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지 의사 표명... 새누리당 입당은 고려치 않아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호남에서 민주당 표심이 대거 이탈 조짐을 보여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현재 한 전 대표는 새누리당 입당은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박근혜를 지지할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새누리당 내에 호남 세력이 자리를 잡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화갑 전 대표는 친노세력과 맞서 싸워온 대표인사로 지난 4월 총선 직후에는 "문재인 상임고문이 대선 후보가 되면 민주통합당은 필패"라고 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누리당 세력에 맞서온 민주당 세력이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를 지지하게 되면 호남은 노무현 세력 중심의 구 열린당 세력과 DJ중심의 구 민주당 세력으로 다시 분리될 수도 있어 앞으로의 한 전 대표의 행보가 주목된다.

당시 선거에선 한 전 대표가 이끈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을 압도해 박준영 전남지사와 박광태 광주시장을 비롯한 순천·여수·광양 등 광주전남의 지자체장들 상당수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기도 했다,

'리틀 DJ' 한화갑, 동교동 사단의 대표적 인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하면 떠오르는 말이 ‘리틀 DJ'다. 한 전 대표는 1967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동교동 사단의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14대 국회 때 원내에 입성한 이래 내리 4선에 성공했던 정치인이다. 또한 1998년 국민의 정부 탄생 당시 때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더불어 ‘양갑’으로 불리는 여권 핵심 실세였다.

이때까지가 한 전 대표의 정치1기인 셈이다. 흔한 말로 그때는 ‘잘나가는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리틀 DJ', '포스트 DJ'라고 불리며 승승장구했던 정치인 한화갑은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든 후 홀로서기에 나섰으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전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하며 쓰라린 정치세월을 맞게 된다.

당시 한 전 대표는 여권의 핵심 실세였지만, “전라도 출신 후보가 본선에서 가능하겠느냐”는 논리 때문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자신의 정치인생 중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라고 한화갑은 회고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제주도에서 일등을 하니까 이인제 대세론이 꺾였으나 내가 후보가 되면 ‘또 전라도에서 대통령이 나오겠느냐, 본선이 어렵다’는 말들이 돌았다”며 “그래서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광주에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고 분개했다. 그리고는 “내가 전라남도 도청을 광주에서 무안으로 옮겨 광주경제가 망가졌다는 말을 2002년 대선 경선 때 광주전체에 퍼트렸다”면서 “결국 광주시민들이 감정에 치우쳐서 나를 배척하고 동서화합 차원이라며 노무현 후보를 선택하는 누를 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그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갈라섰다. 노무현이 민주당을 쪼개 신당창당에 나서자, 한화갑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는 말을 남긴 채 노무현과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함으로써 돌아온 건 차디찬 ‘정치보복(?)’뿐이었다.

한화갑은 2000년 8월 전당대회와 2002년 4월 전당대회를 통해 두 차례 1등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된 바 있어, 민주당이 둘로 쪼개지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민주당 신주류, 구주류 몰아내고 열린우리당 창당

하지만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신주류는 한화갑 등 구주류를 반개혁 인사로 몰아붙이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홀로 남은 한화갑은 원내교섭단체도 꾸리지 못한 야당대표로 추락했다. 그리고 검찰의 칼이 한화갑을 옥죄기 시작했다.

한화갑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SK 그룹 등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0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실 이 사건은 형평성 논란을 불러왔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는 노무현 이인제 정동영 등 기라성 같은 정치인이 참여했다. 경선을 앞두고 경선자금이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다.

2002년은 지방선거와 대선 등 전국적인 선거가 있는 해라 국회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은 평소보다 두 배인 6억 원까지 후원금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선관위는 ‘6억 원 중 절반인 3억 원은 지방선거가 열리는 6월 이후에 쓸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고 민주당은 출마한 후보들에게 기탁금 2억5천만 원을 요구했다. 법정자금은 3억 원밖에 안되는데, 그 중 2억5천만 원을 기탁금으로 내고 남은 돈 5천만 원으로 선거를 치러야만 하는 상황이 암담함을 불러왔다.

