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MB는 레임덕 없이 평안한 임기 말

요즘 이명박 대통령을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그간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해외에 나가있는 바람에 워낙 얼굴 보기 힘들기도 했지만 요즘은 뉴스에서 조차 자취를 감춰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각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정권교체를 외치며 치열한 경쟁을 하는 이때 이 대통령은 지난 달 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부인 김윤옥씨와 커피 한잔을 즐기며 시민들과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등, 임기 말 국정 운영을 마무리하는 대통령으로서 손색없는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 박근혜 후보 덕분이다. 

또 출국, 또 라디오연설 
친인척비리나 측근비리 등 주요 권력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외에 있던 이명박 대통령은 내곡동 특검이 터지고 부인 김윤옥씨가 소환되니 마네 하는 와중에도 공교롭게도 태국 공식방문 일정 중에 있었다.
지난 10일 방콕 총리 청사에서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안했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물난리가 날 뻔했다”며 “(한국도) 한 두 달 새 (태풍이) 3번이나 왔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을 안했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물난리가 날 뻔했다”고 말해 국내 여론의 거센 질타를 맞으며 정작 내곡동 특검에 대한 직접적 논란을 교묘히 회피한 모양새가 되었다. 
2010년 청와대 불법 민간인 사찰건과 4대강사업 국회 예산안 처리 강행 시 말레이시아에 있던 이 대통령은 2011년 8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으로 사퇴를 하던 때에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했고 9월 부산저축은행사건에 청와대 최측근 인사가 연루되었을 때에는 유엔에, 한미FTA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단독 날치기 처리와 내곡동 사저 논란이 일어난 10월에는 미국에 있었다. 2012년 1월 한나라당 돈봉투 전당대회가 폭로되었을 때에도 이 대통령은 역시 국내에 없었고 ‘제2의 을사조약’이라 불리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논란이 일던 때는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 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피해왔던 이 대통령의 출국 행보가 이번 내곡동 특검에도 유효했던 것이다.
태국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친 뒤 이 대통령은 KBS1 라디오와 교통방송, 유튜브 등으로 방송된 제102차 라디오연설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또 출국 그리고 또 라디오 연설이다. 이 대통령은 7∼11일 인도네시아ㆍ태국 순방을 설명하며 15일부터 시행되는 의약품의 슈퍼 판매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진전이 전혀 없었다”면서 “우리 보건의료 분야에 큰 획을 긋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금년 겨울은 기후변화로 인해 예년에 없던 혹한이 예고되고 있어 쌀쌀해진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란다며 자상히(?) 국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듯 보기 힘든 이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터 매입 의혹에 이어 비비케이 비자금 의혹과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해임 결의안 부결에 대한 외압 의혹 등 자신과 관련된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가운데도 출국하거나 라디오 연설을 하거나 삼청동 한 카페에서 부인 김윤옥씨와 커피 한잔을 즐기며 평안한 임기말의 모습만을 노출시키고 있다. 

