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한민국 정치지형이 바뀌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20여 년 넘게 유지돼온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 간의 정치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곽노현이라는 진보교육감이 탄생하면서부터 생긴 변화의 바람은 4월 총선 무소속이었던 박원순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당선시키며 가시화되기 시작, 급기야 대선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며 PK와 TK를 뒤흔들었다. PK와 TK의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정치지형은 지금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야권 후보들의 등장으로 ‘보수분리’의 현상을 맛보고 있다.

 

영원할 것 만 같았던 TK, PK

1988년 13대 총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던 통일민주당은 부산 15개 지역구 중 14개 지역구에서 당선될 정도로 PK는 1990년까지 대표적인 야권의 텃밭이었다. 당시 집권정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고작 김진재 전 의원 한 명만 당선됬을 정도로 지지부진한 성적을 보여왔다. 반면 TK는 정통보수 여당을 지지하며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대통령을 연속으로 배출시키며 권력의 핵심지역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가 정치적으로 연대하면서 상황이 급변, 민주자유당이라는 3당 합당의 결과물을 내놓은 뒤로 TK, PK 보수층의 정치지형은 신한국당을 거쳐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보수연합으로 유지되어 왔다. 이런 정치지형이 PK 출신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등장으로 요동치기 시작, 급기야 TK와 PK 간의 갈등과 분리로 치닫고 있다. 소위 말하는 ‘소지역주의’로 표심이 분산되어 대선판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이러한 미묘한 균열속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안 후보 모두 PK지역을 ‘승부처’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TK, PK 정치공학적 관계

과거 지역감정과 정치지형은 정치공학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호남의 경우 영남에 대해 지역감정이 “자기들끼리 너무 해먹고 밀어주며 우릴 배척한다”라는 식으로 영남권의 정치적 행태 및 역사적 핍박 대한 것에 집중되어 파생된 반면 영남권은 “호남 사람들은 지독하고 믿을 수 없다”혹은 “빨갱이다”라는 식의 막연한 문화적 편견과 루머가 양산되어 왔다.

이는 영남 출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60년 영남정권하에서 파생된 지역감정과 정치지형이 교묘히 맞물린 정치공학적 관계로 귀결된다.

영남의 장기집권 하에 영남 출신의 고위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 등은 상대적 수혜 속에서 부의 고리에 편입되어 기득층으로 자리 잡았다. 정권의 불법성을 희석시키고 투표 공학적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제 시대 이후 형성된 보수 대 수구의 구도를 비틀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호남=빨갱이’, ‘광주 민주화 운동=내란’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필연적이었고 지역감정과 정치지형이 호남 거리두기에 야합하면서 이른바 지역주의 즉 텃세라는 정치용어를 만들어 냈다.

그러던 것이 1990년 들어 기득권의 자생을 위해 TK와 PK의 보수층이 결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민주자유당의 등장이었다. 보수층 위주로 정치지형이 안정되자 지역감정은 최소한의 정치공학적 기능만을 발휘하며 사회전반에 갈등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1991년 3월 경북 구미시 한 공장에서 30t의 페놀이 방류돼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 영남 전 지역의 식수가 오염되는 사고가 있었을 때 TK에서 일어난 사고에 PK가 피해를 봤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이는 곧바로 위천공단 갈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추진된 대구 달성군 위천리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대해 PK지역에서 “식수원인 낙동강이 오염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해 결국 무산됐으며 1993년에는 삼성자동차 공장 부지가 유력하게 검토되던 대구 대신 부산으로 확정되기도 하는 등 지역감정은 지역주의와 교묘히 결탁하며 뿌리내렸다.

 

지역감정과 정치지형의 분리

그러던 것이 2002년 부산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지역감정과 정치지형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되었다. 지역감정의 여파가 보수층이 만들어놓은 정치지형에 균열을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균열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과 2008년 총선에서 TK와 PK 지역 모두에서 친박(친박근혜)계가 약진하며 일단 봉합되었다. 그러나 지역감정의 여파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 ‘동남권 신공항’으로 재연됐다. ‘가덕도 신공항’을 요구하는 PK와 ‘밀양’을 고집했던 TK 간 갈등이 정치권으로 비화된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은 당장 현 새누리당의 목을 졸랐다.

