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 사수를 위한 희망의 약속

타 여느 선진국과 비교하여 기부정신이 극히 희박하고 투기꾼들이 넘쳐나 땅은 그저 한몫잡는 횡재의 수단으로 여겨지던 것이 근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내 것과 우리 것, 그리고 우리 땅에 관한 전반적인 인식수준이었다. 이러한 개인주의 사회문화의 조류에 반해 시민들의 손으로 직접 자연 환경과 문화재를 지켜가자는 움직임들이 태동을 보이고 있어 화제다. 2000년 1월 출범한 우리나라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모금이나 기부, 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유산 및 자연을 확보한 후 시민 주도 하에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시민환경운동이 이 땅에 본격적으로 희망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한달 전인 2002년 12월 11일, 문화유산을 민간모금으로 사들여 시민문화재로 보존하는 시민운동 모임인 사단법인‘내셔널트러스트운동’(대표 김상원)은 문화재 보전 시민공유 재산화의 첫 사업으로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생전 터전인 서울 성북구의 한옥을 매입해 시민문화재 1호로 보존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미의 전도사로 불려 온 미술 사학자 고 혜곡(兮谷)최순우 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베스트셀러 <무량수전 배 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 1984년 작고할 때까지 30년 간 집필활동을 벌였던 이 가옥은 다세대주택 개발바람이 불어 닫쳐 헐릴 위기에 처해있었다. 최순우선생의 한옥(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 126-20)은 대지 120평 규모에 안채와 사랑채 등이 들어선 1920년 조선말기의 전형적인 선비가 운치가 담긴 사대부의 전통한옥. 내셔널트러스트운동(대표 김상원)은 "이 집의 매입비는 혜곡 전집을 펴낸 바 있는 학고재의 우찬규 대표와 시민독지가 10여명으로부터 총 10억 원을 기부 받아 매입비와 내부 수리비 등에 충당했으며 내년 6월부터 기념전시관으로 활용된다"고 밝혔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본부 측은 2002 12월 5일 최순우씨 고택에서 기념식을 치른바 있다. 이 자리에서 최씨 고택 문화유산화의 실무를 맡아온 미술 사학자 김홍남교수(이화여대)는“최순우 관장 고택은 명실상부한 ‘시민문화재 1호’가 된 셈”이라고 자평했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The National Trust of Korea)(자연신탁국민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 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 및 문화유산을 확보한 후 시민 주도 하에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시민환경운동을 말한다. 번역하자면 국민신탁쯤이 되는데 일반적인 신탁행위와는 달리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관계를 초월해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환경을 보전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기부 성격의 땅의 확보라는 차별성을 지닌다. 1895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이레, 후발주자인 일본의 60년대 한차례 유행을 지나 이미 30년의 역사를 지닌 전 세계적인 시민운동이다.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조직은 영국 내 민간최대의 토지보유자로 현재 영국토지의 1.5%, 해안지역의 17%나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회원은 250만 명, 이 단체의 연간 예산이 3천억 원을 넘어가는 미국, 일본, 뉴질랜드 등 25개 선진국에서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도 마을재산으로 동네 주민들의 공동소유를 통해 자연자원을 관리하고 영구 보전하던 전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내셔날 트러스트 운동이 전파되는 것은 90년대 이후로 뜻 있는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진행되어 온 바 있다. 이에 이미 태백산 변전소 땅한 평 사기 운동과 서울 둔촌동 습지, 천리포 수목원, 해남 당두리 철새도래지, 해운대 달맞이고개, 동강 문희마을,신두리 해안사구,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강화 갯벌, 시흥 갯벌, 제주 선흘곶,광주 무등산 등 11개 지역에 대한 트러스트 활동을 벌여왔다. 2002년 5월에는 강화도의 매화마름 군락 지를 사들이기도 했으며 최근 고봉 산이 내셔널트러스트운동본부의 15번째 공식 후보지로 선정된 바 있다. 1994년 광주에서의 무등산 훼손을 막기 위한 ‘무등산 공유화운동’의 경우 시민들의 기부로 재단이 설립돼 현재도 무등산 매입과 난개발 저지를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99년 대전에서는 오정동‘외국인 선교사촌’의 훼손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1인1계좌 갖기 운동 등을 벌여 시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최근에는 용인의 난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환경정의시민연대’가 대지산 정상의 땅 100평을 구입하기도 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내셔널트러스트 성격의 시민운동들이 조용히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문화·환경유산 구입, 기부 등에 대한 사회적 인증과 세제 혜택, 시설물 보수관리와 재활용 사업 등을 규정한 `국민환경신탁법'(가칭)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땅1평 사기운동을 벌여 대상토지나 문화자산을 사들여도 현행법상 개발계획지로 