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불교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제는 대중 속으로..

자연을 통해 나를 찾을 수 있는 곳 - 그곳으로 가고 싶다 신록의 푸르름이 더해가고 삶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지는 날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자연과 쉼이 어우러진 곳, 때로는 마음속 깊이가 묻어나는 정감어린 자리. 도심 속에서 탈출하고픈 현대인 누구나 한번쯤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할 것이다. 여기서 자유는 육체적인 편안함과 더불어 정신적인 여유로움까지 포함한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말할지도 모른다. 근교의 산을 찾기도 하고 바닷가모래밭을 걸어도 보지만 무엇인가를 찾고자하는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삭막한 현대인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줄 그 무엇. 어쩌면 그 해답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자기수양이 아닐까?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문화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비”와 해탈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위하여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득도의 길의 중심에는 명승과 대찰이 있다. 그중 하나인 양산에 위치한 통도사. 그곳에서 나를 찾는 첫발을 내딛는다. 양산 통도사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승려들만의 고적한 사찰에서 벗어나 중생들을 향한 휴식과 깨달음의 자리를 제공하는 통도사는 빼어난 주변경치와 더불어 곳곳에 살아 숨 쉬는 문화유적들의 보고(寶庫)로 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석가의 마음을 배우게 된다. 우리나라의 3대 사찰 중 으뜸인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국지대찰’, ‘불지종가’라 써있는 현판을 보면서 지난세월동안 지켜온 고찰의 면모를 보는듯했다. 언뜻 보면 속세를 향해 열려있어 그 색깔을 잃은듯하나 자세히 보면 스스로의 자태와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 숨쉬듯 웃고 있는 통도사. 통도사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속세와 열반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소리 없이 행하고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속세에 태어난 순간부터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 시대의 현인을 만났다. 나뭇잎 비치는 조용한 방에서 맛이 한껏 우러난 오미자차를 앞에 두고 만난 통도사주지 현문스님을 통해 깨달음을 나누어 갖는 시간을 가졌다. 국지대찰(國之大刹), 불지종가(佛之宗家) - 양산 통도사 통도사는 신라시대 진골출신인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통도사 터는 구룡지라 불리던곳으로 옛날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자리다. 여덟 마리는 하늘로 승천했으나 한 마리 용은 미처 승천하지 못해 법당 옆에 있는 못에 살면서 통도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또한 통도사는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한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통해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불린다. 통도사는 숲에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듯 승려들이 이 곳에 모여 진리를 탐구하고 있어. 영축총림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는 5군데의 총림이 있는데 총림 법에 의하면 ‘승가대학’, ‘선원’, ‘율원’, ‘염불원’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데 승가대학은 경전을 토대로 연구하는 기관으로 4년의 과정으로 영어, 컴퓨터 등 실용학문뿐만 아니라 외래 강사를 초빙하여 교육하고 있고 율원은 상위기관으로 계율 및 제도를 연구하는 기관이며, 선원은 참선을 통해 수행을 하는 곳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찾는 곳’이다. 피장부(彼丈夫) 아장부(我丈夫)라 하여 ‘부처도 장부요 나도 장부’이기 때문에 깨달음을 통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현문스님. 한때는 “내전인 경전 외에 외전을 보게 되면 혼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사회를 알아야만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다.”며 포교활동의 시대적 변화를 강조하는 주지스님의 눈빛에서 시대와 함께하는 불교의 역할을 볼 수 있었다. 정신적 문화유산의 중심에 서있는 불교문화 흔히들 불교하면 ‘윤회사상’을 떠올리게 된다. 