레임덕 없는 대통령?
대선 코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뉴스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임기 말 이렇게 편하게 보내는 대통령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언론은 조용하다. 지난달 18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연평도를 방문했다는 뉴스 정도가 비교적 상세히 보도됐을 뿐 내곡동 사저터 매입의혹을 둘러싼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본격화한 뒤에도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이 대통령에 대한 소식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임기 말 논란의 중심에서 노출되었던 김영삼, 故 김대중, 故 노무현 대통령 정부 때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임 대통령들은 모두 측근 비리 등으로 뭇매를 맞으며 집권당에서 불명예스런 탈당을 해야 했다. 정권의 실정이 부각되면 여권에서는 차별화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등을 돌렸고 야권에서는 정권심판론이 곧잘 고개를 들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말할 것도 없이 지난 6일 정권교체를 내세워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조차 이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지 않는 등 대선 국면임에도 이 대통령은 비판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대선 때면 으레 실시해온 대통령 국정지지도 조사도 최근 들어선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1987년 민주화 이후 당적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무리하는 첫 대통령이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4대강 사업 강행, 언론관련법·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강행 처리 등으로 정국을 뒤흔들며 임기 초반부터 탄핵대상으로 거론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대통령의 임기말 이질적인 평온함은 이상할 정도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근혜와 MB와의 관계가 공조인가 야합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이 집권당 소속인데도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MB를 무시하고 있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실시된 지난 7월 국정지지도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처참할 정도이다. 
한국갤럽에서 집권 5년차 3분기 대통령의 직무수행평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3%에 지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물론 보수들이 목에 힘을 주며 외친 ‘잃어버린 10년’의 당사자인 故 김대중 전 대통령 28%, 故 노무현 전 대통령 27%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수치이다.
한편에서는 이 대통령에 대한 일관된 ‘무시’의 이유가 현재로서는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큰 ‘실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박 후보 측은 소위 ‘이명박근혜’라는 동질성 논란에 지난 5년간 이 대통령과 치밀하게 차별화를 꾀하며 정권재창출과 정권교체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왔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뒤 지난 5년간 여당 내 야당으로 친이-친박 싸움을 치룬 박 후보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대를 비롯, 정부의 추가 감세, 차세대 전투기(FX) 선정, 인천국제공항 지분매각 시도에 제동을 거는 등 배다른 정책적 기조를 보였다. 실제로 지난 박 후보가 지휘한 4월 19대 총선에서는 친이계가 공천 과정에서 대거 탈락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자 청와대 일각에선 안철수를 지지한다는 루머가 소리 소문 없이 돌았다. 새누리당의 친이계 쪽이 안 후보의 당선이 더 낫다는 식으로 보는 정서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드려졌다.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가 연일 박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 역시 이 대통령의 안철수 지지론에 힘을 실어줬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박 후보의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더욱더 빛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당 후보와 대통령의 결별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박 후보는 3월에 열린 관훈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탈당은 해법은 아니라며 정치 배신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는 실리까지 챙겼다. 이른바 ‘이 대통령 무시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이다.
문 후보와 안 후보 측은 이 대통령보다 박 후보를 공략하는 것을 우선전략으로 삼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정권교체’ 프레임이 와해되고 난 뒤 더 이상 정권교체만 가지고는 승부수를 띄우기 어려우며 탈이명박에 성공한 박 후보를 상대하기 위해선 박 후보 자체를 노려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 후보 캠프 한 관계자는 “박 후보가 갖고 있는 퇴행적 역사 인식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라고 밝혀 이 대통령과는 싸울 의사가 없음을 나타냈고 안 후보 캠프의 김성식 선대본부장은 “만일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대결이 된다면 박정희, 故 노무현의 분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박-문 두 후보 간의 싸움을 ‘과거 대 과거’의 대결 구도로 국한시키려는 뉘앙스를 보이며 대 박근혜 구도에 자연스럽게 편입했다.
이처럼 문 후보나 안 후보 역시 이 대통령과 마찰을 피하려 하지만 실상 역대 대통령 중에 대선 기간에 현직 대통령과 지나친 대립각을 세워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는 없었다. 14대 대통령 선거부터 김영삼, 故 김대중, 故 노무현, 심지어는 이명박 대통령 조차도 故 노무현 대통령과의 마찰을 피했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직시절 감사원장, 국무총리로 마찰을 빚어온 이회창은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때도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으며 16대 대선 당시 故 노무현 당내 경쟁자였던 이인제 역시 故 김 전 대통령의 자식 문제를 제기하다 고베를 마셨다. 민주당의 정동영, 김근태 두 유력 후보 역시 故 노 전 대통령과 시도 때도 없이 부딪혔다.
무엇보다 문 후보나 안 후보가 이 대통령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괜히 이 대통령과 싸움을 벌여 그들을 다시 새누리당 지지자로 만들거나 기권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박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이 대통령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터 매입 과정에서 불법이 자행됐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또한 고위 검사의 비리 사건 관련, 검찰과 경찰이 동시에 수사를 벌이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1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 정무수석(경찰담당)과 민정수석(검찰담당)이 참석했지만, 검경갈등에 대한 보고조차 없었다”고 밝힌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대통령은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내곡동 특검팀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경호처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청와대 측의 거부로 무산된 것을 볼 수 있듯 철저히 ‘무시할 수 없는’ 대통령으로 건재하고 있다.

MB를 8면 대통령을 만들어준 박근혜 
정치권의 정치공학은 그렇다 쳐도 최근에는 언론조차 이대통령에 대해 쉬쉬하고 있다. 특히 내곡동 특검에 관련해서는 보수 언론이 내곡동 수사 관련 보도를 종합면에 8면으로 작게 처리하고 있는 것을 빗대 ‘8면 대통령’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4년 전 ‘비비케이(BBK) 주가 조작설’을 수사한 정호영 특검팀이 실소유주 논란이 있던 다스의 100억대 비자금을 알고도 덮었다는 보도가 나오거나 BBK 사건 의혹의 장본인인 김경준씨가 특검에 출석해 다스 증언을 원한다는 보도도 오직 ‘한겨례’만 다루는 등 언론편향이 지나칠 정도로 기울었다.
도리어 이 명박 대통령이 레임덕이 없을 땐 분명 그 이유가 있다며 보수 언론은 탄핵의 위기에서 천안함 사태로 위기를 벗어나고 국제금융위기 극복하거나 한미FTA 협정 체결, G20 정상회담 성공적인 개최, 핵안보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한미동맹강화, 우방국과의 성공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치적을 드러내며 건국이래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다는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용감한 평가조차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여기저기 레임덕 지적이나 조짐이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갤럽의 최근 국정지지율 조사 결과도 그렇고, 지난 국토해양부 국정감사에서 박기춘 민주통합당 의원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토부의 자료조작, 허위자료 제출이 도를 넘고 있다"며 "이는 임기말 MB정부 레임덕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하는 등 레임덕을 가시화 시키려던 시도도 분명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현재 종합면 8면짜리로 대한민국 모든 이슈에 빗겨나 있다. 대통령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박 후보가 입을 다문 것만으로도 ‘박 후보가 당선되도 정권교체가 된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어필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요즘 삼청동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며 페이스북을 하는 등 국정 운영을 마무리하는 대통령으로서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가 하면 전용기를 타고 해외 순방을 다니고 정치권과 여론이 이미 ‘경제민주화’로 배를 갈아탔음에도 “성장률이 떨어지면 일자리도 준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이 어려워도 한번 해봐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도록 도와줘야 한다(지난 29일 비상경제대책회의 중)”며 대선과는 거리를 둔 채 꿋꿋히 엠비노믹스를 지휘 중에 있다. 모두 박 후보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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