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政敵)의 딸을 지도자로 삼아야 갈등이 봉합된다

대선 직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구시대의 타파와 정치개혁을 두고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기간 중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했다는 것. 더욱이 해당 사안은 김 전 대통령의 유지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직까지 꾸려져 실무까지 진행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본 지는 해당 실무를 담당했던 이태호 씨와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해당 사안에 대한 사실여부를 파악해 보았다.

정치역사상 유례없는 정치역발상
DJ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했다.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는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이었던 2000년 가을부터 2002년 초봄까지 김 전 대통령의 지시 하에 김윤환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태호 전 내무부장관을 주축으로 착수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이른바 GP-Project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이태호 씨 (BBS 불교방송 총무국장)에 의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씨는 지난 3월, 1급 비밀 그랜드플랜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폭로한 바 있으며 본 지와의 통화에서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시대상에 따라 3년 전부터 이 사실을 밝혀야겠다고 고민했다”며 “지난 3월에 낸 책인데 왜 이제야 주목을 받는지 의아스럽다. 이미 해당 내용은 2010년 출판된 인왕산에 인왕이 없다에서 예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씨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만연한 지역감정과 이념갈등 그리고 정치보복을 청산하려고 자신의 정적(政敵)의 딸을 국가지도자로 키우겠다는 전 세계 정치 역사상 유례없는 정치역발상을 꾀했다. 이씨는 “해당 사실을 알고 있는 4인 중 세 분이 고인이 된 마당에(DJ, 김 전 대표, 김 전 내무부장관) 자신의 폭로를 증언 해줄 사람이 남아있을 때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마지막 남은 1인은 동교동계 K씨라고 말했다. 이는 동교동계 권노갑 전 의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는 권 전 의원의 수행비서인 문성민 씨에게 전화를 걸어 권 전 의원이 해당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확인하려 했지만 문 씨는 “(DJ가)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정권교체를 외쳤던 분”이라며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 씨가 주장하는 2000년에는 김 대통령이 박근혜후보와 함께 박정희 기념 사업회를 추진했던 시기”라며 당시 고문이 권노갑 전의원이었다는 것을 밝혔다. 결국 권 전 의원과의 통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한편 이 씨는 “대한민국 근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우선 정책으로 그 이외의 것은 발전이 더딘 상황이었다”며 이에 “시대의 요구는 ‘민주화’로 향했고 경제화와 민주화의 상징적 대립 인물이 바로 박정희와 김대중이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둘은 영,호남 지역감정, 이념갈등, 정치보복의 산 증거로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시절 가장 박해를 많이 받은 자신이(DJ) 정적의 딸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세워야 갈등과 반목(反目)의 역사가 봉합된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또 자신 스스로는 “김 전 대통령을 빨갱이로 봤을 정도로 노선을 달리했다”면서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고민했던 정치적 역발상을 진심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경제와 민주화가 균형이 맞은 지금 앞으로의 시대정신은 시민민주주의의 시대이며 의무와 책임이 중시되고 있다”며 “이제 지역감정으로 얼룩진 이 시대는 마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DJ, 내 정적의 딸을 지도자로 세워야 국민대통합이 이뤄진다
유일한 증인은 동교동계 K, 권노갑 측은 극구부인

책에 기록된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중략) 내가 먼저 대통령의 정치적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정적의 딸을 국가지도자로 키워 지역감정, 이념갈등, 정치보복을 청산하고 국민대통합의 길을 열려고 한다 (중략) 박정희 정권에게 모진 고문, 가택연금, 인권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와 억압을 받았다 (중략)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용서, 화해, 포용의 대승적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를 묻자 이 씨는 “2001년 당시 박근혜는 49세의 피라미였다. 레임덕과 자신의 아들이 구속수사를 당하는 등 정치적 위기에 봉착해 박근혜를 키워낼 상황이 안되었다”며 “상황이 여의치 않자 박근혜 대신 이인제를 띄웠으나 잘 되지 않았고 이후 호남 출신의 영남 대선 주자였던 노무현을 밀었다”고 말했다.

또한 2003년 민주당 경선 당시 리틀DJ라고 불리던 한화갑을 배제한 것에 대해서는 “DJ는 한화갑을 후보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며 “아마 대의를 위해 가장 사랑하는 부하의 목을 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현재 한화갑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이 사실을 알고 박근혜 지지에 나선 것이냐고 기자가 묻자 “(한 전 대표를)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고 (이에 대해)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알았다면 주군의 뜻을 따라 박근혜를 도와주려 하는 것 아니겠냐”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 씨는 계속되는 취재요청에 “이를 대선 이슈로 이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으며 “국민들이 이제 시대가 변한 것을 인지하고 다가올 시대상을 받아드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대통합, 정치개혁, 경재민주화가 이번 18대 대선을 관통하고 있는 시대요구다. 한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로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유력하게 떠올랐지만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역발상 논리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유신과 구태의 잔재가 아니라 화합과 봉합의 상징이다.

박 후보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국민대통합’을 내걸고 나왔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근혜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면서까지 이루려 했던 것이 바로 국민대통합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시사포커스 조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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