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되는 대상과 평가하는 존재, 권력의 이분법

미인대회로 상징화되는 여성에 대한 외모에 근거한 성적대상화와 욕망의 환타지는 자발적으로 대상화에 나선 여성들에게만이 아닌, '인류 절반인 모든 여성들을 평가하는 공식적인 가치기준인 양 세뇌화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외모의 상품화와는 별도로 권력구도 형성이 문제 본지는 지난 호 '누구를 위한 왕관인가'라는 글을 통해 미인대회들이 전제로 하고 있는 권력계층화를 지적했다. 미스코리아행사는 끝났지만 우리는 SBS가 새로운 트렌드도 내세우고 SBS와 EXR KOREA가 후원하는 '한국슈퍼모델선발대회' 지원자 모집광고를 접하고 있다. KBS는 '춘향'이라는 고전적 이름을 덮어씌우고 '아름다운 향토풍속'으로 포장해 대체적으로 할아버지 분들이 낡은 여성관을 기준으로 열녀의 이미지와 성적매력을 동시에 지닌 젊은 여성들을 심사하는 남원 춘향선발대회를 실시했다. 올해로 73회를 맞은 이 행사는 지난 5월 7일 <뉴스9>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된 바 있다. 이렇듯 미인대회는 시대에 따라 가치관의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사회 외모지상주의의 확산과 동시에 향상되는 여성권익, 페미니즘 조류의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증설, 폐지되기도 하며 그 내용과 성격을 달리해왔다. 이에 이들 미인대회는 여러 변명들을 내세우며 합리화하며 본질을 흐리거나 반대로 외모지상주의적 가치관을 전면으로 부각시켜 더욱 더 교묘해지는 양상으로 존재를 연명, 혹은 기반을 확대해왔다. 미인대회의 문제는 결국, 어째서 유독 여성들에게만 외모에 대한 혹독한 검열기준이 부과되는 것이며 이성의 눈에 의한 심사 대상화로 존재되는 위치가 사회적으로 별 탈 없이 수용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다. 사실 이러한 여성주의적 물음에서 미인대회를 비판, 거부하는 입장은 아무리 진보적이라고 평가되어 온 사이버 언론 상이나 혹은 현실 속에서도 극도의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며 마치 건방지고 극악스런 페미들을 단죄, 응징하겠다는 듯한 비아냥거림과 설교, 혹은 노골화한 폭력적 욕설을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논조들은 하나같이 "엄숙과 권위라는 단어자체가 그 존재 기반을 잃고, 다양성을 기반으로 외모 자체가 확실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또한 어차피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외모의 상품화'가 뭐가 문제냐"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허나 문제는 권력을 쥐고있는 자와 반대로 주체적인 선택권이 불분명한 위치에서 사회가 주입하는 논리대로 자신의 몸을 열등한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몸에 대해 순수한 자의적 평가가 어려운, 대상화된 존재로서의 위치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에 팽배한 권력의 이분화를 아무런 반성 및 재사유없이 기정사실화하는 과정에선 '외모지상주의'적 가치관을 직간접적으로 수용하게 되면서 이것이 본질적으로 주체적인 것인가? 비주체적인 것인가? 라는 모호한 자아정체성의 혼란과 외상도 경험하게 된다. 지난 호에서 미스코리아든 에로미스코리아 든, 이들 대회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은 바로 여성에 대한 '관음과 지배'의 욕구를 공식적으로 충족하는 행사' 라는 시각을 소개했다. 이러한 미인대회가 유치한 쇼로 표현되고 안티세력에 의해 조롱받는 이유는 이 같은 미인대회들에 함축되어 있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거대음모를 숨기고, 놀음을 연명해가기 위해 '지성과 미의 겸비'니, '21세기가 요구하는 당당한 여성선발'이니 하는 미사어구로 치장하며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욕구충족 수단으로 여성을 이용한 유희를 이용해 상업적 목표와 권력감을 충족하려는 주최측과 소비측간에 암묵적인 합의하의 성립된 속고 이러한 속아주는 각본은 더욱 우스운 희극으로 전락시킨다. '여성'이란 이름에 부여된 선택 불가능한 의무 물론 이러한 행사가 브라운관상에서 관음을 즐기는 (남성)시청자들의 환상이나 소유화욕구를 실제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실현해주지는 않는다. 그런 직접적 실현화와의 거리성과 시선적 폭력이 곧 물리적인 폭력으로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사실로서 이 희극행위가 '여성을 상품화'하고 몸을 소비하는 완화된, 변종된 형태의 '매매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미스코리아로 상징화되는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와 욕망의 환타지는 스스로 대상화에 나선 여성들에게만이 아닌 인류의 절반인 모든 여성들을 평가하는 공식적인 가치기준으로 세뇌화된다. 또 한국 대표 미인이라는 타이틀은 곧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대단한 여자라는 비상식적인 공식으로 통용된다. 미스코리아 왕관의 타이틀로 요약되는 부와 명예, 연예계진출의 기회를 따내 신데렐라로 서겠다고 나선 그들에게만이 아닌, 모든 여성, 한국여성들에게 부여되는 욕망이 되어 우리사회 가부정적인 여성평가기준과 가치관을 공고히 하는 작업을 충실히 수행한다. 영광스럽다기엔 너무도 음모적인 이러한 행사들이 꼭 '키 크고 가슴 큰 여자'라는 이유로 상금뿐만 아니라, 여신화된 상황에서 마치 국가적인 페스트 레이디가 된 듯, 영광스런 퍼레이드의 권리가 주어지는 편협한 가치관으로 평범한 여성들을 옥죈다는 것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근본적으로, 여자는 그 가치 자체를 수영복 입혀서 번호표 달고서 신체를 해부학적으로 나누는 시선폭력으로 조목조목 부위별, 등급화해도 되는 존재라는, 점수화 할 수, 재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이다. 변명을 뒤집어쓴 마쵸적 사고관은 평등적인 남녀관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신세대들에게까지 주입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이에 <나는 미소년의 좋다>의 저자 문화평론가 남성희씨는 "이러한 거짓말이 체질에 맞지 않는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미적 시선에 대해 '거부'의 노선을 택하기 시작하면, 돌아오는 것은 패배뿐이다. 굳건해진 외모지상주의를 극복하기 힘든 상황에서 차라리 남성들 또한 성 상품화와 외모지상주적 가치관에 대상화시키는 움직임으로 발상의 전환을 가하는 것도 전복적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미인대회들의 획일화되고 국적 불분명한 서구화된 기준의 여성들이 한국의 미를 대표한다는 것은 어폐가 심하며, 그리고 또 이러한 왕자들의, 공주뽑기 파티 같은, 명분없는 행사에 상금 또한 줄여져야 한다. '국민적인 축제'라는 표현도 엄청난 곡해다. 인류 절반의 자유와 인격적 존엄을 오히려 훼손하며 인류의 휴머니즘과는 거리가 먼 행사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돈을 대주는 스폰서들은 좀더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이벤트를 위해 자금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이 시대에 공연예술, 출판 및 인문 연구분야 등을 포함한 문화예술계가 얼마나 힘겹게 연명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가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정순영 기자 jsy@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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