교육부가 이번에는 유아 공교육의 본질을 흐리는 하위법령 및 시행령을 잇따라 내놓아, 교육계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번 미술학원 지원논란은 그 대표적 케이스의 하나다. 우리나라의 유아교육예산은 교육재정 약 26조원의 1% 수준인 3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 쥐꼬리만한 지원금을 놓고, 유치원과 미술학원이 서로 싸우는 꼴이다. 교육부가 진정 유아교육 공교육화를 추진할 의지가 있다면, 공교육체제의 실현을 위한 장단기 계획과 아울러, 소요예산 확보방안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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