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보선’ 부담, 선거 지휘하고 패하면 ‘박근혜 대세론’ 흔들

지지율 하락에 ‘박근혜 책임론’ 대두로 유탄 맞아
“보선 지원하고 승리하면, 수도권 친박세력 넓히는 계기”관측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여파가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오 시장이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데다 시장직까지 내 걸면서 판이 커졌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던 한나라당은 오 시장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후폭풍에 휘말릴까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용히 미소를 짓는 이들이 있다. 바로 여권의 차기 잠룡들. 그러나 여당의 강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오세훈 쇼크’에 유탄을 맞게 됐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데다, 한나라당내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복지 포퓰리즘’을 막아설 ‘최후의 전선’으로 여겼던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패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당내 일각의 불만의 목소리에도 불구,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난 모르는 일이요”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남몰래 웃는 이들이 있다. 차기 대권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라이벌들이 그렇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는 초반에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야권과의 전면전 양상으로 흘러갔던 ‘복지 전쟁’에서 날아든 눈 먼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오 시장이 이번 투표와 관련, 공을 들였던 것 중 하나가 박 전 대표의 도움이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이자 거물 정치인인 박 전 대표를 ‘천군만마’에 해당하는 지원군으로 얻고자 한 것이다.

오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도 사실상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차기 대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의중을 전달하며 박 전 대표의 도움을 청했던 것.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지난달 19일 대구를 방문했을 때 “무상급식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사정과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정과 형편에 맞춰서 해야 한다”고 했던 것 이상의 말은 전하지 않았다. 거듭되는 질문에도 “제 입장을 이미 말씀드렸다”고만 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직전까지 박 전 대표의 ‘거리두기’는 계속됐다. 투표 하루 전날인 23일 차기 대선 불출마 선언에 이어 서울시장직까지 내건 오 시장의 초강수에도 불구,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인 것.

“오세훈에 불만 표출”

박 전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자체 마다 사정이 다르니 여기에 맞춰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내일 주민투표일이니 서울시민께서 이것을 판단하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건데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정치권은 이 같은 박 전 대표의 태도를 오 시장의 ‘SOS 요청’에도 불구,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특히 계속된 ‘거리두기’와 오 시장과 관련된 발언을 피하는 모습에서는 오 시장에 대한 불만이 읽히기도 했다.

실제 이번 사안에 대해 말을 아낀 박 전 대표와 달리 친박계가 오 시장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중앙당이 지금이라도 (주민투표와) 거리를 둬야 한다”며 오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와 친박계가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거리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친박계는 “주민투표에서 지면 지는 대로, 이기면 이기는 대로 한나라당이 상당히 곤란한 위치에 처할 것”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도 “박 전 대표의 지역구가 초등학교 6개 학년에 걸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안상수 전 대표의 지역구인 과천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초등학교 6개 학년을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등 한나라당 출신의 단체장들이 광역 단체이건 기초단체이건 관계없이 아주 많은 곳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2개 학년 혹은 4개 학년 혹은 6개 학년 또 때로는 중학교 일부까지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며 “만약에 서울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뒤집는다면, 전국적으로도 일관성이 없는 그런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은 “또 한 편에서는 박 전 대표가 최근 복지와 관련해서 주안점을 두고 정책 구상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취한 태도가 아니까”라며 박 전 대표가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끝까지 거리를 유지한 이유를 추측했다.

곁에서 터진 폭탄

하지만 오 시장과 한나라당 안팎에서 이번 주민투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요청했던 터라 그도 주민투표 패배의 충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친이계 일각에서 ‘박근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주민투표에 한나라당이 보수층의 총 결집을 유도했던 만큼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박 전 대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이에 친박계도 “기대에 대해서 매 사안마다 응하는 것이 맞는지. 더구나 책임론 얘기하는데, 행동 안 한 것도 책임져야 하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오 시장 사퇴로 인해 치러지게 되는 ‘10월 보선’도 박 전 대표에게는 부담이다. 이번 보선에서 차기 유력 후보인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1년 넘게 남겨둔 시점에서 박 전 대표가 조기에 등판해 선거를 지휘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보선에서 승리하면 다행이지만, 패배할 경우 ‘박근혜 대세론’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로 인해 박 전 대표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서울시장 보선’ 당내 유력 후보군으로 뽑히는 나경원 최고위원과의 관계도 문제다. 나 최고위원은 “주민투표에서, 박 전 대표가 오 시장을 돕지 않는다”며 박 전 대표에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따라서 나 최고위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게 되면, 박 전 대표가 보선에 적극 나서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반전의 기회도?

이와 관련, 한 정치전문가는 “박 전 대표도 주민투표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오 시장이 투표에서 이겼다면 ‘복지 포퓰리즘’을 막아선 ‘보수의 영웅’으로 취급받았을 것이고, 본인이 직접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도 친이계 차기 대선주자들에 대한 지원으로 박 전 대표를 흔들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오 시장의 사퇴로 치러질 서울시장 재보선에 지원을 하느냐의 여부도 박 전 대표를 고민스럽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오 시장이 투표에서 패하면서 한나라당은 수도권 텃밭을 함께 잃는 꼴이 됐지만, 내년 총선까지 멀리 본다면 친이계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수도권에서 박 전 대표의 세가 강해 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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