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사퇴, 검찰 갈 때까지 갔다

한달새 6명 감찰·수사, 검찰 내분사태까지

내부 적과의 전쟁에서 졌다, 수장 떠난 검찰 발등의 불

오만한 검찰을 보는 국민들은 그러면 그렇지

검찰비리 또 터졌다. 김광준(51) 서울고검 검사의 10억대 뇌물수수와 전모(30) 검사의 성추문 사건 등 잇단 검사 비리 여파로 한상대 검찰총장이 사퇴한 가운데 지난 3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소속 박모(38) 검사의 사건 알선 비리가 또 드러났다. 지난달 5일, 김 검사에 대한 감찰조사가 시작된 이후 불과 한 달 사이이다. 6명이나 되는 검사가 감찰·수사의 도마 위에 오르는 초유의 사태에 검찰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웃었다

한상대 검찰총장의 퇴임식, 대검 감찰본부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소속 박모(38) 검사의 사건 알선 혐의를 포착, 수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박모 검사는 자신이 수사하는 사건을 매형이 근무하는 법무법인에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로써 한 달도 되지 않아 무려 6명의 검사가 대검 감찰본부의 조사 또는 수사를 받게 되었다.

한 총장의 사퇴가 일련의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퇴임한 것인 만큼 이번 박모 검사의 비리는 한 총장의 ‘책임지고 옷 벗는다’는 의미조차 퇴색하게 만들었다.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의 측근 강모씨에게서 2억7천000만 원을 수표와 현금으로 받은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드러나면서 비롯된 검찰비리 사태는 서울동부지검에서 전모 검사의 성추문 사건이 터지면서 확대되었다. 검찰 조사 결과 전모 검사는 지난 달 10일 검사실에서 조사하던 여성 피의자와 유사성행위를 한 데 이어 성관계를 가졌으며 사흘 뒤 다시 만나 자신의 차와 왕십리의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전모 검사는 긴급체포되었다.

그러나 전모 검사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법원이 수뢰죄의 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기각되자 검찰은 변명할 여지조차 없는 빈궁한 처지에 놓였다. 김모 검사 뇌물수수와 전모 검사의 성추문으로 검찰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서울남부지검 소속 윤대해 검사는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실명으로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자성의 글을 올렸다. 현직 검사가 실명을 밝히고 검찰 개혁과 개혁방안을 제시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윤 검사는 자신이 제시한 개혁 방안은 ‘개혁을 하는 척하면 별거 아니라도 크게 보인다. 검찰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라는 취지라는 문자메시지를 동료 검사에게 보내려다 그만 언론사 기자에게 잘못 보내어 들통이 났다.

이 실수로 검찰 전체가 도매급으로 매도되었고 윤 검사 자신도 감찰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윤 검사가 글을 올리기 하루 전 한편에서는 광주지검의 강모(36) 검사가 화상 경마장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청탁을 받고 일방적인 수사를 했다는 의혹으로 대검 감찰본부의 감찰을 받는 사실이 언론을 탔다. 이로서 4연타,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를 야기 시킨 검찰내분 사태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지난달 28일 김수창 특임검사는 김광준 검사 비리 사건의 수사결과를 한상대 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 그 중에는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이 대학 동기인 김광준 검사에게 10차례에 걸쳐 문자메시지로 언론 대응방안을 조언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수부 존폐를 두고 한 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이 갈등을 빚던 차 한 총장은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최 중수부장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고 이로부터 이틀간 검찰은 지휘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채 대혼란 상태에 빠졌다. 한 총장과 최 부장을 비롯한 중수·특수부 검사들이 정면으로 충돌했으며 결국 한 총장은 “내부 적과의 전쟁에서 졌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

 

혼란 중인 검찰, 우왕좌왕

지난 3일 한 총장의 퇴임에 따라 검찰은 김진태 신임 대검 차장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한 총장과 맞섰던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은 사표를 제출했지만 반려, 전주지검장으로 전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김경수 대검중수부장이 해당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내분 사태가 일단락되자 검찰은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뇌물 검사와 성추문 검사를 기소하고 조직 추스르기에 나서기로 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지난 3일 공무원노조, 새사회연대, 참여연대 등 92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정치검찰 청산없이 개혁은 없다”며 공개적인 촉구에 나서며 검찰개혁 공론화에 나섰다. 대선도 큰 걸림돌이다.

