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과 논란 딛고 독립교회의 ‘뉴 비전’ 제시하는 광성교회

서울 풍납동 광성교회를 둘러싼 논란이 화제가 되고 있다. 광성교회의 분란의 배후에는 은퇴원로와 그를 추종하는 장로들의 집단이기주의와 독선이 그 중심에 있다. 이 문제는 20세기 들어 고속으로 성장한 한국교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것은 어느 교회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가 있어 그 반응이 더욱 주목되고 있다 현 한국교회는 담임목사 혹은 당회장은 당회를 통하여 일반성도의 대표격인 장로들의 견제를 받는다. 하지만 장로들을 실제로 견제할 수 있는 민주적 장치는 부재한 실정. 목사는 당회를 통해 장로들의 견제를 받지만, 장로들이 궤도를 일탈했을 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구조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곧 다수 성도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당회의 집단독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성교회 사태’는 현재 이러한 상황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현재 광성교회는 표면적으로 원로측과 교회측으로 갈라져 있다. 처음 양측의 반목과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르던 2004년 4월경, 원로 측은 500여명이고 교회측은 20여명도 채 안되었고 나머지 교인들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현재는 전체 출석교인 8500여명 중 원로 측은 300여명이고 그동안 관망하던 교인들이 교회측에 합세함으로써 담임절대지지서명을 한 장년교인만 6800여명이다. 이러한 현상은 원로 측의 반복되는 과격한 행위에 염증을 느껴 38년 간 광성교회를 시무해 온 원로 김창인 목사(72)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실망과 미움으로 바뀐 결과라 할 수 있다. 전 원로 측의 실망스러운 행태 광성교회 분란사태는 이성곤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2003년 12월 21일 이후 5개월도 채 안된 2004년 4월 원로 측의 ㄱ집사(현 영신여고 교사)가 이성곤 목사의 부임 전 음주문제를 인터넷게시판에 게재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에 대하여 이성곤 목사는 “비록 포도주 몇 잔을 마신 것이라 해도 목사로서는 본이 되지 않는 행위”였음을 시인하고 온 교인들에게 눈물로 잘못하였음을 회개했다. 또한 20여 년 전 부목사 시절, 가정문제로 어려움이 있었던 여성도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 측은함을 느껴 커피숍에서 함께 차를 마셨던 것과 연민의 정을 느꼈던 점등을 고백했다. 온 교인들 앞에 자신의 치부를 모두 드러내고 온전히 회개함을 보여준 것. 이에 온 교인들도 흔쾌히 용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원로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문제를 확대했다. ‘폭탄주 스캔들과 이성곤 목사의 부적절한 여성편력에 의한 사생아논란’으로 비화시켰다. 이 목사가 입양한 딸(8세)이 20여년 전 그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는 주장까지 하게 되었던 것. 이에 대해 입양을 지원해준 대한사회복지회에서는 입양당사자만이 발급받을 수 있는 입양확인서를 발급해 주었다. 하지만 원로 측은 “이것도 허위 조작된 것”이라며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성곤 목사는 괴한들로부터 유전자 검사를 위한 머리카락 채취 목적인 듯한 습격을 두 차례나 당했다. 입양녀도 하교길에 머리카락을 뽑히는 등 같이 수모를 당했다. 그동안 원로 측은 화합을 위한 협상에는 응하지 않고 교인 대다수가 지지하는 이성곤 담임목사의 퇴진만을 주장해 왔다. 이미 원로 측에서 원로 자신이 증경 총회장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재판국에 제기한 이성곤 위임목사 청빙과정의 부당성을 들어 행정처분을 요구한 행정소송에서 각하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그 후 동남노회에 제기한 기소내용이 상정조차 되지 않자, 원로측 8부목사를 전국기독교노조에 가입시켜 교회 내에 농성천막을 설치하고 초유의 교회노동쟁의를 벌였다. 결국 교인들의 분노로 교회측이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내놓자 철수했다. 