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거치면서 금융기관 문 좁아져…고금리 대부업 늘어

금융위기 거치면서 금융기관 문 좁아져…고금리 대부업 늘어
금융위원회, 불법 사채시장 규모, 16조5000억원 선으로 추정
거대 대부업체들도 공공연히 ‘협박’ 등 불법 추심행위 자행해
‘자살·도망’보다는 증거자료 잘 모으고, 차분히 법적 대응해야

지난 2007년 사채 빚 독촉에 시달리던 23세의 대학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인터넷 대부업체에서 200만원을 빌렸다가 갚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꽃다운 청춘이 고작 200만원의 사채 빚 때문에 날아간 것이다. 지난 2010년 7월경에는 사채 빚에 시달리던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이 연달아 목숨을 끊기도 했다. 대부업체와 사채업자의 빚 독촉이 얼마나 심하기에 채무자의 자살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피해자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사채업자의 불법추심이 도를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지는 여성채무자에게 ‘밟아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불법 사채의 문제점과 대책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서민들이 기댈 수 있는 금융기관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담보도 없고 소득수준도 낮은 서민들에게 은행은 넘기 힘든 고개였고 저축은행이나 신협 등 서민금융기관은 부동산 관련 대출에만 열을 올리며 서민들을 외면했다. 그 결과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게 고금리의 대부업이다.

사금융에 결국 자살로 선택한 여종업원

이런 가운데 막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돌아온 건 자살이었다. 이들은 불법 사금융을 이용했던게 화근이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종업원이 또다시 사채를 고민하다 자살했다. 지난 4월 24일 포항시 남구 한 원룸에서 유흥업소 여종업원 A씨(27·여)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남구 상대동 S룸살롱에서 속칭 새끼마담으로 일하던 중 업소를 옮기는 과정에서 선불금 명목으로 업주로부터 1400여만원을 빚을 져 고민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빚 독촉과 함께 2차 등 성매매까지 강요받고 최근 업주로부터 심한 모욕까지 당하자 신변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자살 직전 휴대폰 통화내역에 업주의 연락처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A양이 심한 빚 독촉과 모욕을 참기 어려워 자살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업주를 상대로 정확한 사망경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채는 물론 성매매 알선, 조직폭력 등 그동안 음성적으로 자행돼온 유흥업소 주변의 전반적인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포항에서는 지난 2010년 7월7일부터 1주일 사이 룸살롱 마담으로 일하던 L씨(32·여)를 비롯 C양, D양 등 평소 알고 지내던 3명의 유흥업소 여종업원이 사채빚을 고민하다 잇따라 숨져 사회문제화된 적이 있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대출을 해주거나 금리 상한(연 44%)을 초과해 영업하는 업체들이다. 금융위는 2008년 사금융 이용 실태를 조사하면서 불법 사채시장 규모를 16조5000억원 선으로 추정했다. 불법 업체들은 적발시 5000만원 이하 벌금,5년 이하 징역 등 형사 처벌을 받는데도 지속적으로 활동해 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사금융애로종합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실적이 1만 3528건으로 이 가운데 1520건을 수사기관에 통보했다고 4월 26일 밝혔다.

이는 전년(268건)보다 6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사금융으로 인한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최근에는 대형 대부업체들이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에 나서면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의 경우 불법 사채업에 내몰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을 보인다.  

연120% 고리대에 “몸 팔라” 협박까지

불법사채에까지 손댄 사람들에게 돌아온 건 고금리였다. 결국 그것을 갚기 위해서는 몸까지 파는 경우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5월 25일 유흥업소 여종업원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하다가 빚을 갚지 못하면 캐나다에 데려가 성매매를 시킨 혐의(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A모(35.여)씨를 구속하고 B모(3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4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캐나다 밴쿠버에 아파트 두 채를 빌려놓고 B씨에게 소개받은 C모(31.여)씨 등 한국 여자 21명을 고용해 현지 남자들에게 성매매를 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서울 강남지역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에게 연 최고 120%의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고서 갚지 못하는 여성을 캐나다로 보내 성매매 시키고 성매매 대금의 일부를 송금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A씨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찾아온 남자들에게 회당 160캐나다달러(한화 약 18만원)를 받고 성매매를 시켜줬고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며 성매매 여성의 여권을 받아 보관하는가 하면 관리비 등 명목으로 성매매 대금의 40%를 받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채로 인해 가족까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20대인 윤모씨는 2001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900만원을 빌려 열대어 노점상을 시작했지만 실패하고, 700만원의 빚만 남겼다. 윤씨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돌려막기를 했지만 이자만 늘어났고, 채무상환을 위해 2002년 선불금 900만원을 받고 유흥주점에 취직했다.

