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가출해 같이 살자”라는 글 수두룩

친구소개-인터넷 통해 4~5명 뭉쳐 ‘가출팸’ 만들고 살아
생활비 위해 알바 하지만 그만두기 일쑤, ‘범죄유혹’ 커져
가출여학생의 경우 ‘잠자리 제공’ 유혹에 성폭행 당하기도
청소년시설 확대, 청소년 범죄 노출로부터 차단할 수 있어

청소년 가출 문제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가출 청소년들끼리 가족을 이루어 생활하는 이른바 ‘가출팸’(가출 패밀리의 줄임말)이 확산되고 있다. ‘가출팸’이란 가출한 청소년들이 친구소개나 인터넷을 통해 4~5명이 만나 가족을 이루고 사는 형태를 말한다.

이들이 이렇게 가출팸을 하는 이유는 바로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다. 하지만 성매매라든지 폭행, 절도 등 성인들만의 범죄로 여겨졌던 폐해가 가출청소년은 물론 가출팸을 구성한 청소년에게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어 적극적인 대안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 7월 17일 위장취업해 금품을 훔쳐온 10대가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포항남부경찰서는 6일 편의점만 골라 위장취업한 후 금품을 훔친 김(17)군등 2명에 대해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군(17)은 경주시 신평동에 있는 편의점에 위장취업한 후 지난 5월 15일 12시께 편의점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이모군 등 3명과 함께 현금 등 127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다.

이에 앞서 김군 등은 지난 5월 11일에도 포항시 남구 상도동에 있는 F편의점에서 같은 수법으로 113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가출해 만난 친구사이로 생활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군은 위장취업을 위해 여장을 하고 자신의 누나 신분증을 위조하는 등 치밀한 범행수법을 보였다.

밤거리 배회 가출 청소년 20만명

이처럼 가출청소년의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 현재 밤거리를 배회하는 가출 청소년이 20만 명에 이르고, 매년 신고되는 가출 청소년은 2만 명을 넘는다. 청소년의 가출은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고, 폭력과 범죄 등 비행으로 이어져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 중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났다. 바로 ‘가출팸’이다.

가출팸은 가출을 할 때나 하고나서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경우를 말하며 이렇게 가족이 되면 서로간에 유대감이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많은 가출 청소년들이 최근 선호하는 추세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4~5명이서 가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에 맞는 경우 가출을 감행한다. 인터넷에 보면 가출팸을 구성하자는 글들이 수두룩하게 많다. 한 인터넷 게시글에는 “15세 여학생인데 같이 살 가출한 친구를 찾는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인터넷 메일 주소를 올려놓는다. 또다른 게시글에는 “가족처럼 지내보려고 한다. 되도록 남자여자 가지지 않는다”며 전화번호와 메신져 주소를 그대로 올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구성된 것이 바로 가출팸이다. 이들의 주요 생활처는 모델과 고시텔 그리고 월세방이다.

이런 가운데 가출 청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비 마련이다. 생활비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잠자리 비용과 유흥비다. 하지만 이들 청소년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때문에 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청소년 쉼터에서 생활하는 일부 가출 청소년들의 경우 앵벌이, 뻑치기, 삥 뜯기, 아리랑치기, 소매치기, 절도, 차털이 등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전단지 돌리기나 배달 등의 아르바이트에 나서기도 하지만 돈이 적기 때문에 쉽게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절도부터 폭행까지 다양해지는 범죄

이 때문에 가출 청소년들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에는 가벼운 범죄부터 시작한다. 실제 편의점에서 컵라면 등을 훔친 가출 청소년들이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 있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3월 9일 김모(17)군과 강모(18)군 등 3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검거하는 한편, 이들의 신당동 숙소에서 공갈 혐의로 지명수배중이던 김모(18)군도 붙잡아 관할 경찰서에 이송했다. 경찰은 또 숙소에서 발견된 가출 청소년 김모양 등 5명은 보호자에게 인계하고, 나머지 3명은 청소년 쉼터에 보호 조치시키기도 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사건도 있다. 경기도 안산상록경찰서는 2월 21일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강도상해) 등으로 정모(16)군 등 가출 청소년 2명을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군 등은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2시35분께 안산시 본오동 한 도로에서 타고 가던 택시의 운전기사 양모(50)씨를 폭행하고 현금 66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3일부터 약 2주간 수도권일대에서 택시강도(3회)와 퍽치기(2회), 입원실털이(2회) 등 9차례에 걸쳐 7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지난해 11~12월 가출 후 수원역일대에서 만나 알게된 사이로 찜질방이나 PC방, 모델 등을 전전하며 생활해왔으며, 생활비와 유흥비를 마련하고자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출여학생은 범죄 표적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잠자리 제공’에 속아 성폭행을 당하거나, 또 팸 안에서 문란한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런데 여학생들의 경우 범죄의 유혹도 있지만 오히려 성폭력 등에 의한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범죄가 최근에 벌어졌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10대 청소년을 번갈아 성폭행해 임신까지 시킨 부자(父子)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가출 청소년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아버지 정모(42)씨와 아들 정모(18)군을 구속했다고 4월 2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부자는 지난해 12월 초 채팅을 통해 알게 된 김모(17)양을 서울 강서구 공항동의 한 지하철역으로 유인해 술을 마시게 한 뒤 김양이 정신을 잃자 인근 공사장의 컨테이너 박스로 데리고 가 번갈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가출한 김양이 돌아갈 거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후에도 20여일간 김양과 이 컨테이너 박스 등에서 함께 지내며 여러 차례 성폭행을 했으며 김양은 이들의 범행으로 임신해 낙태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 정씨는 일정한 거처가 없어 아들 정군과 함께 공사장을 옮겨다니며 생활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나이를 속여가면서 가출 여학생을 노리는 범죄도 있다. 경기 의정정부경찰서는 인터넷 채팅방에서 나이를 속인 뒤 10대 가출 여학생을 모텔로 유인, 술인 먹여 성폭행한 정모(31)씨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6월 21일 밝혔다.