예배방해를 일삼은 원로 측 교인들 지난 8개월 간 원로 측 교인들의 ‘횡포’는 대단했다. ‘광성교회 바로세우기 모임’이라는 발신자 명의로 18차례에 걸쳐 우편물을 수만통씩 무작위로 발송했고, 예배시간에는 호루라기를 불거나 구호를 외치며 예배를 방해했다. 급기야 2005년 1월 16일 주일 3부 예배 때에는 연장을 사용하여 담임목사실의 철제문을 부수고 무단점거 했다. 이 과정에서 담임목사의 부인과 모 여자장로의 머리채를 잡아 머리카락을 뽑는 등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또한 80여명의 원로 측 교인들은 화분을 내던지며 위협을 가하는가 하면 금고 안에 있던 금품과 중요서류를 탈취하고 각종 서적들이 꽂혀 있는 책장을 넘어뜨려 짓밟아 훼손하는 등 담임목사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이들은 동부지검에 예배방해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행위로 고소당하기도 하였다. 광성교회 교인들 대다수는 “원로 측 24명의 장로들은 그 중에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장로교회 장로라면 당연히 봉헌해야 하는 십일조와 절기헌금, 그리고 감사헌금 및 주정헌금조차 하지 않는 도저히 교인의 본이 될 수 없는 부적격자다. 광성교인을 대표하는 장로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본지 취재진은 2005년 4월 3일 오전 10시 30분 예배에 취재를 목적으로 참석했다. 엄숙하고 성스러운 경건한 예배 분위기는 한동안 진행되었다. 그런데 담임목사의 설교가 마무리 될 시간. 갑자기 교회 3층에서 괴성에 가까운 야유가 빗발쳤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현관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광성교회의 심각한 현장분위기를 목격한 것이다. 왜 원로 측은 이성곤 목사를 괴롭히는가? 그러면 왜 이렇게 원로 측은 이성곤 목사를 내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까? 교회측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이성곤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교인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광성교회는 김창인 목사 시절 평균 주일예배 참석인원이 장년만 6,900명 정도였다. 그런데 2003년 11월 이성곤 목사가 부임한 후 2004년 4월 초 8,100명까지 신자 수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후임자가 오면서 전임자보다 인정을 받게 되자 원로 측에 괘씸죄(?)로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주장. 둘째, 원로 측은 광성교회와 10분 거리가 안 되는 구리시 토평지구에 개척교회를 건립하려 했다는 것. 하지만 두 교회가 너무 인접해 있는데다 매입한 토평지구 건립지가 개발제한지역이라, 교회당 건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로 측 ㄱ장로가 64억원 정도에 매입할 수 있는 토지를 물색하며 이성곤 목사에게 적극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3년 말 당시 교회 재정상태는 잔고가 1억여원에 불과, 도저히 지원이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은행대출조차 힘들어, 원로 측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셋째, 영신학원의 사유화 의도가 배경으로 있다. 영신학원, 즉 강북의 명문 영신여고와 영신실고이다. 이 학원의 이사장은 광성교회 당회장이 겸직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원로가 광성교회에서 10억원의 전별금과 싯가 20억원 상당의 사택을 개인명의로 전환받고 은퇴했는데도 영신학원의 이사장직을 내놓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 영신학원의 이사진은 모두 원로 측 인물들로 등재되어 있다. 2005년 1월 20일까지는 광성교회 당회장인 이성곤 목사도 이사로 등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목사의 동의 없이 본인도 모르게 2004년 10월 퇴임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결국 영신학원은 원로 측의 개인소유물처럼 된 셈이다. 현재로서는 영신학원의 이사장인 원로 외에는 대표권이 없다. 또한 이사진 전원이 원로 측 사람들이라 마음만 먹으면 이사회에서 이사 3분의 2 찬성의결로 광성교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3자에게 매각도 가능하다. 