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생활과학대(옛 가정대) 황인경 학장은 최근 학생회장 등 소속학과 학생대표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여섯 명 중 세 명이 남학생이었다. 황 학장은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남학생은 찾기도 힘들었는데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며 "여학생들 속에서 남학생들이 대표까지 맡으며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단국대 간호학과 2학년에는 이정종(20)씨를 포함해 세 명의 남학생이 있다. 지난해 12년간 이어져 온 '금남(禁男) '의 전통을 깬 동기생들이다. 이 학과에는 올해도 한 명의 남학생이 입학했다. 이씨는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시지만 여학생이 많은 학과의 남학생은 오히려 학과 안이나 사회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자랑했다. 아동학과.의류학과.식품영양학과.간호학과 등 과거에 여학생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학과에 남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대 생활과학대는 584명 중 149명이, 성균관대 생활과학부는 418명 중 128명이 남학생이다. 25%에 육박하는 수치다. '금남 원칙'이 깨지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경희대 생활과학대 아동가족전공(옛 가정학과)에는 지난해 처음 남학생 한 명이 들어왔고, 올해는 네 명이 입학했다. 남녀의 역할 구분이 사라지고, 이른바 '웰빙 바람'이라고 불리는 의.식.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한양대 의류학과 3학년 김형효(22)씨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옷을 직접 만들 정도로 옷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2학년 조현진(20)씨는 "남자가 음식 관련 공부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주변 분들은 재미있어 하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준다"고 했다. 남학생들의 증가는 학과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 생활과학대 학생회장 장윤경(21.여)씨는 "여학생들은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는 경우가 많아 남학생들이 오히려 학과 모임에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학 소비자학과의 남학생들은 2003년 축구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고려대 간호대 이평숙 교수는 "남학생들이 힘든 일을 잘 맡는 데다 소수인 만큼 더 열심히 해 여학생들도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여학생이 많은 학과에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학생은 찾기 힘들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4학년 황우상(23)씨는 "아무래도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교수님이 기억을 잘 해주시는 것 같다"며 "여학생들에 둘러싸여 공부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소수라는 점 때문인지 학과 내 남학생들끼리의 유대도 남다르다. 재학 중에는 군 복무나 취업 문제를 의논하는 모임을, 졸업 뒤에는 '남자간호사들의 모임' 등의 동아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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