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2009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논란 ‘확산’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8일 새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비롯해 국어·도덕·경제 등 4개 과목의 교과서 집필기준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교과부의 발표대로 고루 반영됐다던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 14일 민족문제연구소 등 422개 단체가 참여한 ‘친일독재 미화저지, 역사교과서 개악 저지’를 공동가치로 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는 한국언론회관에서 발족식을 열고 교과부의 집필기준 철회와 이주호 장관 퇴진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과연 어떤 내용이 시민·역사단체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는가?
2013년부터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지침역할을 하는 ‘2009개정 교육과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이승만의 독재’, ‘박정희 중심의 5·16 군사정변’, ‘5·18광주민주화 운동’,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등 독재와 민주화관련 주요 내용들이 삭제된 반면, 그 동안 학계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문구가 추가된 점을 문제시 하고 있다.

개악 저지 등 이주호 장관 퇴진 요구

현재 ‘2007개정 교육과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보면, ‘이승만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과 독재화와 관련 비판적인 점에 대한 객관적 서술’, ‘박정희 중심의 군부가 5·16군사정변을 일으켜 군사정부를 세웠다는 점’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려는 국민적 노력이 있었으나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정권 장악’ 등 역사적 사실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2007년 집필기준과 2009 집필기준을 비교해 보면, 역사적 사실과 그 가치가 많이 다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우리 국민이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을 교과부가 스스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점은 크게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독재, 독재정권과 독재화과정’, ‘민주화운동과 친일파 내용’의 삭제 그리고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라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의 내용보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 헌법전문에 담겨져 있는 대한민국의 기본 골격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먼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용어사용 부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민주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공화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관복 교과부 학교지원 국장은 “헌법정신이나 판례를 볼 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한다”며 “교과서를 집필할 때는 자유민주주의로 써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헌법전문 등 대한민국
기본 골격 무시 주장

이에 대해 오수창 교수(서울대 국사학과)는 “민주주의로 표현되는 개념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 병기하는 바람에 집필자들에게 큰 혼란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 헌법에서 수십년간 민주주의라는 단어로 국민적 합의와 동의가 이루어진 것을 자유방임주의 시장경제의 시각에 입각해 너무 쉽게 바꾼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김관복 국장은 ‘원칙’이라는 단어를 사용,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원칙이라는 단어는 상대적으로 강제성이 없는 애매한 단어이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으로 사용되는 말이 원칙이라는 단어이다. 그런 단어를 사용해 지침을 결정하는 것은 신중치 못한 언사인 것이다. 헌법은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상위의 개념이자 중심축이다. 이를 무시한 역사교과서는 있을 수 없다.
둘째, ‘독재, 독재정권과 독재화과정’에 대한 논란이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집필기준에 포함된 ‘독재화’라는 용어와 관련, “박정희 정권도 처음부터 독재를 한 게 아니고 민주주의를 하려다가 장기 집권을 통해 점차 독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시대에 사는 시민으로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자괴감까지 드는 역사관이다. 그것도 한 나라의 역사편찬을 담당하는 수장으로서 말이다. 이에 대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위원장직을 사퇴한 이익주 교수(서울시립대 국사학과)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독재정권에 대한 평가를 한쪽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특히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인사들이 지금도 살아있고, 생생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독재정권의 만행에 항거한 것에 대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민주화 운동이라고 규명을 했는데, 이를 왜곡하는 것은 지극히 편향된 역사관이자 ‘정권의 해바라기’인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셋째, ‘민주화운동과 친일파 내용’의 삭제 부분이다. 8일 발표된 2009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최종안을 보면, 2007년 집필기준에 비해 축약된 형태로 4.19민주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역사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과 기준 다수

민주항쟁 등 구체적인 민주화의 계기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삭제했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집필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 ‘대강화’하는 과정에서 자잘한 얘기는 빠졌다”며, “4.19민주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국가차원에서 사건의 명칭이 공식적으로 규정한 것들은 교과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나 전문가집단의 반발에 대한 일종의 ‘면피성’발언이다 그리고 “집필기준 재고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4.19민주혁명은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명기된 역사적 사실임과 동시에 그 중요성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 만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2세 교육과정에서 빼겠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리고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4.19민주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실들을 ‘자잘한 얘기’로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과 기준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한국의 현대사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4.19민주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은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과정으로 높게 인정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누구를 위한 집필기준인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표기 부분이다. 교과부 장관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이하 역추위)에서는 학계의 의견을 종합해 유엔의 한국정부 승인과 관련, ‘한반도의 유일한’이라는 문구 삭제를 결정했다.

교과서 집필기준,
다른 기준 제시 이유는

하지만 이주호 교과부장관은 ‘2009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확정안’에 ‘한반도의 유일한’이란 표현을 일방적으로 추가했다. 이에 대해 임종명 교수(전남대 사학과)는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부가 아니라 유엔이 인정하는 지역 안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유일한 정부로 쓰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2009 도덕교과서 집필기준’을 보면,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군사적 침략이나 파괴·전복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상호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의 공동발전을 모색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평화통일을 실현해 나가야 함을 기술한다”며 민족 화해적 관점을 제시했다.

▲ 김관복 교과부 학교지원국장

과연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다른 기준이 제시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2세에게 또 다른 혼란을 야기 시킬 것이고, 올바른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역사적 부작용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이번 ‘2009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의 2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교과서 내용이 정치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에서도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하여 철저하게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고 있는데, 지배권력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 규정이 쉽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여기에다 집필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집단들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고, 사실에 입각한 서술이 중요한데, 이 점도 무너져 버렸다.
역사교육은 왜 하는가? 단순한 질문인데 해답 또한 간단하다. 우리의 진짜 모습을 알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픈 역사, 슬픈 역사, 창피한 역사, 즐거운 역사 그리고 우리에게 있었던 모든 역사를 사실에 입각해 기록해야 한다. 좋은 역사만 기록하는 것은 왜곡이다. 평가는 우리가 아닌 우리 후손이 한다. 단순한 상식과 진리가 통하는 사회에서는 역사왜곡이 없다.
 

 

문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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