후보들은 “어떻게 5천만 원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느냐”며 반문했다. 경선이 가열되면서 ‘과연 5천만 원으로 선거를 치르는 게 가능하냐’고 묻자 후보들은 “사실을 말하자니 법에 걸리고, 거짓말을 하자니 양심에 걸린다”며 즉답을 피했고, 김근태 후보만이 ‘양심선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전 대표는 “나만 불법자금을 쓴 것이 아니고 노 대통령이 오히려 나보다 더 많이 썼다”며 형평성을 제기했으나 경선자금과 관련해 한 전 대표만 처벌 받았다.

한화갑은 이에 대해 “그때 지구당이 240여개 되는데 한지구당에 100만 원씩만 보내도 2억4천만 원이었다”며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할 때 내가 중립을 지키니까 노무현 후보 측에서 ‘당선되기 전부터 없애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12월19일이 투표일인데 13일 저녁에 어떤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 ‘노무현이 당선되면 당신 쫓겨나니까 대표 직을 그만두라’고 했다”고 밝히며 “심지어 동교동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물러나야 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당선 후 비서실장도 오지 않는 대표실은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혼자 대표실을 지키고 있으려니 그 고독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대표직을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서 당시 대표직을 사퇴했다고 밝혔다.

한화갑 전 대표가 동문의 고향방문에 함께 동행했다.
DJ와의 의리 위해 텃밭 버려

아무튼 한화갑은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정치적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한화갑은 18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무안 신안을 버리고 광주에 출마했으나 보기 좋게 낙마했다. 당시 정가에서는 ‘한화갑이 무안에 나오면 ’떼놓은 당상‘인데 왜 광주에 출마했지?’라는 의문부호를 던졌다. 이유는 김대중과의 의리 때문이었다.

한화갑은 “광주에 출마한 것은 발상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며 “내 선거구가 무안, 신안인데 이곳에 DJ의 둘째 아들인 김홍업 의원이 출마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DJ 덕택에 지금까지 정치를 하고 성장했는데 정치적 스승의 아들하고 경쟁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DJ와 대립되는 인상을 주기가 싫어서 또 도리도 아니고 해서 출마를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화갑은 “그래서 당시 연고지인 목포에서 출마하려고 했는데 ‘DJ가 박지원 의원을 보낼 테니 가지(출마) 말라’고 말했고 광주 북구는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억울하게 당했던 지역이고, 광주민주화운동 국가유공자였던 나는 죽으면 광주 망월동 묘지에 묻힐 생각이라 살아 있을 때 한번 공헌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출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2년 다시 주목받는 한화갑, 박근혜 지지할 듯

그러나 광주에서 낙마함으로써 서서히 잊혀져가던 한화갑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주목받고 있다.

현재 한화갑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듯 싶다. 이유는 ‘동서화합’이다. 더 이상 정치를 볼모로 지역이 갈기갈기 찢겨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화갑은 박근혜를 통해 대한민국을 통일강국을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외교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리틀 DJ'말고도,‘통일전문가’라는 닉네임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가 말하는 통일정책은 우리에게 통일의 의미를 잘 전달해준다.

한화갑의 원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통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우리민족이 세계로 뻗어나가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돼야 더 크게, 더 빨리 갈 수 있고 경제적 강국이 되는 데도 통일이 필수 조건이다”면서 “우리가 수출입을 할 때 99.9%가 바다를 이용하고 육로는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는 북한 때문에 육로가 막혀있는 것이므로 통일이 더 잘 살기 위한 수단이 돼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나는 통일정책에 있어서 DJ의 3원칙 3단계 통일방안을 지지하고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화갑을 영입하기 위한 물밑작업에 한창인 새누리당에는 최근 대선과정에서 입당한 한광옥, 김경재 등 DJ계 인사들이 포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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