이렇듯 지역감정이 지역주의와 편승해 견고한 정치지형을 침식하면서 PK의 보수분리 현상을 가시화시켰다. 2010년 지방선거 부산시장 선거에서 김정길 당시 민주당 후보는 44.6%를 얻어 8년 전 노 전 대통령의 득표율(29.9%)을 훌쩍 뛰어넘었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이 해양수산부를 없애고 정부 고위직을 TK 출신으로 채워 넣자 ‘PK홀대론’이 지역에 퍼져 PK 보수를 흔들어놓았다.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과 이명박 정부에서의 PK홀대론 등 기존 보수층을 등에 업은 새누리당의 악재는 PK 출신 진보적 야권 후보인 문·안 후보의 등장으로 더욱더 악화되었다. 그동안 전라도표는 TK표로 방어하고, 서울, 수도권에서 밀리는 부분은 PK표로 충당하고, 막판에 북풍으로 강원도 표 끌어와서 치러온 대선공식이 문·안 후보가 박 후보와의 PK지역 양자 대결에서 40% 이상 지지를 얻으면서 깨진 것이다.

현재로서는 지역감정과 정치지형의 맞물린 연결고리는 끊어지기 직전의 상태로 보인다. 더 이상 “우리가 남이가?”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PK 민심 초박빙

PK와 TK의 정치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PK에서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50% 벽이 깨졌다. 지난 7일~8일 시사저널과 미디어리서치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는 55.5%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쳤고 안철수 후보와의 대결에서는 53.3%로 집계돼 이전까지 PK에서 여야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7:3 구도가 완벽하게 깨져버렸다.

지난 4월 총선에서부터 조짐을 보인 PK의 민심 이변은 이번 대선 기간 중 확실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더 이상 박후보 측은 PK를 여권의 텃밭으로 부를 수 없게 된 점과 더불어 PK에서 박후보를 상대로 4 대 6 정도로만 따라붙어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야권에서는 청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때 집계된 PK 지역의 총 유권자 수는 6백36만4천여 명, 2002년 대선 때 故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이겼을 때, 이 후보의 득표율은 65.3% 노 후보는 득표율은 29.4%였다. 열세지역으로 꼽혔던 PK에서 노후보가 3 대 7의 비율로 비교적 선전한 것이 대선에서 승리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점을 비춰봤을 때 최근 여론조사의 지지율이 4 대 6로 굳혀진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는 4 대 6의 비율로 어림잡아도 63만여 표가 야권 쪽으로 플러스 된다는 계산에 도달한다. 여기에 ‘두 표’를 적용시키면 여당지지 성향의 63만여 표가 야권쪽으로 이동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63만표를 뺏긴 여당 쪽에서는 120만표을 잃은 셈이 된다. 일부 기권층을 감안하더라도 PK 지역에서만 최소한 100만표 이상이 여에서 야로 움직인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대개 30대 이하 연령층에서는 야권 후보가, 5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여권의 박후보가 확연히 앞서고, 중간 40대층에서는 야권 후보가 백중 우세 현상을 나타내는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여론조사의 연령층 지지 경향이 여당의 텃밭이라던 PK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기현상도 PK 정치지형 변화에 한몫하고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질문에서 42.6%가 '바람직한 일'이라고 대답해 야권의 후보 단일화 논의를 '야합'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는 새누리당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는 등 PK의 정치지형 변화는 이미 표면 밖으로 드러났다 해석할 수 있으며 대개 대선을 한 달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는 지지층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을 비춰본다면 현재로선 PK 지역에서 6 대 4 혹은 5.5 대 4.5의 비율로 여야 판세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대로 민주당은 호남에서 지지율 70%의 벽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역대 선거에서 여야 지지 구도가 9:1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지형의 무너진 것을 실감한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역대 대선마다 새누리당(전신인 민자당·한나라당 포함) 후보들이 얻은 호남의 득표율은 1992년 김영삼 후보 4.3%, 1997년·2002년의 이회창 후보 각각 4.9%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치였고 그나마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9.0%의 득표율을 올린 바 있다. 그런 호남에서 박 후보는 지난달 15일 이윤수, 안동선 등 20여명의 상도동계와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인사를 영입 이후 한 자릿수 대의 지지율을 말끔히 끊어내고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에서 박 후보는 한때 지지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PK와 TK의 보수층 분리현상 확연히 드러나