과거․현재․미래를 윤회의 삼사라고 하는데 윤회는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세상에서 열반을 추구해야하고 인과설에 따르면 지금 사는 모습이 바로 전생인데,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현재에 기반이 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진리를 깨달아 ‘부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최상의 길이다”라고 말하는 주지스님은 오늘날 불교는 대중 속에서 살아 숨쉬는 불교로 깊은 산속에 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하는 일상에 도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울러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 있다. ‘진신사리’는 불가 정신의 핵심이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혜인사의 ‘법지종가’나, 역대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의 ‘승지종가’에 비해 으뜸으로 여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또 사리탑은 부처님의 진골을 모신 곳으로 ‘불지종가’는 부처님이 직접 계신 곳으로 불상이 필요치 않다. 승려들은 득도를 위해 고행의 길을 감수하지만 실생활 면에서는 오히려 불편함을 최소화한다. 예를 들면 삭발하여 머리단장에 쓰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며, 누더기 옷을 입음으로 옷의 노예가 되는 폐행을 없앤 것이다. “좋은 옷을 입으면 옷이 상할까 신경을 씀으로 마음 보다는 몸이 중심이 되는데, 마음을 운영할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선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려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들이다. “속세는 현재 급증하는 이혼율과 자살률 등 경제 불황으로 인한 사회적문제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라는 기자의 질문에 주지스님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당당함’이 필요하다고 말로 화두를 열고 “생각의 차이에 있어 부정적인 생각은 상대적으로 자괴심이나 불안감을 안겨주고 창밖에 잎새를 보더라도 긍정적인 마음은 희망과 생명을 보지만 부정적인 마음은 외로움과 그 뒤의 앙상함을 보게 된다. ‘당당함이 있다면 그런 비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목숨 또한 자기 것이 아니기에 자살은 끝이 아니라 죄의 시작이다. 삶에 있어 극락과 지옥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산중 불교의 한계를 뛰어넘이 이제는 대중속으로.. 통도사는 주변의 4대 광역시와 1시간 거리에 위치해있다. 매주 법회가 있으며 정초 기도법회부터 시작하여 연말 2만5천명이 모이는 화엄경 법회까지 연중으로 행사가 있다. 과거의 사찰들의 불교가 ‘받아들이는 불교’였다면 현재불교는 ‘베풀어 돌려주는’방향으로 전환 되어 가는 중 이라고 말하는 현문스님은 통도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 환원 프로그램에 대하여 설명해나갔다. 현재 통도사는 유치원 및 양로원과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 등 20여개에 이르는 해외 포교당을 설립하여 포교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면서 앞으로 진행될 여러 가지 프로그램역시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대중 불교 사상이 주류를 이룰 것 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산불로 인한 불교문화재 소실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통도사는 소방접근의 용이성과 시설 면에서 주요 사찰 중에 최고라고 평가하고 종무소 회의시 “사고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나아가 예방만한방어는 없다고 말했다. 주지스님의 열려진 생각 가운데는 21세기를 지향하는 문화대국의 꿈이 스며있었다. 산업화의 속도가 더뎌지면서 이제는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한 나라가 강대국이며 다양한 문화를 잘 가꾸고 보존한 나라가 향후 21세기의 중심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현문스님. 올해 부산에서는 APEC정상회의가 개최된다. 과연 우리가 외국의 정상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지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한다는 현문스님의 말속에서 불교가 열려있는 종교로 자리잡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개발보다 자연보호를 통한 문화유산의 보존에 보다 높은 관심을 가지는 것도 우리의 문화를 지키는 일 중의 하나라면서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는 길은 정치와 경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식에서부터 시작됨을 강조했다. ‘나보다 남을 우선 하는 마음’즉 선타후아(先他後我)의 마음을 가질 때 마음으로부터 부강한 나라의 꿈은 돋아난 것이다. 앞으로 국내외 기관 및 단체들이 1년 내내 사찰체험을 할 수 있도록 수련원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는 주지스님은 언젠가 민간단체의 사장으로부터 말단 간부까지 3보1배로 행진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꼭 이렇게 절을 해야 하나?’했던 사람들이 사리탑 앞에서 마지막으로 회향할 때는 모두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도 사무실 책상에는 그때의 사진들을 끼워 놓고 보면 힘들 때 많은 위로가 된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 날의 흐뭇한 사연들이 주지스님의 귀에 잔잔히 들려온다. 통도사는 뒤로 비치는 석양에 그림 같은 자태로 세월을 인내하고 있다. 있고 없음이 서로 공존 하는 시대. 오늘도 석가모니의 마음을 들고 세상 밖으로 3보1배의 여행을 떠난다. 기자: 이동근/김영대 사진기자: 황무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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