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 중 하나는 "산은 물을 넘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풍수지리라고 하니까 뭔가 신비한 얘기 같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상식은 산줄기와 강은 서로 나란히 흘러가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물은 산과 산 사이 가장 낮은 골짜기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이것도 당연한 얘기지만, 풍수지리에 낯선 현대인들은 잘 의식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풍수의 기본원리를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이해 못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사실 필자 자신도 똑같은 이유로 긴가민가했었다. 기존의 지도를 보면, 산맥과 강줄기의 흐름이 이런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차령산맥은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갈라져서 충북의 북부, 충남의 중앙을 남서방향으로 뻗은 산맥(두산백과)”이라 한다. 이 산맥은 어이없게도 남한강 및 금강과 교차한다. 산이 강 밑으로 잠수했다가 다시 솟아 나온 것인지, 물이 높은 산 위로 분수처럼 솟구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지만, 최근 국토연구원이 인공위성을 통해 실측한 결과, 차령산맥은 아예 없는 가공의 산맥이었음이 밝혀졌다. 우리들이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한국의 산맥은 고토 분지로 라는 일본인 지질학자가 1903년 측정한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해 온 것으로, 수많은 오류가 있었다고 한다. 실측결과, 한반도에는 모두 48개의 크고 작은 산맥이 있고, 가장 높고 긴 1차 산맥이 백두대간 1개, 여기에서 뻗어 나온 2차 산맥 20개, 3차 산맥 24개가 있으며, 이와 무관한 독립산맥들도 있다는 것. 재미있는 사실은 고산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가 이번에 실측된 산맥도와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대동여지도나 택리지 같은 고지도에는 차령산맥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번에 국토연구원이 만든 산맥지도를 보면, 비로소 산줄기와 강줄기는 나란히 흐르면서, 서로 교차하지 않는다. 오대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는 강원도 횡성에서 대혈을 맺고 끝난다. 그리고 그 산줄기와 백두대간 사이를 남한강이 빙 둘러 돌아나간다. 남한강이 서울을 향해 북서쪽으로 흘러가는 것도 산줄기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 차령산맥의 남쪽으로 오인됐던 산줄기는 충북 남부에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산맥으로, 충남지역을 활처럼 휜 모양으로 뻗어있고, 금강도 이와 병행해 크게 돌아 흐른다. 즉 우리는 지리에 관한 한, 완전히 일본인 한 사람에게 속아왔던 것이다. 100년 이상 잘못 가르쳤고, 배워왔던 것이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사회과부도 상에서 도무지 차령산맥과 언진산맥을 찾을 수 없었다. 기름종이에 등고선만 그려서 찾으려고까지 했지만, 그들 산맥은 단지 글자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산이 이어져 있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이것을 선생님께 여쭤봤다가, 괜히 쓸데없는 것만 신경 쓴다고 무시를 당했었다. 선생님들이 나 같은 놈까지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또 한 중학교 교사는 신문기고에서 “어안이 벙벙하다. 해방 이후 자그마치 60여 년 동안 가르쳐 온 교과서가 엉터리였다는 말인가? 학교교과서 전체의 공신력을 일거에 실추시킨 난센스”라며 “우리는 이 일을 그냥 흘러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해도, 값비싼 교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찌 이 네티즌, 이 교사만의 문제이겠는가. 우리 주입식, 임기식 교육의 자화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을 결코 그냥 흘려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2005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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