현재 영신학원의 교장은 이사장인 원로의 맏사위다. 광성교회 당회장인 담임목사가 원로 측의 인물일 때 광성교회는 영신학원의 자금줄이 되는 것이고 광성교회 담임목사가 교인 편에 설 때에는 영신학원 이사장인 원로의 머리가 복잡해 질 수 있는 역학관계라는 주장이다. 이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광성교회 사태의 발단을 올바르게 진단할 수 있지는 않을까? 이처럼 광성교회의 분란의 근원은 원로측의 기득권 세력과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교인들, 즉 원로의 섭정에 반대하는 대다수 양심교인 간의 마찰인 것이지 결코 원로와 담임목사의 이권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다수 교인들이 시무를 원치 않는 원로 측의 부적격 장로와 기독노조에 가입하여 노동쟁의를 위한 천막을 광성교회 내에 설치하게 함으로써 거룩한 예배당을 장사치 소굴처럼 만들어 광성교회와 광성교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부목사들이 숫적으로 우세한 당회를 열어 교인들 대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의결과 당회 운영을 시도하려 하기 때문에 광성교회의 분란이 시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광성교회 사태는 한국교회 미래와 직결되는 중대한 사건 한편 2005년 1월 29일 광성교회 이성곤 목사를 상대로 김경안 외 22인이 사회법과 교회법으로 동시에 재판을 청구한 ‘담임목사시무집행정지가처분’건과 ‘서적인쇄 반포금지가처분’건이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반면 예장통합측 동남노회 기소위원회(위원장 김병렬 목사)에서는 이성곤 목사에 대해서 ▲ 당회장 직무남용 직무유기(헌법 2편 67조) ▲ 목사의 직무를 위반함(헌법 2편 26조) ▲ 성경과 헌법에 위반한 행위(헌법 3조 1항) ▲ 기독교인 특히 목사로서 부도덕한 행위 헌법(3편 3조 4항) ▲ 교회 내 폭행 사주 방조(헌법 3편 3조 5, 6항) ▲ 원로목사 인격 모독 명예훼손(헌법 3편 3조 5항) ▲ 교회에 사설 경호원 배치 등 평화 질서 파괴 분열(헌법 2편 63조) 등의 혐의로 동남노회 재판국(국장 박보범 목사)에 기소하였고 이성곤 목사의 설교권과 목회권 등을 포함한 일체의 권한을 박탈하는 시무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국가 소송법에서 기본으로 삼고 있는 기피와 제척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모든 피의자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 등을 일방적으로 배제당한 채 이성곤 목사는 광성교회 담임목사시무정지가처분 결정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격분한 광성교회 대다수 교인들은 예장통합측 총회 재판국에 이러한 판결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탄원서와 이의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총회 재판국(국장 김영훈 장로, 법학박사)은 신중한 평결을 위해 광성교회 사태를 직접 실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원로 측 장로들과 예장통합 측에 포진해 있는 원로의 인맥이 풀가동되어 조직적인 방해로 정상적인 조사활동조차 불가능하게 되었고 광성교회 측은 더 이상 예장통합 측 어디에도 희망과 기대를 걸 곳을 잃게 되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예장통합 측의 신앙적 양심과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고 기도와 노력을 아끼지 않던 광성교회 측은 교회정상화대책위원회(위원장 엄주식 장로)의 발의로 지난 3월 11일 교인총회를 열고 가부투표를 실시해 동남노회 탈퇴를 결정하였다. 이후 4월 7일 교회발전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 광성교회 정관을 제정하였고 4월 10일 주일예배 시간(1부, 2부, 3부, 4부, 5부)에 참석한 6,686여명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3가지 안건을 상정하여 거수로써 찬반가부를 가려 97.5%가 찬성쪽으로 손을 들어 줌으로써 압도적으로 추인받았다. 첫 번째 안건은 2005년 3월 11일 교인총회 의결사항 추인 건. 두 번째 안건은 한국독립교회연합회(고문: 김준곤 목사, CCC총재. 총회장: 김상복 목사, 할렐루야교회) 가입 인준 건. 