지정되거나 단체내부의 갈등이 생길 경우 재 매각되거나 편법 활용되는 사태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내셔날 트러스트 김금호 간사는 “정부의 각종 제도와 법이 보호보다는 개발위주로 제정돼있기 때문에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위한 여건이 좋지 못하다”면서 “특히 기부금품모집금지법과 세법 등은 개정운동을 벌여야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김간사는 “그러나 트러스트운동은 시민차원의 절박한 환경운동이기 때문에 첫 전국대회를 계획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운동(공동대표 김성훈)’조명래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제부터는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벌어지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적인 조직 속에서 활동하자는 취지에서 전국적인 네트워크 형성, 내셔널트러스트법 제정 추진 등을 벌여나갈 것이라면서 올해, 2003년까지 동강 문희마을,신두리 사구 등을 위한 트러스트조직 건설하고, 자생적인 지방 내셔널트러스트 조직과의 연계를 만들어 나갈 것" 등의 앞으로의 구체적인 활동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2005년까지의 각 단체 인터넷 사이트를 연결해 모금캠페인과 공동운용규칙 제정 등 본격적인 전국적 활동을 벌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2006년까지 서울시 중구 정동 10-1번지 덕수궁 터(옛 경기여고)에 연건평 54,976.13㎡ 규모(지하 2층 지상 15층)의 美대사관 건물 신축·이전 이와 함께 현 美대사관저 내부에 54가구 규모의 직원 숙소용 아파트 8층과 군인숙소 4층이 신축된다고 발표되어 반미 조류에 힘을 보태며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덕수궁터 미대사관 신축반대 운동에 많은 시민단체들이 협력한 바 있지만 사단법인 내셔날트러스트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이제 '정동궁(貞洞宮)'을 복원하여야 한다면서 지난 2002년 5월 29일 오후 3시 30분부터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에서 김정동 교수님의 "정동 바로 알기" 강연회를 벌인 활동과 함께 작년 한해 서명운동과 정동내의 대한문 앞에서의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해 왔다. 이 단체가 매진 중인 문화재 보존운동 또 하나의 과제는 세계문화유산인“석굴암 살리기 운동”이다. 현재 석굴암 관광지역에는 석굴암 역사 유물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 측은 "토함산에 대형관광버스를 위한 2차선 도로와 대형주차장 설치로 본격적인 관광단지화 된 1980대부터 고요했던 암자형 석굴사가 갑자기 불어난 방문 불 신도와 관광객을 위한 운영, 관리가 요구되어 거주승려 수가 증가하고, 숙소건물, 식당건물, 기타 부속시설건물의 증가로 이어져 갔다. 석굴암 외 한 채의 건물만이 있었던 곳에 10채 정도의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서 토함산 주변 환경이 옛 모습을 잃게된 바 오래다. 현 계획 위치에 석굴암 역사유물관이 건립되면 문화유산 보존의 기본철학인“진정성(authenticity)"과 “가치(integrity)"에 정면으로 배치(背馳)되게 원형이 훼손되며 이와 동시에 함께 훼손될 주변 환경의 규모는 막대한 범위여서 한국 전통 건축의 기본 정신인‘터’가 가지는 의미를 망각한 처사로 남을 것이다. 주변의 역사적 환경이 훼손된 석굴암은 더 이상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자격도 상실하게 된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작년 8월까지 문화, 역사 학자들 164명의 서명을 접수한 바 있고 앞으로 전국적인 서명운동과 동시에 석굴암을 훼손하는 역사 유물관 건립저지 국회 청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렇게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속도'가 미덕으로 치부되면서 삭막해져만 가는 회색도시의 빠른 변화에 저항하고 옛 선조의 문화유산을 지켜가고자 한다. 문화재는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문화의 자산이며 한 번 손상되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그대로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주는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 이 단체의 문화재 보호운동의 취지이다. 앞서 제시한 내셔날트러스트의 최순우 선생 고택 매입 사례와 같이 문화재를 보전하자는 시민문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심을 벗어난 지방 지역에서의 자치적인 시민운동의 불길도 거세다. 현재 대구지역에서는 청포도의 시인 민족지사 이상화의 가치를 드높이고 그의 생전 고택(故宅)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의 물결이 전 대구시민의 단결아래 이어지고 있다. 또 젊은이들의 모임인 거리문화연대에서는 대구 남산동 일대에 보존돼있는 초가집을 시민의 힘으로 사들여 생활사박물관으로 만들자는 운동이 한창이다. 이러한 추세에서 대구 지역이 내셔날트러스트 운동 제2 지역으로 부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집은 최근 소방도로 개설 예정지로 결정됨에 따라 주변에 있는 한옥 몇 채와 함께 철거가 불가피해졌다. 도로개설이 예상돼 헐릴 운명에 처하자 지난 3월 대구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고택 매입과 문화공간으로의 개발을 골자로 한 고택보존운동이 피어올랐다. 운동본부가 보존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상화 시인의 고택은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 계산성당 옆의 한옥이다. 이상화(李相和)선생의 묵향이 남아 있는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는 대구 근현대사 100년 사의 큰 별들의 자취가 어린 역사의 성소이다.