경찰은 또 같은 방법으로 다른 여학생을 유인한 뒤 모텔 인근 노래방에서 성추행한 김모(32)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등은 지난 5월1일 오전 1시께 경기 화성시 M펜션에서 인터넷 B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H(15)양에게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한 혐의다.

김씨 역시 같은 시간 M펜션 인근 노래방에서 L(15)양의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사전에 알아 둔 청소년의 인적사항으로 해당 사이트에 접속한 뒤 가출 여학생들을 유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정씨는 김씨가 운영하고 있는 당구장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피해 여학생의 속옷에서 동일 수법 전력이 있던 정씨의 DNA가 나오면서 덜미가 잡혔다.

가출 청소년들이 한 번 성폭행을 당하게 되면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부모와 학교로부터 가출에 대한 징계를 두려워 해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있는 실정. 실제로 경찰이 성폭행을 당한 가출 청소년들의 신고를 접수하고 성범죄자를 검거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팸 통해 흡연 본드 흡입 경험

가출청소년들은 ‘팸’을 통해 흡연, 음주, 성관계, 본드 흡입 등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된다. 실제 경찰에 따르면 서울에서 가출팸을 구송한 김모양 등은 지난해 8월 중.고교 자퇴와 동시에 가출한 뒤 10월 중순께 서울 용산구 보광동 자취방에서 공업용 본드를 비닐봉지에 넣고 흡입하는 등 상습적으로 본드를 흡입해 경찰에 잡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가출팸을 구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소년쉼터협의회 연구원이 쉼터 내 가출청소년 9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 가출청소년 가운데 160명(17.6%)이 가출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팸 구성 후에는 절반 가까운 43.6%가 모텔에서 생활한 것으로 나타났고, 가출팸 생활 도중 혼숙을 했다는 청소년이 무려 53.7%에 달했다.

가출팸 경험 청소년들은 평균 9.1회 가출팸에 속한 경험이 있었다. ‘아는 친구를 통해’(67.1%) 가출팸을 구성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버디버디 등 채팅사이트’(11.8%), ‘아르바이트 동료’(8.6%), ‘가출 관련 카페’(7.9%)에서도 가출팸이 구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팸을 찾는 이유로는 ‘혼자서 생활하면 외롭기 때문’(49.7%), ‘여럿이 생활하면 생활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23.8%), ‘혼자서 생활하면 위험하기 때문’(12.6%) 등으로 조사됐다.

가출팸에서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가출팸 생활 애로사항으로 ‘아플 때’,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어려울 때’, ‘절도·성매매 등 비행 강요’ ‘성폭행·신체적 폭행을 당할 때’ 등을 꼽았다.

그렇다면 가출팸을 만들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가출 청소년 쉼터는 전국 83곳에 이른다. 쉼터에 들어오면 지역사회 내 청소년 상담기관이나 의료기관 등과 연계해 정서적 지원, 의료 지원, 자립을 위한 학업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올해부터 가출 청소년에 대한 초기 개입을 위해 이들이 배회하는 거리로 찾아가 지원하는 ‘아웃 리치(out-reach)’ 전담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 보호와 지원만으로는 가출 청소년에게 빈곤과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출 청소년의 장기적인 자립을 위한 적극적인 학업 및 생활 지원이 필요하다.

가출초기가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

시민사회에 뿌리를 둔 자발적 지원도 필요하다.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1388 청소년지원단’은 지역사회 내 위기청소년의 발견 및 보호 지원을 위해 교사, 약사, 택시운전사, PC방 사장 등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조직이다. 상담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880명의 청소년 동반자가 위기청소년과 1대1로 맺어져 최대 6개월까지 청소년의 정서적인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나 지원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가출 초기가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청소년은 충동적으로 가출을 결정하기 때문에 가출 초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시설 확대가 청소년들을 범죄 노출로부터 차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가출팸을 구성한 청소년들의 경우 시설이용이 드물기 때문에 이런 보호를 받기가 힘든 실정이다.

청소년쉼터 상담 전문가는 “가출팸을 구성하는 청소년들의 경우 쉼터의 이용이 많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지낼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경우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이런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을 당한 가출 청소년들이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는 것도 재발 방지를 위한 중요한 요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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