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정책 등 MB노믹스 차질, 4대강 사업 등도 흔들

‘직접’말한 적 없지만 ‘오세훈 승부수’ 뒷심 실어줘
일각, “오세훈 주민투표 패배 여파, 레임덕 가속화”


이명박 대통령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정치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됐다. 오 시장의 ‘승부수’였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 대통령이 은연중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공식적 발언은 없었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측근들의 전언을 통해 이 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알려졌던 바다. 이에 유효 투표율미달로 ‘무산’된 주민투표와 관련, 한쪽 발을 들여놓은 이 대통령도 이번 파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오 시장의 승리로 결론, MB정부의 감세정책 등 MB 노믹스가 탄력 받고, 4대강 사업 등도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장미빛 구상’은 ‘한 여름밤의 꿈’에 그쳤다.

깨고 나니 ‘악몽’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 오 시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한배를 탄 처지다. 이 대통령은 무상급식에 반대표를 던져왔다. 이러한 이 대통령의 생각은 측근들의 전언을 통해 전해졌으며, 지난 11일에는 “이번 투표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했다는 말이 새어나오기까지 했다.

무상급식을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보고 이번 투표를 통해 정치권에 일침을 가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정치권의 경쟁적인 복지 포퓰리즘이 국가 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며 “잘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지를 제공하느라,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갈 복지를 제대로 못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고 하는 등 평소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그는 지난 18일 부재자 투표로 주민투표에 참여한 후 “내가 서울 시민이고, 투표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큰 권리이자 의무”라는 말로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등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 오 시장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 역력했다.

청와대는 이 이 대통령이 무상급식 투표와 관련, 어떠한 발언도 한 적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에 대한 부재자 투표 참여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에 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B-吳, 한배 탔다
 
그러나 주민투표에 대한 이 대통령의 두드러진 행보는 무상급식의 ‘복지’와 ‘MB노믹스’가 연계, 일각에서 ‘오세훈 심판’과 함께 ‘MB심판’까지 제기되는 등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오 시장 뿐 아니라 이 대통령까지 민심의 심판대에 올리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난 24일 오후 8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최종 투표율 25.7%로 마무리됐다. 투표율 미달로 개표조차 무산된 채였다.

이에 따라 이번 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내거는 등 '배수의 진'을 쳤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처지가 곤궁해졌다.

오 시장은 2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의 거취로 인한 정치권의 논란과 행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즉각적인 사퇴로 저의 책임을 다하겠다”며 시장직에서 즉각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어 “과잉복지는 반드시 증세를 가져오거나 미래세대에 무거운 빚을 지운다”며 “사퇴를 계기로 과잉복지에 대한 토론은 더욱 치열하고 심도 있게 전개되길 바란다”고 했다.

오 시장의 사퇴에 따라 그가 추진해오던 서해뱃길,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등 주요 정책들도 길을 잃게 됐다.

주민투표의 후폭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대통령의 발치까지 달려가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이 대통령의 ‘책임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경제·복지정책 등 타격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이 이번 주민투표 과정에서 오 시장에 대해 간접적인 지지의사를 보인 것과 관련, “이 대통령도 일정한 책임을 지셔야 되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담담하게 국민 앞에 사과하고, 지금부터 국정의 쇄신, 대대적인 전환 등을 선언하는 것이 레임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은 특히 지난 23일 박형준 청와대 특보가 ‘지자체가 정책을 놓고 주민투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박 특보의 입을 통해서 대통령의 뜻이 오 시장의 뜻과 같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되면서 대통령의 정치적 도덕적인 책임 논란이 일어나게 됐다”며 “애초에 지자체 정책 문제였다면 중앙정부나 대통령이 그냥 엄정 중립을 지켰으면 됐다. 그런데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서 판을 키웠고 심지어는 이념 논쟁까지 몰고 와서 여당과 정권이 스스로 논란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당장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수 있지만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서 대통령의 국정 장
악력, 지지도, 이런 것들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권도 주민투표 패배로 이 대통령의 경제·복지정책 등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레임덕이 가시화되는 것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험한 살길 ‘이제 시작’

청와대는 24일 주민투표 결과에 대해 “투표율이 25.7%로 개함 요건(투표율 33.3%)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내용적으로 선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투표율 25%를 넘어 사실상 승리한 것”이라던 홍준표 대표의 발언과 대소동이하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임기 말을 향해 가고 있는데다 오 시장의 사퇴로 치러지게 된 10.26 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거치면서 국정장악력이 급격히 소진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개각’을 정국 반전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총선 일정 등으로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짐을 싸야 하는데다 남북관계의 상황 변화 등으로 4~5개 부처 장관을 교체해야 할 상황인 것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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