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심어 유래된 뽕나무골목에 자리한 이상화고택, 이 집 한집 건너엔 일제에 진 나라 빚을 갚자며 일어섰던 국채보상운동의 발기인 서상돈선생의 고택이 있고(계산동 2가 88번지), 바로 건너엔 상화의 맏형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상정 장군의 고택(90번지)도 밀집해 있어 가히 대구가 근대 민족 저항정신의 본향이요, 구국항일운동의 시원지임을 당당히 증명하는 터이다. 또한 이곳은 옛 청구대학 설립자와 교남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한솔 이효상 선생의 거주지였고, 이중섭.구상.오상순.이장희.백기만 등 근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 예술인들의 자취와 일화가 어린 골목이기도 하다. 운동본부측의 주장대로 이곳이야말로 근대 민족 저항정신의 본향이자 구국 항일운동의 시원지,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유적지라 할 만하다. 지난 2001년은 대구 향토저항시인 이상화탄생 100주년이었으나 대구에서는 이상화 특별전이 그의 기념관 하나 없이 치러진 바 있다. 민족시인 이상화(李相和.1901~1943)의 옛집을 보존하고 상화시비(달성공원)건립과 동상(두류공원), 묘역(화원) 등을 벨트 화하려는 오랜 계획이 여태 이곳 부지 매입 문제(시는 공시지가로 매입해야 하고, 주인은 그럴 수 없다는 입장) 때문에 제자리걸음만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상화고택 62평에 대한 매입비가 총 3억 1천만 원에 불과한데도 수년 째 이를 진척시키지 못한 상태이다. 경주시는 최근 구비와 시비 등 30여 억원을 들여서 김동리, 박목월 기념관을 짓기로 결정해 큰 대조를 보이기도 한다. 작년 1월 경북대 인문대 이상규 교수를 대표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보존 운동본부>가 발족되어, 서명운동과 함께 학술세미나와 모금운동, 일제저항시인의 유품수집 운동을 힘차게 전개해가고 있다. 고택(故宅)보존운동 측은 선언문을 통해 "이 일대 2800평을 문화유적지화해 고택도 보존하고 이상화 기념관도 건립하여 3·1만세운동과2·28민주화 정신으로 계승된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일대를 문화와 정치, 경제가 만나는 대구 시민정신의 구심점의 현장으로 보전할 것"이라고 다짐한 바 있다. 작년 8월, 서명을 주도해 온 윤순영 분도예술기획 대표와 이상규 경북대 교수를 공동상임대표로 선출하고 162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인준한 가운데 서명운동의 마무리와 함께 범시민 모금운동의 출범을 선언, 일년동안 이어진 서명운동으로 50만 시민의 서명을 수합하였다. 100여명의 각계 인사가 참석한 본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 창립총회'에서는 현재까지 9천여권의 상화 시집이 판매되고 1억 원에 가까운 성금이 모금되는 등 순수한 시민운동이 조용히 진행돼 왔다며 올해 상반기에는 이상화 학술대회와 백일장, 전시회 또는 상화 시 작곡대회 등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앞으로 이상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 공연, 음악회, 학술대회를 비롯 패션쇼까지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할 계획이다. 윤순영 공동대표는“상화고택 일대의 보존운동은 역사. 문화. 교육의 도시인 대구 시민들의 자존심이 걸린 시민운동”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모금운동의 한 방법인‘1만원에 1가정 1시집 갖기’운동 그 자체가 문화운동임을 주목해달라고 한다. 이날 집회에서는 운동본부를 토대로 모금운동 조직을 확대개편하고 이를 사단법인화해 효율적인 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는데 중론을 모았다. 대구 최초의 문화청원 제출도 병행하기로 했다. 이 일대를 대구가 자랑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개발토록 정부와 대구시에 청원하는 것이다. 고택을 포함한 땅을 매입해 앞으로 이곳에 공연장과 전시관을 포함한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운동본부의 계획이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 안에 100만인 서명운동과 10억 원 모금을 목표로 꾸준히 관련 운동을 진행 중이다. 대구 시민들의 이러한 노력의 결실의 하나로 최근 대구. 경북지역 문단 80년 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향토문학관이 개원된 바 있다. 대구광역시립 서부도서관 2층에서 개관한 대구 최초의 이 종합문학관은 87평 규모의 공간에 대구. 경북지역 대표 문인들의 문학관련 자료를 한자리에 모은 향토의 문학전문 자료관. 이장희.현진건.이상화.오일도.백기만.이육사.이호우.김동리.김성도.박목월.조지훈.정석모.이우출.박양균.이설주 등 향토를 빛낸 문인 가운데 작고한 인물 15명의 사진을 보노라면 한국 근현대사 문단의 발자취가 한 눈에 들어온다. 1월 26일까지 목우 백기만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도 연다. 이제 우리나라도 시민 자치적인 내셔널트러스트의 운동의 기반이 잡혀가려고 하는 이 시점에 이상화고택보존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이상규 교수(경북대)의 발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전통이 사라져가는 바쁘게 돌아가는 삭막한 도시문화 속에서 문화재 보호운동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대구는 기념관이 없는 도시입니다. 물질문명과 개발의 논리가 정신문화와 자존의 논리를 짓밟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포크레인의 쇠바퀴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뭉개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뿌리와 정신적 유산 또한 매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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