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재앙 확산 가능성 높아... ‘위험물질 취급업체 제대로 관리해야’

 

지난 9월 27일 경북 구미 (주)휴브글로벌에서 발생한 불산가스 유출사고로 인해 나라 전체가 떠들썩하다. 2차 피해의 확산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화학 공장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점차 커져가고 있다. 

 

(주)휴브글로벌에서 발생한 불산가스 유출 사고는 저장고로 불산을 옮기는 과정에서 작업자의 실수로 12t 가량의 불산가스가 누출되며 작업자를 포함해 다섯 명이 사망했다. 재산상 피해는 확인된 것만 열거해도 약 90억 원이 넘는다.

‘전국적으로 2차 피해자 나타날 가능성 높아’

구미 일대에서 발생한 피해도 치명적이다. 120여 ha의 농작물이 말라버렸으며 3,200여 마리의 가축에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아직 관련 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 가능할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고려한다면 피해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불산가스 누출사고에 따른 불안은 구미 지역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추석연휴를 피해지역에서 보낸 외지사람들도 적지 않아 2차 피해자가 전국에서 나타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구미시에 따르면 10월 10일 현재 불산 누출과 관련해 병원 진료를 받은 구미시민 등은 5,733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인근 공장 근로자와 공무원 등을 제외한 일반인은 1,675명으로 분석됐다.
특히 주요 피해지역인 봉산리와 임천리 주민 1,179명(봉산리 536명·임천리 643명)이 전부 진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가운데 496명은 피해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시민인 셈이다. 진료 받은 시민 대부분은 불산을 흡입했을 때 초기에 나타나는 감기 또는 발진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외에도 화학공장 피해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23일 16명이 부상을 입어 지금까지 8명이 숨진 LG화학 청주공장 폭발사고에 대한 경찰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청주흥덕경찰서는 지난 10월 3일 회사 측 시설설계, 생산, 안전부문에서 각 1명씩 모두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은 폭발이 일어난 LG화학 청주공장 내 합성동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정상 안전관리와 시설관리에 문제가 있던 것으로 확인했다.
폭발사고가 일어난 뒤 경찰은 공장의 공정이 설계와 다르게 설치돼 사고원인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해왔다. 경찰 수사 결과 LG화학 청주공장 OLED재료공장은 3층에서 일사다이옥산용제를 넣은 뒤 2층에서 생산 공정을 거친 후 1층에서 폐용제 회수방식으로 설계됐다. LG화학은 설계와 다르게 3층 용제투입, 2층 공정·회수방식으로 설비를 설치해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흥덕경찰서 관계자는 “OLED재료공장의 폐 다이옥산 회수공정이 설계와 달리 시공된 것을 확인했다”며 “향후 공장장과 그 윗선을 불러 조사할 것”이라고 밝혀 입건되는 사람이 더 늘어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입건된 실무자 이외에도 관리책임자 등 2~3명이 사법처리 대상”이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화학공장 안전관리 보완 대책 마련 시급

