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클럽서 ‘검사’ 사칭... 사기 당해, 몸과 마음 모두 잃어....

지난 1월 하순경 공군조종사와 의사를 사칭하며 22명의 여성을 농락한 ‘사기 콤비’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중 한명은 공군조종사로 행세하며 지난해 7월부터 김모(28ㆍ회사원)씨 등 8명의 여성과 결혼을 전제로 성관계를 맺고 1천300만원의 금품을 뜯어냈으며, 또 다른 한명은 의사로 행세. 14명의 여성과 결혼할 것처럼 속여 성관계를 갖고 6천800만원을 챙긴 혐의다. 이들 ‘콤비’는 여성들이 자신의 신분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공군조종사복과 의사가운을 입고 찍은 사진 등을 보여줬고, 김씨는 위조한 의대 졸업장과 의사자격증까지 활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신분 사기 행각은 종종 신문을 장식하고 있지만 요즘 강남 일대 유명 호텔나이트클럽에서는 자칭 ‘검사’, ‘변호사’, ‘의사’ 등 일명 잘나가는 직업을 사칭하는 신분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여성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구두(口頭)로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검사’ ‘변호사’ 등 가짜 명함을 사용하면서 지능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 ◆ ‘저는 XXXX지검 L 검사 입니다’ 제보자인 J(27,여)씨는 강남 벤처 회사에서 프로그램 개발을 맞고 있는 직장인이다. 종종 나이트클럽을 찾는다고 하는 그녀. 2개월 전 J씨는 친구들과 함께 스트레스 해소, 춤과 술을 즐기기 위해 강남 S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취재진이 언뜻 봐도 ‘이쁘다’ 할 정도의 외모를 갖춘 J씨는 웨이터에 끌려 수차례 부킹을 권유받았다. 그러던 중 웨이터에 이끌려 나이트클럽의 한 룸(ROOM)에 ‘혼자 왔다’고 하는 말쑥하고 점잖아 보이는 중년의 한 사내로부터 ‘검사’라는 명함을 받고, 별다른 의심 없이 옆자리에 앉아 서로를 소개하게 된다. J씨는 당시 “그 남자가 본인이 ‘xxxx지검 L모 검사’라며 나이는 35세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또 L씨가 나이트클럽을 혼자 찾은 이유에 대해 “검사라는 일이 다 그렇듯이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 혼자 생각할 것도 있다”면서 “오늘은 혼자 즐기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며 J씨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처럼 “상대방이 검사라는 직업과 호감 주는 외모에 경계심을 늦추고 안심한 것이 크나큰 실수”고 말하는 그녀는 “한번 생각해보세요. 상대방이 검사라면서 명함까지 주는데 안 믿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며 취재진에게 하소연했다. 더욱이 그 룸의 테이블에는 보통 30~40십만원 정도하는 고급 양주 2병과, 갖가지의 안주가 놓여 있었기에 그의 직업을 의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트클럽에서는 대부분 남자나 여자나 자신의 직업을 적당히 둘러댄다. 어차피 맛선 보는 자리도 아닌데 직업을 속였다고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거니와 사실 그 자리에서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라는 명함까지 J씨에게 건네주고 부킹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준수한 외모도 그의 직업을 뒷받침 했을 것이다. ◆J씨, “당시 그 남자가 매너가 너무 좋았어요”, “검사들은 다 그런가 싶었죠” J씨도 그 남자와 그날 즐겼던 시간은 부정하지 않았다. 당시 J씨는 나이트클럽을 같이 찾은 친구들을 까맣게 잊고, J씨와 건아하게 술을 마시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춤과 술을 즐겼다고 한다. “당시 그 남자가 매너가 너무 좋았어요”, “검사들은 다 그런가 싶었죠”라고 말하는 J씨는 “계속 말하다 보니 대화도 잘 통하고, 흥겹게 노는 모습에 ‘나이 차이가 별거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며 그 검사에게 점점 끌리게 되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J씨는 결국 친구들을 챙길 겨를도 없이 “검사와 2차를 나가게 됐고, 하루밤을 같이 보내게 됐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그 후로부터 J씨는 2달간 그 검사와 밀회를 나눴었다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취재진에게 말했다. 그러나 J씨는 그 검사의 실체를 알기까지 그리 얼마 걸리지 않았다. J씨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이후 L 검사와 1주일에 3,4번씩 만나면서 보통 연인처럼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면서 서로에 대해서 점점 신뢰를 쌓아갔다. 또 L 검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XXXX지검’ 근처로 종종 J씨를 불러냈으며, 게다가 최근에는 ‘혼인’이야기까지 오갔다고 한다. ◆ 잠시뿐인 핑크빛(?) 믿음 이처럼 혼인 이야기까지 오갔으니 누구든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핑크빛 믿음은 잠시뿐, J씨에 따르면 L 검사가 어느 날 갑자기 “법원 판결과 관련해 돈이 필요하다”면서 “내가 모은 돈이 있는데 좀 모자라서 그런다”라고 급전을 요구했다. J씨는 “‘법원 판결’이라는 말에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면서 은행의 온라인 송금으로 천만원을 선뜻 빌려주게 되었던 것. J씨에 따르면 돈을 빌려줄 당시 L 검사는 “잠시 지방에 다녀올 일이 있다”면서 “일이 너무 바빠 당분간 못 볼 것 같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이후 연락이 없었다고... 계속 연락이 없자 J씨는 L 검사가 혹여 ‘검사’라고 하니 ‘몸이나 상하지 않을까’ 싶어 고심하다 명함에 있는 XXXX지검으로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 J씨. 그러나 명함의 사무실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자, L 검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결번으로 처리되었던 것. 결국 J씨는 순간 ‘사기 당했다’라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린 것이다. 