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가신용 이례적 상향 조정...한미 FTA와 모종의 연관?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발발한 경제 위기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로존 위기가 또다시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또 한 번 요동치고 국내 금융 시장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세계적인 국가신용평가사 피치가 이례적으로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전망을 상향 조정해 그 배경을 두고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여러 외신에 따르면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가 구제 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절박한 지경에 다다랐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국채 금리가 위험선인 7%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도미노 현상
남부에서 유럽중심부로 번져

국채 금리가 7%가 넘는 고공행진을 하면 이탈리아는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구제 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1월 9일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0.82%포인트 급등하면서 7.40%까지 치솟았다.
우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퇴 의사로 정치적 공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유럽 금융회사들이 자기자본 확충을 위해 위험자산을 매각하는 상황도 이탈리아 국채금리를 끌어올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채권금리의 7% 돌파로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신청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가 구제 금융을 신청하면 스페인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으며, 심지어 프랑스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자체도 문제지만 그 영향이 더욱 걱정스러운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남부유럽의 재정위기 중심부로 서서히 이동
프랑스, 독일까지 불똥 튀면 세계경제 치명적

이에 따라 유로존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자본확충 지원 방안이 구체화되고, 재정확충안 통과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리스 사태 때에는 뒷짐을 지고 관망하던 유럽중앙은행(ECB)이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한편 국제 신용평가 업체인 무디스 인베스터스 서비스는 “유럽의 재정위기가 이탈리아 같은 주요국에 타격을 줄 경우 미국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유사한 경제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1월 10일 익명을 요구한 무디스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 은행 간 자금 시장은 일부 은행들이 그리스 국채 손실 상각 등을 대비해 대출을 줄이는 정도의 긴축에 불과했다”면서 “위기가 더 악화하고 이탈리아까지 파국으로 치달으면 미국 금융시스템까지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한 영향은 주로 은행시스템을 통해 나타날 것”이라며 “이는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파장과 유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같은 문제는 미국은행이 보유한 그리스나 이탈리아 채권 자체보다는 국제 자금 시장 경색으로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유럽발 위기는 한국도 영향에서 비껴나갈 수 없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들이 외채 절반 이상을 서유럽 금융기관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만큼 유럽 재정위기에서 자유롭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지난 11월 10일 진행된 ‘유로화 위기와 우리의 정책과제’ 세미나에서 강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팀장은 “국내은행들이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국내 외채의 절반 이상을 서유럽 금융 기관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럽 국가 신용등급 강등
경제 ‘빨간불’ 켜지자 등급 ‘주르륵’

이처럼 유럽의 재정 위기가 날로 심각해져가는 가운데 올해 들어 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 건수가 무려 아시아의 5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1월 3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피치가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건수는 59건, 상향 조정한 건수는 26건이었다.
대륙별로는 재정위기가 불거진 유럽의 국가들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3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프리카 10건 ▲아시아 7건 ▲아메리카 5건 ▲오세아니아 2건 등으로 나타났다.
유럽 국가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하반기 들어 그리스의 과다부채 문제가 유럽 전체를 강타하면서 집중됐다. 먼저 그리스는 5월과 7월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강등되는 등 10개월 동안 모두 11번 하향 조정을 받았다. 무디스와 S&P는 9단계 내렸고, 피치는 7단계를 강등했다.
이어 그리스 부채문제가 이탈리아·스페인 등 주변국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지자 이들 나라 역시 신용등급 하락의 철퇴를 맞았다. 3대 신용평가사 모두 지난달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내렸으며 무디스와 피치는 이탈리아의 신용등급까지 강등했다.

재정위기의 연쇄현상 가운데 유럽국가들 신용등급 하락
한국 신용등급 상향...좋아졌나, 한미FTA 위한 ‘꼼수’인가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국내 금융 전문가는 “유럽에서 신용등급이 떨어질 만한 나라는 거의 다 떨어진 만큼 앞으로 가장 주목해야 나라는 프랑스”라며 “프랑스마저 강등된다면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세계적인 국가신용평가사 피치가 이례적으로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한 단계 상향조정했다. 이는 1년 안에 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피치는 지난 9월 27일부터 사흘간 신용등급평가를 위한 연례협의차 국내에 들린 바 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1월 7일 피치는 등급위원회를 열고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한 단계 올렸다고 밝혔다. 신용등급은 A+로 유지했다. 피치가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올리면 지난해 4월 무디스에 이어 외환위기 수준으로 회복되는 셈이다. S&P는 여전히 두 단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피치사는 글로벌금융위기가 확산되던 지난 2008년 11월에 우리나라의 등급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 후 9개월여 만인 2009년 9월에 ‘안정적’으로 되돌려놨고 2년 2개월 만에 추가로 상향조정했다.
피치사는 재정건전성, 대외건전성, 빠른 경제회복력을 등급 상향 이유로 제시하면서 “재정의 건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경우엔 등급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가계부채 문제·높은 대외의존도·너무 많은 외채 만기도래액을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피치는 “이런 위험요인들에 잘 대처하면 신용등급 상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피치는 한국 신용등급이 경제 펀더멘털보다 낮게 평가되는 요인인 대북 리스크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전쟁의 발발이나 북한 체제의 갑작스런 붕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이렇게 피치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전망을 한 단계 상향조정한데 대해 일각에서는 “향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가 통과한 뒤 행보를 미리 준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국 신용등급 상향조정
한미 FTA 통과 후 대비?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서울사무소 관계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비준되면 한국 신용평가업 진입 요건이 완화된다”며 “그렇게 되면 진입 비용이 줄어들어 한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당장 한국시장 진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긍정적인 검토의 소지가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상당수 신용평가 시장 전문가들은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되면 미국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시장에 들어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피치도 예외는 아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피치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전망을 상향조정한 배경으로는 한미 FTA 비준안이 무사히 통과하기 위한 일종의 서전 정지 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지난 11월 9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가진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공화당과 민주당 간 갈등이, 그리스 사태 장기화는 독일과 프랑스 간 견해차가 일조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면 피치가 우리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상향조정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재정과 대내외 건전성을 제고했던 우리의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박 장관은 “글로벌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새삼 정부와 정치권의 문제 해결 능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와 예산안 심의와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이 현안을 타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범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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