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 탈피 무리수 논란

 

자산총액이 165조 9000억원(2012년 4월 기준)에 이르는 ‘공룡 공기업’ 한국전력의 김중겸 사장이 정부를 상대로 연신 초강수를 날리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 5월 정부가 두 자릿수 전기요금 인상안을 받아 주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평균 13.1%의 인상안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정부는 ‘어림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하면서 한전에 대해 5%이하로 인상하라고 권고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한전은 정부의 권고안을 받아들여 지난 8월 3일에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하기로 결정했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인상하고 하반기에 추가 인상을 노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처럼 한전이 정부를 상대로 계속 초강수를 두고 있는 배경에 대해 살펴봤다.

전격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한 ‘한전’

한전은 지난 5월에 정부가 두 자릿수 전기요금 인상안을 받아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평균 13.1%의 인상안을 요청했다. 정부는 당연히 한전의 요청을 거부했는데, 그러자 한전은 2개월 후에 오히려 총 16.8%에 달하는 인상안을 의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의 이러한 의결은 그간의 관행을 깬 것으로서 한전이 비공개로 인상안을 지식경제부에 전달하면 지식경제부가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를 거쳐 정부안을 확정하게 되고, 이를 다시 한전이 이사회를 열어 의결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한전은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지식경제부에 인상안을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한전은 정부의 방침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전기요금을 두 자릿수로 인상해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한 자료까지 내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전기요금을 인상하되 5%이하로 하라는 권고안을 제시했고, 한전은 정부의 권고안을 수용해 지난 8월 3일에 전격적으로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한전은 지난해 12월에 전기요금을 이미 평균 4.5%를 인상했고, 또 지난 8월에 4.9%를 인상함에 따라 전기요금은 평균 9.4%가 올랐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물가 안정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큰 폭으로 전기요금을 올렸기에 정부는 한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결과로 나타나게 됐다.

한전, 한국전력거래소 등에 소송제기

한전은 지난 8월 하순에 ‘전력 구매가격 부당 책정으로 말미암은 피해’를 이유로 한국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원을 대상으로 4조 4000억원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발단은 한전의 전기 구매가를 결정하는 ‘정산조정계수’ 때문인데, 한전에 따르면 국내 전력시장 운영기관인 전력거래소와 전력거래가격 결정에 필요한 발전비용을 심의·의결하는 비용평가위원의 부당하고 편향적인 업무처리로 인해 4조 4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해 소송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전력거래소는 물론 전력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까지 강하게 반발했는데, 아무리 전력거래가격 산정에 오류가 있다 해도 함께 전력공급을 담당해 온 한 식구나 다름없는 정부기관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전력거래소는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 좌절에 따른 불만을 애꿎은 정부기관에게 화풀이 하고 있다”며 “전력거래대금을 감액 지급하겠다고 한전이 통보했는데 만약 일부라도 미결제하면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고, 고의로 이를 결제하지 않는다면 이는 전력시장 질서를 해치는 심각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전력거래소 회원인 한전이 정관을 위반할 경우 이를 주도한 임원 등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고 한전에 대해서도 제재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지식경제부도 전력거래소 편을 들며 “한전이 제기하는 소송이나 전력대금 감액 조치가 전력시장 운영에 지장을 줄 경우 제재하겠다”는 경고성 공문을 한전에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한전이 전력을 비싸게 구입해 싸게 판매하는 구조로 생긴 거액의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거래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결코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 아니다”라며 “모든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며 한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김중겸, 적자탈피 위해 자회사 손 빌려 막기

한편 한전은 지난 8월에 전기요금을 전격적으로 인상한 데 이어 최근에는 주요 자회사에 지난해 순이익의 70%를 배당금으로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김중겸 한전 사장이 올해를 ‘흑자 전환 원년의 해’로 삼겠다며 만년 적자에 허덕이며 체면을 구겨온 한전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김중겸 사장은 그동안 순이익의 20~30%를 받아오던 관행을 깨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등 주요 자회사에 지난해 순이익의 무려 70%를 배당금으로 요구했다. 한전은 대부분 자회사 지분의 과반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므로 주주총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된다면 한전은 배당금만으로 약 7500억원을 얻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전이 이렇게 무리한 배당금을 요구한 배경에는 지난해 3조 51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측은 한전과 자회사 간 전력거래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이대로라면 적자가 쌓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전의 한 관계자는 “생산원가에 적정 이윤을 얹어 자회사에 사오는 전력을 국민들에게 매입가의 90% 가격에 공급하기 때문에 적자가 쌓이면 당연히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액 배당 요구를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는 방법 중 하나로 인식하길 바라고, 또 자회사들과 고통을 분담하자는 차원으로 해석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전의 이같은 요구에 자회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는데 이에 한전 자회사 노조는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고 “경영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자회사들의 성장과 미래를 말살하려 한다”며 “자회사들의 중장기 부실을 초래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리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산하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도 성명서를 내고 “모회사의 적자를 이유로 자회사의 수익을 착복한다면 노동권 말살을 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는 한전이 자회사 순이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면 해당 자회사 노동자들의 임금동결과 고용축소 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사업으로 돌파구 마련하나

김중겸 한전 사장은 수년간 한전을 짓눌러오던 적자를 벗기 위해 해외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은 현재 3%대인 한전의 해외사업 비중을 50%까지 확대할 계획인데 “이처럼 해외사업 수익을 극대화해 국내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보전하고 국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한전의 한 관계자는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한다든가 자회사 수익에 대해 고액 배당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는 당초 약속한 대로 해외사업에서 수익을 올려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없앰으로서 공기업으로서 국민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시각인 것이다.

하지만 한전은 지난해 12월과 지난 8월에 기습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여 김쌍수 전 사장이 그토록 원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해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원인이 된 전기요금 인상을 김중겸 현 사장은 전광석화처럼 이뤄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김중겸 사장이 불도저 정신이 내재돼 있는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작 3%의 해외사업 비중을 무려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현실성 있는 목표인지도 의문이 제기됐다. 한전이 비록 요르단에서 IPP(Independent Power Plant:독립발전사업)을 수주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해외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전의 한 관계자는 “김중겸 사장이 기반을 다지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한전이 해외사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할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봉윤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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