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삼성 이건희 회장 ‘130억 원 배상’ 확정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제일모직 주주대표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한 데 이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업무상 배임에 따른 손해배상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과정에 개입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는 고등법원 판결의 상고를 포기한 것인데, 그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상소를 포기한 것을 최근 삼성이 국내외적으로 대형 소송에 얽혀있고 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대기업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이번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 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는 정치권에서 최근 순환출자 제한을 비롯해 경제민주화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 회장이 큰 부담을 느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본지에서 이를 살펴봤다.

삼성, 한번도 중간에 소송 포기한 적 없어 
형사상 무죄 입증, ‘실리’ 챙겨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요구 수용
경제개혁연대 환영, “삼성 변화 주시하겠다”

이건희, 에버랜드 CB소송 상고 포기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으로 발행해 당시 에버랜드 대주주인 제일모직에 피해를 끼친 혐의로 13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제껏 삼성측이 스스로 소송을 중간에 접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 상고 포기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로써 삼성그룹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의 시발점이 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민사상으로나마 책임을 지게 됐다. 이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제일모직 주주 3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 이건희 회장측이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130억원의 배상 책임을 떠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이 상소를 포기한 배경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이 회장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인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변화의 시작으로 해석하고 싶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구고법이 삼성의 지배권 승계과정에서 이 회장과 삼성그룹 비서실이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등 조직적인 배임행위를 최종적으로 확인해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이번 이 회장의 상고 포기로 검찰·특검·법원 등은 난처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왜냐하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제일모직 등 계열사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실권 등이 배임인지 여부와 관련해 이번 판결로 민사로는 ‘업무상 배임’이 인정됐지만, 형사로는 ‘무혐의’로 남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조준웅 삼성 비자금 특검은 제일모직 등에 대한 이 회장 등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 한 바 있었고, 또 지난 2009년에도 이 회장의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 혐의 역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최종 판결은 과거 검찰과 삼성특검의 직무유기를 확인해 준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이 상고 포기한 이유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30억원이라는 거액의 배상금은 물론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오명을 쓰고도 이번에 상고를 포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삼성특검과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된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재현되는 것을 막고자 서둘러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이 회장이 ‘에버랜드 CB발행 개입’을 스스로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1995년 아버지로부터 61억원을 증여받아 삼성 계열사 주식에 투자해 550억원으로 늘린 후, 1996년에는 에버랜드 주식을 CB(전환사채) 형태로 주당 7700원(전환가격)에 인수한 바 있다.

이재용 사장은 이를 계기로 에버랜드 지분 25.1%를 확보할 수 있었고, 또한 작년 말에는 기존 최대주주인 삼성카드가 보유 지분을 처분함으로써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의 새로운 최대주주로 급부상하게 됐다.

따라서 지난 1996년 에버랜드 CB발행과 인수 과정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경영권 승계과정으로 간주되어, 장하성 고대 교수와 경제개혁연대 등이 지난 2006년에 이재용 사장에게 에버랜드 CB를 몰아주기 위해서 제일모직 등 다른 계열사가 CB를 인수하지 못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당시 특검은 이 회장이 제일모직 등 다른 계열사가 에버랜드 CB인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개입한 정황이 없다고 판단했고, 에버랜드 CB가 헐값으로 발행돼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만 인정해 기소했으나 대법원은 기소된 부분에 대해 지난 2009년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대구지법은 특검이나 대법원과는 달리 ‘이 회장이 조세를 회피하고 경영권을 이전하려는 목적으로 에버랜드의 CB발행 과정에 개입했다’는 점과 ‘당시 에버랜드 주식발행 가격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점’을 인정했는데 이 회장이 상고를 포기한 이유는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여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는 이 회장이 대구지법 2심 판결에 불복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가 패소했을 경우 ‘삼성 경영권 승계과정의 위법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재현될 소지가 높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 확산을 막고자 서둘러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의 한 관계자는 “삼성으로서는 ‘특검 수사’와 ‘대법원 무죄 판결’로 이미 모든 논란은 종결됐기 때문에 이번 대구지법 판결에 대해 상고하지 않은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최근 삼성이 애플과의 ‘특허소송전’을 전세계적으로 벌이고 있고 디스플레이 사업과 관련 LG와도 대립각을 보이는 중이며 또 이 회장의 친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주식인도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룹차원에서 부담스러운 법정다툼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이번 상고 포기의 이유로 밝혀졌다.

소송을 주도했던 경제개혁연대의 입장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주주들을 모집하여 지난 2006년부터 진행했던 제일모직 주주대표소송이 원고주주들의 최종 승소로 6년만에 마무리되었다. 이번 사건은 지난 1996년 에버랜드가 주주배정 방식의 전환사채를 발행하면서 시작됐는데 당시 에버랜드의 주주는 중앙일보, 제일모직, 이건희, 제일제당 등 이었다.

그러나 주당 7700원이라는 헐값에 전환사채를 발행하였음에도 제일제당(2.94%지분 보유)을 제외한 법인 주주들은 실권하고, 실권된 부분을 이재용 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가 인수하게 되자, 당시 이 회장이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저가 발행과 제일모직의 실권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으로 의혹을 받았다.

이에 지난 2000년 곽노현 등 법학교수 43인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을 통한 편법상속 의혹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던 것이다.

한편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제개혁연대는 “이 회장이 상고를 포기한 것에 대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인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변화의 시작으로 해석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이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희망하며 향후 삼성과 이 회장의 변화를 계속 주시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이제껏 삼성 측이 스스로 소송을 중간에 접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상고 포기는 예상치 못한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며 “하지만 대구고법이 삼성의 지배권 승계 과정에서 이 회장과 삼성그룹 비서실이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등 조직적인 배임행위를 최종적으로 확인해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삼성그룹측은 이와 관련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봉윤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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