세 번째 안건은 광성교회 정관 통과 건 등이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안건이 첫 번째 안건인데 1) 서울동남노회 탈퇴 2) 담임목사, 부목사 및 장로 인준 3) 광성교회 규약 제정 4) 불법행위를 한 교인 출교처분 5) 교회 내 모든 분규 대처 관련 “정상화대책위원회”로 권한 위임 등인 바 이때까지도 이성곤 담임목사는 자신이 성장해 오고 활동해 왔던 예장통합측에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다수 교인들의 권유에 밀려 2005년 4월 10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2005년도 광성부흥성회’를 앞두고 결심을 굳힌 듯하다. 이로써 결국 예장통합측 총회 재판국에서 광성교회측의 이의신청에 대한 각하결정이 나더라도 동남노회 재판국의 기결정사항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이제 광성교회는 예장통합측과 별개의 한국독립교회연합회 소속으로 교단을 바꾸어 버린 상태이고 또한 법리상으로는 이미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원로 측 김경안 외 22장로들이 낸 “이성곤목사 광성교회 담임목사시무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낸 상태이므로 상위법 우선주의 원칙에 의해 교회법은 일종의 특별법으로 사회법이 교회법보다 상위법이기 때문. 즉 이성곤 목사에 대한 ‘담임목사 시무집행 정지’에 관련된 어떠한 결정도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예장통합측 동남노회나 총회의 어떠한 결정도 당해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지교회일 때 효력을 발생하는 일종의 관습적 구속력을 갖는 효력일 뿐 타 교단 소속의 지교회나 독립교회에 대해서는 아무 영향력을 갖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원로 측이 이성곤 목사의 제거를 목적으로 사회법과 교회법으로 동시에 사용한 ‘예수님사랑’과 정면배치되는 ‘정죄쌍칼(?)’이 자해적으로 사용되어 결국 빠른 결말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오직 주님만을 앙망하며 위대하고 거룩한 승리의 돛을 올린 광성교인들 전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광성교회 사태의 진행과정은 사회일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꼴사나운 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세대교체기에 직면하여 유사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대한 사건이어서 결코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제 교회법과 사회법을 총동원한 원로 측과 담임 측의 승부에서 담임 측은 대다수 교인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이성곤 목사의 담임으로서의 목회권을 지키게 되었고 광성교회에서는 연일 초대교회를 연상케 하는 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3월 27일 부활절 주일예배와 15,000여개 부활절 계란나눔의 행사, 4월 1일 저녁에 장로들이 5마리의 통돼지를 잡아 교인들을 위해 스스로 앞치마를 두르고 서빙함으로써 섬김의 자세를 보여 준 행사, 4월 8일 저녁에는 부목사들이 장로들의 한턱(?)에 빚갚듯이 5마리의 통돼지를 잡아 교인들과 식사를 하며 교인과 교역자의 벽(?)을 허무는 행사와 김석균 찬양선교사의 찬양예배, 김정호 목사(번동제일교회 담임, 목회학박사)를 초빙하여 4월 10일 저녁부터 4월 13일까지 10회에 걸쳐 펼쳐지는 2005년도 광성부흥성회을 통해 광성교회는 이제 반목과 몸싸움 등 고난과 갈등을 넘어 예배와 기도, 회개와 중생, 은혜충만과 성령충만, 웃음꽃과 봉사, 잔치와 교제가 끊이지 않는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이며 몸소 행하는 전도와 선교사역을 실천함으로써 오직 예수님만을 향해 독수리처럼 높이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교회로 나아가고 있는 위대하고 거룩한 승리의 돛을 올린 지혜로운 광성교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들이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나라에 큰 힘을 주는 일꾼들이 되리라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료제공:광성교회발전위원회 http://www.ikwangsung.or.kr 취재 강정아 기자 kja2231@sisafocus.co.kr 사진 최민하 기자 cmh3236@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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