새 정권 출범까지 최소 3개월간 수장 공석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이 예상되는 와중에 벌써부터 여야 대선 후보의 개혁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검찰 내부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는 약속이나 한 듯 지난 4일 오전, 검찰개혁안을 발표하며 검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국민을 위한 검찰로 되돌려 드리겠다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상설특검제를 내놓았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약속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한 목소리를 내었다. 대검 대변인실이 “양당 대선후보가 발표한 검찰개혁방안에 관해 검찰이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만 밝혔을 뿐 검찰은 일체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내부에서는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문제 인식과 대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려 ‘막을 명분이 없다’는 수용론과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공약’이라는 반대론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 한상대 검찰총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친 뒤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미소 짓는 한 총장과 무거운 표정의 검찰 수뇌부 임원들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만한 검사들의 오만한 비리

검찰개혁이 화두에 오른 이때 일각에서는 일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검찰의 오만함을 지적하고 있다. 애초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실명으로 올리면서 동료들에겐 ‘별거 아닌데 크게 개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자를 보내던 검사의 오만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조희팔 사건의 김광준(51)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는 100% 추적이 가능한 수표로 뇌물을 받는가 하면, 차명계좌로 송금받은 수표를 그대로 후배 검사의 실명계좌에 이체하는 등 “누가 감히 날 수사해”라는 배짱을 부렸다. 한 경찰 관계자는 “뇌물 받는 사람들이 이런다면 수사하기 너무 편해 고마운 마음까지 들 것 같다”고 혀를 찰 정도였다.

불기소 조건으로 성행위를 강요한 전모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검사의 재량에 따라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도 있는 기소 편의주의를 이용해 전모 검사는 피의자 여성에게 불기소 해주겠다며 성상납을 요구했다. 하지만 전모 검사는 지도검사의 지적에 결국 피의자를 기소했고 피의자 여성은 이 사실을 자신의 변호사에게 알렸다.

소위 작전쓰다 걸린 서울 남부지검 윤대해 검사는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검찰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검찰개혁을 주장한 윤 검사의 글의 실체는 “내가 올린 개혁방안도 사실 별 게 아니고 검찰에 불리한 것도 없고 개혁을 하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 우리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그 자체였다. 전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비리의식을 키운 것은 정치검사

참여연대는 최근 이명박 정부 검찰권을 남용한 검사 37명과 검사장급 이상 정치검사 10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전치검사들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참여연대 발표에 따르면 정권 비판 세력을 무리하게 수사 및 기소한 사건의 경우 ‘미네르바’,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피디수첩’ 사건 등과 권력형 비리를 부실수사한 사건으로는 ‘내곡동 사저’, ‘한상률 전 국세처장’, ‘민간인 불법사찰’ 등이 대표적 사건으로 꼽혔다.

이들 정치검사들이 권력형 비리에 대한 은폐와 축소, 야권에 대한 표적수사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하는 동안 검찰은 내부에서부터 썩어가기 시작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인사청탁 수사 및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를 지휘한 노환균(55)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연수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하던 김주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2011년 8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미네르바 수사를 지휘했던 김수남 3차장도 기소 직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대통령 정권을 위해 칼춤을 춘 검사들은 현재 여전히 요직에 있다.

권력ㆍ엘리트주의ㆍ오만함으로 얼룩진 검찰의 자정작용을 잃게 한 것은 이러한 정치권력과의 유착 속에서 내부 비리를 묵인한 탓이 크다. 이러한 풍토에서 검찰의 부패와 비리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국민이 바라보는 대한민국 검찰은?

사실 검찰 부패와 비리와 오만함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이는 소위 검찰은 못할 것이 없다는 ‘무소불위(無所不爲)’에 가까운 권력에 핵심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과거에는 20대의 검사에게 쩔쩔매는 40ㆍ50대의 권력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오죽하면 ‘영감님’이라는 속어마저 생길 정도였다. 당시 검사는 막강한 권력자와 다름 없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현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검사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의 최상위층이다.

일각에서는 검사는 기소ㆍ수사ㆍ수사지휘 등 모든 형법권력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검찰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검사의 수도 늘어나고 개중에는 권력에 취하는 검사도 나오는 것이라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 결과가 불과 한 달 사이 메가톤급으로 불어 닥친 6명의 비리검사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안정장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며 “검사를 수사하려해도 검찰에서 영장 청구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토로했다. 현재 미국 등 전 세게 대부분 국가는 경찰이 검사를 체포하고 구속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검사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갖춘 훌륭한 검사도 많을 테지만 권련에 따라 움직이고 목을 매는 이른바 정치검사, 권력형 검사가 만연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검사가 국민들의 편이 아닌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이미지는 검찰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다. 이는 검찰 스스로가 권력을 위해 일하고 그 과정에서 비리도 서슴없이 자행하는 불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결과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번 대선 후보들이 강도 높은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상황에서 조차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스폰서 검사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검찰보다 깨끗한 조직은 없다’며 ‘우리(검찰)보다 잘 아는 곳은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라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6일 발표한 ‘2012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검찰은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받은 3년 연속 꼴찌였다.

검찰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오는 국민의 반응은 ‘어떻게 검찰이?’에서 ‘그러면 그렇지’라는 식으로 돌아선지 오래, 권검유착과 검사동일체 엘리트 의식이라는 썩을 대로 썩은 부패한 권력이 국민들로 하여금 비웃음을 받고 있다. 비웃음을 받는 엘리트, 무시당하는 권력, 지저분한 오만함 이것들이 현재 국민들이 바라보고 있는 검찰의 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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