한편 구미 화학공장 불산가스 누출사고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경남지역에 유독물질 유출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독차가 한 대도 없는 등 화학물질 사고에 무방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아울러 유독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한 관리가 경남도와 일선 시군, 환경청으로 나눠진 데다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소방본부에는 사업장 정보가 없어 효율적인 사고 처리가 가능할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남지역 소방관서에는 유류화재 등에 대응할 수 있는 화학차는 보유하고 있지만, 구미와 같은 화학물질 유출사고 시 대응할 수 있는 제독차는 한 대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학물질을 중화하는 중화제를 탑재하고 있는 생화학 인명 구조차는 도내에서 김해소방서에 단 한 대만 있다.
도내에는 유독물질 제조업체가 24개소, 사용처 126개소, 판매업체 178개소, 운반업체 23개소, 저장업체 13개소 등이 있다. 이 중 김해지역에 제조업체와 판매업체 등 86곳이 있어 가장 많고, 창원이 62곳으로 그 다음이다.
특수차량뿐만 아니라 중화제와 제독제 등 유해화학구조 장비도 없어 화학물질 유출사고 시 초기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개인 보호 장비도 턱없이 모자라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까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창원지역의 경우 창원국가산업단지에 불산 제조업체 4곳을 포함해 유독물질 취급업체가 김해지역 다음으로 많지만, 제독차와 생화학인명구조차가 한 대도 없고 중화제, 제독제 등 제독장비 보유량이 전혀 없다. 또한 중화제를 살포할 수 있는 장비도 없다.
익명을 요구한 창원소방본부 관계자는 “유독물질 제조·판매업체 등 현황자료도 시나 도에서 갖고 있고, 우리는 구미 사고 전까지 갖고 있지 않았다”며 “50분간 사용할 수 있는 공기호흡기 외에 모든 대원들의 숫자만큼 보유하고 있는 장비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의 불산 유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안전성 또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화학공장 특성상 화재 및 폭발 사고 발생 시 위험물질 존재 여부 및 2차 폭발, 방재시스템 등에 대한 관련 기관 간 사전 정보 교류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수소방서는 여수산업단지에서 맹독성인 불산을 취급하는 대규모 공장은 A사 1곳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A사에서는 최근 두 차례 사고가 발생하면서 소방서 등 관련기관을 긴장시키고 있다.
A사는 불산 폭발에 따른 가스 누출 사고를 대비해 불산 중화제인 소석회를 300t 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수소방서도 산성인 불산을 중화시킬 수 있는 알칼리성 소석회 1t 상당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화학공장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중화제가 필요하지만 사고 초기에 어떻게 사고가 발생했는지, 어떤 물질이 유출됐는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라 향후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화학사고 등 1차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당 공장에서 어떠한 물질을 취급하는지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초기 진화가 쉽게 이뤄지지만 유관기관끼리 정보 구축과 협조체제는 잘 구축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돼 있는 국내 규제대상 물질 관리 체계의 재정비가 절실해지고 있다.
현재 국내 규제 대상 물질은 ▲유독물 ▲취급 제한물질 ▲사고대비 물질 ▲관찰 물질 ▲취급 금지 물질 등 5가지로 분류돼 있다. 구미에서 유출된 불산은 유독물질로 구분돼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또 불산 등 625종의 유독물을 취급하는 공장에 대한 허가는 시·군·구가 담당하고 있다.
한편 여수산업단지에서는 올해 9건의 사고 발생했으며 최근 3년간 한해 평균 8.6건의 사고가 났다. 여수시의 '2010~2012년 8월 여수산업단지 사고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산업단지에서 총 2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0년 9건(사망 3명·부상 5명), 2011년 8건(사망 2명·부상 11명), 2012년 9건(화상1명·부상 65명)이었다. 여수산업단지 B공장에서는 지난 6월7일 화학물질을 이송하던 중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65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어 8월22일에도 메탈 실리콘(규사) 저장 호퍼 연결부위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C공장은 지난 5월 내부압력 상승으로 인해 탱크가 파손되기도 했으며, 6월에는 대표적 유독 물질인 포스겐이 누출돼 긴급방제작업이 진행됐다. 이와 함께 몇몇 공장에서 화재 등 크고 작은 사고로 공장가동이 일시 중지 되는 등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며 정부와 국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10월 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완영 의원(새누리당)은 “고용부가 공정안전관리(PSM)제도를 적용해 위험공정에 대해 공정안전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관리해야 하는데 이러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정안전보고서는 화재·폭발·유독성 물질 누출 등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화학공장을 설립하려는 업체로부터 받는 안전관리계획서로 종업원 5인 이상 공장에만 적용된다. 공정안전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공장을 설립할 수 없지만,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를 낸 (주)휴브글로벌 구미공장은 2008년 설립 당시 종업원 수가 4명이라 공정안전보고서 제출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심상정 의원(무소속)에 따르면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하고 있는 1803개 업체 중 PSM 대상사업장으로 등록된 업체는 49개사에 불과하다. 전체 사업장의 2.7%만 관리되고 있고 나머지 97.3%는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심상정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위험물질 취급 업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이번 사고 발생의 중요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대해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종업원 수와 상관없이 위험물질 관리가 되도록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아울러 최근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한 (주)휴브글로벌에서 2009년에도 불산 누출사고가 있었던 것으로도 드러났다. 지난 10월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주)휴브글로벌에서 2009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3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이 중 2009년에 발생한 사고는 출하 탱크에서 탱크로리 차량에 고압호스를 체결하다가 접속 부위가 펌프압력에 의해 순간 분출해 얼굴과 가슴 부위에 화상을 입었다. 결국 이 노동자는 입원치료 이후 근무가 불가능해 퇴사하게 됐다.
(주)휴브글로벌은 지난해 정기안전교육도 실시하지 않았으며 불산 취급 사업장에서도 빠져 있었다. 더구나 3년 전에도 불산 유출사고가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관계 당국 책임론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한편 심상정 의원은 “이번 구미 불산 사고 발생 이후 초등학교 등 9곳은 휴교조치가 이뤄졌지만 공장은 모두 가동되고 있었다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노동자 보호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이번 사고는 불산 누출에 따른 산재사고가 이미 있었지만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결과가 빚은 참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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