충청권은 엎치락뒤치락 대선 막판에야 알 수 있을 듯

강원도는 평창올림픽 유치로 인한 새누리당 충성표 건재

 

그 밖에 충청·강원도·서울 수도권 지역은?

충청권은 30년간 함께한 김종필 이후 걸출한 정치적 인물의 부재로 정치지형에서 벗어나 있다.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권 민심은 역대 대선처럼 선거 막판에 가야 실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14대 대선 이후 내리 4번의 대통령 당선자를 맞혔던 충청권은 정당 정서보다 실리적 지역주의 경향이 강해 다른 지역보다 늦게 표심을 드러내는 성향이 강하다. 그나마 충청권에서 명맥을 이어오던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가 지난 14일 새누리당 보령·서천지역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해 "우리나라는 지금 위기상황에 있는데, 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박근혜 후보 밖에 없다"고 말하는 등 연이어 박 후보 지원에 나섰지만 민심의 변화는 없어 이번에도 정치적 중립지역으로 남을 것이 예상된다.

현재 충청권은 세종시 원안을 사수했던 박 후보가 텃밭 수준으로 우위를 점했던 지역으로 지난 4월 총선에서 대전·충남·충북 전체 25개 선거구 가운데 12곳에서 승리하며 18대 국회에서 3석에 불과했던 의석수를 크게 늘린 전력이 있다. 박 후보의 지지율은 충청권에 지지 기반을 둔 선진통일당과의 지난 달 25일 합당 선언 한 후 잠깐 호재를 보였을 뿐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의 지난 5~6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16~17일의 조사 대비 대전·충청에서 박 후보의 지지율은 40.7%로 3.0%포인트 하락하는 등 엎치락뒤치락하는 반복해 안개 속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충청권과 마찬가지로 정치지형에서 벗어나 있는 강원도는 충청권보다 스윙보트의 성격이 강하다. 현재 강원도는 2018년 평창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지난 4월 총선 출구조사에서 전 지역구를 새누리당의 빨간색으로 물들인 기염을 토해낸 이후 그 여파가 그대로 박 후보를 향한 표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사회조사연구소가 제18대 대선을 60일 앞둔 지난달 19, 20일 이틀간 도내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를 통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박 후보는 문 후보와 53.0%대 35.2%, 안 후보와는 51.8%대 37.0%로 양자 대결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집계됐다.

박 후보는 19세 이상 20대(28.2%)와 30대(28.4%), 40대(31.7%)에서는 두 명의 범 야권 후보와 비슷한 지지율을 보였으나 50대(68.0%)와 60대 이상(80.8%)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큰 이변이 없는 한 충성표로 보답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수도권 지지율 추이는 MBN 한길리서치에 따르면 10월 말 양자대결에서 42.1을 기록했던 박 후보의 지지율은 39대로 추락했고 다자대결에서도 40.5에서 39.3 소폭 하향을 그렸다. 경제민주화에서 한발 물러서고 성장론으로 방향을 전환한 행보에 승부처인 수도권·중도층·40대 민심 이탈이 가시화 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월 총선 총선 득표율에서 야권에 7%포인트 정도 뒤진 것을 감안한다면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많은 수도권 중도층 이탈로 인해 10%포인트 차이까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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