윤씨는 며칠 뒤에 업소를 탈출했으나 붙잡혀 감금당했고, 유흥주점 사장은 어머니와 협상을 통해 1300만원을 받고 윤씨를 풀어줬다. 2003년까지 윤씨는 카드빚 등을 갚기 위해 새벽에는 녹즙 배달, 오후에는 옷가게 점원을 하다가 스트레스로 인한 대상포진에 걸렸다. 김씨는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금융권의 전화와 방문추심으로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집에서 나와 친척집에 무상으로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 9월 대전에서 PC방을 개업한 장모 씨는 임대보증금의 일부를 마련하기 위해 일수업자에게 950만원을 빌렸다. 하루 15만원씩 87일간 1305만원을 갚기로 했다. 연232%에 달하는 불법 고금리다.

장사는 잘 됐지만 하루 15만원을 갚고 월세, 전기세, 인터넷요금, 컴퓨터 유지비 등을 감당하기가 벅찼다. 한번 일수를 갚으면 다시 빌리는 방법으로 현상유지를 한 것이 2년을 넘겼고, 손님은 줄어들었다.

2년간 장씨가 일곱 번을 거래하면서 일수업자에게 갚은 돈만 5000만원을 넘는다. 사채업자는 장씨에게 아직 갚을 돈이 950만원이라고 주장했다. 5000만원을 갚았지만 원금은 한 푼도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연체가 시작되자 사채업자는 PC방의 집기들을 가압류하고 경매 처분했다. 장씨는 “경매가 되면 비싼 컴퓨터도 헐값에 처분될 테니, 내 스스로 팔아 빚을 갚겠다”고 사정했지만 사채업자는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경매 후에도 “돈을 갚으라”며 심한 빚 독촉을 했다.

남편 빚 갚으라며 폭행

불법사채업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영업하는 대형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려간 고객을 상대로 협박 등 불법추심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김모씨(50)는 2007년 5월 27일 저녁 8시40분경 일본계 대형대부업체의 추심원이 찾아와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김씨가 문을 조금 여는 순간, 추심원은 강제로 들어오더니 남편 빚을 대신 갚으라면서, 집안 집기에 딱지를 붙이겠다고 협박하며 공포심을 조성했다. 가재도구 압류는 추심원이 아니라 법원 집행문을 부여받은 집행관만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김씨는 집에 14개월 된 손자와 단 둘만 있던 터라 무서운데다가 아이가 심하게 울기에 추심원에게 집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 추심원은 실랑이 끝에 김씨의 오른뺨을 때리고 팔을 비틀었다. 김씨는 무단침입, 퇴거불응, 폭행, 불법추심 죄로 추심원을 고소했다.

사채업자와 싸워서 이겨야

상대적으로 약자인 채무자가 전문 사채업자와 대결해 이기기란 쉽지 않다. 사채 피해자를 외면하는 치안당국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이에 민주노동당 민생지킴이에 따르면 “녹음이나 상환내역 등 증거자료를 잘 모아두면, 사채업자와의 싸움이 마냥 불리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현행 대부업법상 연49% 이상의 고리대는 형사처벌 대상이고, 많이 낸 이자는 민사소송으로 돌려받을 수도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지 않은 사채업자나 일수업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대부업체와 사채업자는 세금을 내지 않을 소지가 많기 때문에 세무서에 탈세 신고도 고려할 만하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 정부의 서민금융지원대책은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저소득층과 저신용층 지원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지원대상과 취급기관은 차이가 있다. 기업이나 금융권의 기부금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하는 미소금융은 영세상인이나 자영업자를 주된 대상으로 대출해 준다. 창업자금을 빌리려면 자기자금의 30%를 보유하고 있어야하고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하는 조건 등이 붙는다.

정부와 서민금융기관 주도의 햇살론과 은행권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새희망홀씨대출은 창업자금이나 운영자금, 생계자금 등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많다. 다만 햇살론은 제2금융권이 취급하다보니 금리가 다소 높고 보증수수료 부담이 있는 반면 새희망홀씨대출은 무보증이지만 그만큼 대출문턱이 높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에대해 한 전문가는 “복잡해보이긴 해도 아예 돈을 빌릴 수 없거나 빌리더라도 수십퍼센트의 고리를 물어야하는 것에 비하면 이런 지원제도 자체가 서민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이 같은 불법 사금융은 더욱 교묘하게 서민을 파고들 것이 분명하다. 정부와 각 기관에서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강력한 단속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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