이후 J씨는 직접 XXXX지검을 찾아 L 검사를 알아보았으나 “그런 사람은 없다”고 관계자로부터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취재진의 확인결과 XXXX지검 의 L 검사라는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또 L 씨에 대해 좀더 알아보려고 해도 J씨가 가지고 있는 건 단순히 명함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 뿐. 결국 J씨는 검사라고 믿었던 L씨가 어떠한 사람인지도 모른 채 두달간 ‘명함‘과 러브스토리가 이루어 졌던 것이다. 현재 그녀는 L씨의 사기행각의 충격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채 사람을 만나기를 꺼려하고 있다. 그리고 한 달째 집밖 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부모님으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었다. ◆ 나이트클럽의 천태만상 이 제보를 접하고 시사신문은 제보자가 그 남자를 만났던 장소인 강남의 S나이트클럽을 찾아나서 나이트클럽의 백태를 살펴보았다. 서울 강남 S나이트클럽. 밤 10시쯤 요란한 음악 소리는 의자가 들썩일 정도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색찬란한 불빛은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모자에 선글라스를 눌러 쓴 DJ는 요란한 괴성으로 흥을 돋웠다. 그러나 이 시간은 나이트클럽이 겨우 기지개를 켤 시간. 당시 J씨도 나이트클럽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었을 것이다. 밤 11시가 가까워 오자 무대는 강렬한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고, 그 가운데 화려한 복장에 키 170㎝ 정도 돼 보이는 늘씬한 두 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대 양 옆의 대형 화면에 가장 잘 보이게 자리를 잡고 가볍게 몸만 흔들자 순식간에 남성들의 시선이 이들에게 쏠렸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오자 갑자기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웨이터들이 “저쪽 테이블이 물이 좋다”며 여성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여성들은 약간의 저항을 하다가 이내 웨이터를 따라 나들이에 나섰다. ‘부킹’이 시작된 것. 처음 자리를 찾은 여성은 성은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을 ‘아영(가명)’이라고만 소개했다. 곧바로 신상조사가 시작됐다. 26살이라는 그녀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요즘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나이트클럽은 오늘이 두 번째”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를 이끌고 온 웨이터는 “쟤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오는데 얼굴이 되니까 공짜로 들여보낸다”며 “둘이서 ‘죽이게’ 차려입고 오는데 우리끼리는 ‘2인조’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처럼 나이트클럽에서는 진실이 필요없다. 요즘사회에서는 20대 절반이 백수지만 나이트클럽을 찾는 사람들은 다들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취재진은 이날 밤 웨이터를 통해 혹시나 ‘검사’,‘변호사’,‘의사’라고 하는 손님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웨이터는 눈치 챈 듯 “그런 손님은 없다”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이날 저녁 취재진이 5~6차례 부킹에서 만난 대부분의 여성들도 자신을 ‘디자이너’ 등 일명 잘나가는 직업임을 내세우며, 남자도 자신의 직업을 적당히 둘러대기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맞선 보는 자리도 아닌데 직업을 속였다고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법도 하다. 비슷한 시각 나이트클럽 한켠에 마련돼 있는 또다른 룸. 이미 테이블 위는 엎어진 술잔들과 양주, 맥주병으로 가득했다. ‘돈 냄새’ 물씬 풍기는 5명의 남자들은 자신을 직장인이라고 소개했다. 양주 두 병을 다 비웠을 때쯤 한 남자가 홀에 나가 한 여자를 데리고 왔다. 170㎝ 정도의 키에 누가 봐도 미인형인 그녀는 “난 J나이트는 처음인데 오빠 여기서 또 만났네”라며 그 남자의 품에 바로 안겼다. 다른 사람들이 술을 먹고 즐기는 사이, 이들은 룸 안의 화장실로 사라졌다. 20분이 넘도록 화장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때 한 여자가 또 웨이터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가슴이 거의 다 드러날 정도의 아찔한 차림새의 그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여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남자의 허벅지를 더듬기 시작했다. 남자도 구태여 여자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때 한 친구가 “야, 쟤가 어떤 앤 줄 알아? 재벌 2세야. 너 같은 평민은 쳐다볼 수도 없어”라고 말했다. 술값이 100만원을 훨씬 넘게 나왔지만 이들은 ‘껌값’이라며 웨이터에게 “요즘 물 관리가 안되는 것 같다”며 “똑바로 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20대 나이트클럽의 특징 중 하나는 여성들이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이 나이트클럽은 연예인도 자주 들르는 곳으로 유명하다. 웨이터는 “어제 우리 나이트에 유명 탤런트들이 왔거든. 여자들이 아주 거기 못가서 안달이던데. 한번 들어가니까 나올 줄 몰라. 애들이 왜 이리 정신 못차리는 건지”라며 입맛을 다셨다. 그 웨이터는 또 “내가 관리하는 여성들 중에는 ‘괜찮은 남자’ 좀 소개해달라는 전화도 제법 있다”는 말에 젊은층의 백태가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 과연 외모로 판단되어지는 것인지 또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어떤 것인지 판단이 모호해 지기도 한다. 이 사건처럼 이 순간 어디선가 J씨와 같이 재산과 권력을 가지고 있을 법한 ‘명함‘을 받아본다면 한번쯤은 의심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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