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장소 고지 않은 채 '몰래카메라식' 촬영 반발하기도

최근 서울 강남에 납치 등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강남경찰서와 강남구청이 올 하반기까지 방범용 폐쇄회로TV(CCTV) 340여대를 주택가 거리에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범죄예방'과 '사생활 침해'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구청과 협의 44억7천6백만원 확보키로 강남경찰서는 우선 지난해 12월부터 현재 5대의 CCTV가 시범 운영되고 있는 강남구 논현1동에 11대, 역삼1동에 16대 등 모두 27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연말까지 동마다 평균 16개의 CCTV가 가동되는 셈이다. 이들 지역은 강남구 안에서도 범죄 빈발지역으로 꼽히고 있는 곳이라는게 강남 경찰서의 설명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25일 "불안한 치안상황으로 주민들이 방범용 CCTV를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며 "지난주 e-메일을 통한 설문조사 결과 구민 293명 가운데 89%가 CCTV 설치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계획대로 시행된다면 다른 동보다 지역이 좁은 편인 논현1동의 주민들은 산술적으로만 따졌을 때 최소 300m 마다 1대꼴로 설치된 CCTV에 촬영된다. 또 효과적인 범인 검거를 위해 ‘CCTV가 설치된 지역’이라는 표지판을 달지 않고, 관할 파출서는 촬영된 장면을 한달간 보관할 방침이다. 강남경찰서는 "지난해 12월 논현동에 5대를 시범설치, 운영중인 방범용 CCTV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확대운영키로 했다"면서 "구청과 협의해 필요한 예산인 44억7천6백만원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범죄예방을 위한 CCTV 설치는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 경찰측의 설명. 지난해 경찰대 표창원(表蒼園·범죄학 전공) 교수가 발표한 ‘CCTV 설치의 효용과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88년부터 공공장소에 CCTV를 설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CCTV를 설치해 온 영국의 경우 리버풀의 한 번화가에서 91년 53건이나 발생했던 강력 범죄가 CCTV를 설치한지 1년 뒤 9건으로 급감했다. 미국도 '9·11 테러사건' 이후 뉴욕과 워싱턴의 관공서, 대형빌딩 주변에 CCTV를 집중 설치해 왔다. '편의주의적 발상 접근' 지적 그러나 사전에 촬영사실을 고지하지 않는 ‘몰래카메라식’ CCTV 촬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경찰이 촬영 대상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무작위로 촬영하는 것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또 경찰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 구청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응했던 한모씨(42)는 “CCTV를 설치하더라도 즉각적인 범인검거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한데 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근본적인 대책없이 기계적인 방법에만 치우칠 경우 앞으로도 더 많은 CCTV를 설치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캐나다와 덴마크는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방범 목적이라 하더라도 촬영 사실을 알리지 않고 CCTV를 운영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은우 변호사는 "아무리 범죄 예방용이라도 CCTV 촬영은 헌법에 보장된 인격권과 사생활 보호의 정신에 위배된다"며 "특히 촬영 사실을 알리지 않는 방식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불법행위다"고 지적했다. 이어 "CCTV로 범죄를 예방한다는 생각은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다"며 "초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인 대책이 될 지는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吳昌翼) 사무국장은 “어린이와 부녀자의 ‘안전할 권리’도 인권인 만큼 범죄예방을 위한 수단으로 CCTV를 도입하는 것은 찬성한다”며 “그러나 녹화화면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김창국(金昌國) 위원장은 “방범용 CCTV 촬영 때문에 초상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진정이 들어오고 있어 공공장소에 CCTV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동의없는 개인정보 수집은 사생활 침해" 또한 대한변호사협회(박재승 회장, 이하 변협)측은 29일 "CCTV로 거리를 24시간 단속하는 것은 엄연한 사생활침해다"며 "개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개인정보 수집이며 법적 근거도 없는 프라이버시권 침해"라는 의견을 냈다. 또한 "24시간 CCTV로 거리를 촬영할 경우 개인들에 대한 무차별 정보가 수집된다"며 "개인에 관한 정보를 해당개인의 승낙이나 동의 없이 수집·저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프라이버시의 침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변협은 "공공장소에서의 초상권은 사적 공간에서의 권리만큼 강하게 지켜지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보호돼야 할 권리임은 분명하다"며 "CCTV 촬영을 하면서 이 사실을 도로의 입구에서 사전에 알리더라도 통행자의 동의 및 승낙을 모두 받을 수는 없으므로 초상권 내지 프라이버시권의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종로구가 홈페이지를 통해 인사동길 동영상을 방송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변협은 "개인의 초상권 및 프라이버시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종로구는 현재 구청 홈페이지(www.jongno.go.kr)를 통해 인사동 사거리 등 인사동 거리 곳곳의 모습을 24시간 CCTV로 촬영,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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